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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망청/진지한 얘기'에 해당되는 글 38

  1. 2011.09.19 5주년2
  2. 2011.03.09 상상력
  3. 2011.01.03 2010 연말+2011 연초
  4. 2010.12.14 그냥 다시 원점
  5. 2010.08.27 나는 피곤한 여자
  6. 2010.08.20 온 힘과 마음을 다해
  7. 2010.06.05 선거
  8. 2010.05.24 오오이시 마사요시, 영향.
  9. 2010.05.22 Friday night
  10. 2010.05.18 검은 덩어리
  11. 2010.05.10 5월 초~
  12. 2010.04.23 새로운 블로그?????
  13. 2010.01.26 꿈 없는 인간
  14. 2010.01.05 조금 심각하고 슬픈 고민
  15. 2009.12.30 '섹스'를 둘러싼 싸움 (1)
  16. 2009.12.12 안보투쟁과 메이지유신
  17. 2009.12.11 곤충과 보신탕
  18. 2009.12.03 밤은 길고
  19. 2009.12.01 일상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
  20. 2009.12.01 일상적 폭력
  21. 2009.10.17 재범이의 부재
  22. 2009.10.14 학원강사
  23. 2009.10.08 학교란 과연 선생님이란 과연1
  24. 2009.10.04 두 사람
  25. 2009.09.24 2009년 중간정리
2011. 9. 19. 17:56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월드비전에서 한 아동을 후원한지 5년이 됐다.
오늘 5주년 감사선물이라고 세계지도가 왔다.
5년이라... 길다.

하긴, 지난 주에 온 후원아동의 사진에서 이제 언뜻 여자아이 같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이 좀 이상한데... 후원을 시작할 때 사진을 보고 당연히 남자아이라고 생각했고, 작년에 온 사진도 여전히 그랬다;; 그런데 이제 딱 보면 여자애같으니 참, 시간이 빨리도 흘렀다.

2006년이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 전이란게 놀랍고, 그냥 신청하고 자동 이체 신청해놓고 냅뒀을 뿐인데 어쨌든 학교도 다니고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뭐랄까... 내가 후원을 해주고 있으니 고맙게 여겨! 라는 맘은 일절 없다. 평소에도 잊고 지내다가;;; 성장 보고서가 올 때 마다 아 이렇게 또 일년이 지났구나, 하고 놀랄 뿐. 내가 누군지 몰라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신상에 대한 뭔가를 알리거나 편지 같은 걸 쓴 적이 없다. (쓰는게 좋은걸까?) 그냥 지구상에 어느 나라에서 약간의 돈으로 자기를 지속적으로 후원해야겠다고 맘 먹은 사람이 한 명 있으니 잘 자라서 자립했을 때 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일단 바라는게 있다는 건가? ㅎㅎ

근데 사람 맘이 요상한게, 일년 마다 성장 보고서가 사진과 함께 올 때 무슨 말도 안되는, 거 참 성의없는ㅋㅋ;; 그림이 딸려온다. 지난 주에 온 건 그림이라기 보다 펜을 위 아래로 두 번 그은 거 같은ㅋㅋ 그런 거 보면 솔직히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기왕 보낼꺼면 좀 더 그리지... 뭐 이런거? ㅎㅎ 에구. 내 맘 속에 고맙게 여겨 달라는 심보가 조금은 있는건가...;;; 다 버리고 싶다.

딱히 좋은 일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술자리에 내는 돈으로 누군가가 깨끗한 물을 마시고 학교에 갈 수 있다면 뭐, 좋은 거 같아서 신청한거고. 사회인이 되면 한 명 더 늘려야겠다는 다짐도 실천 못하고 있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게 쑥스러워서 그냥 있을 때도 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별로인 거 같아서 그냥 언급하는게 자연스러울 땐 말도 한다.

구조적 근본적으로 뭔가가 당장 바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내가 그걸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해봤자 바위산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만도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그저, 아주 조금은 살면서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steadyoung
2011. 3. 9. 11:14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마츠다 본사 공장 연속살상사건

2010년 6월 22일 히로시마에 있는 마츠다 본사공장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상사건. 야간근무와 오전근무가 교대하는 시간대에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승용차로 들이받아 한 명이 사망하고 열한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범인은 2개월 전까지 공장에서 일하던 42세의 파견사원으로, 2008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7명 사망, 10명 중경상)과 같은 사건을 일으키려했다, 마츠다에게 원한이 있었고 마츠다 사원이라면 (범행의 대상으로)누구던 상관없었다고 진술했다.


작년에 방송된 폭소문제의 NHK 일본의 교양 '라꾸고의 힘' 편에서 마츠다 살상사건에 대해 오오타씨가 한 말.  


오오타씨는 범행을 저지른 이유로 '상상력의 부족'을 꼽았다.


그에게 절실했던 건
스스로 '나 자신은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아니었을까.

끔찍한 사건이긴 하지만 이런 사건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08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으로 대표되는 청년 실업, 정규직과 파견노동, 고립되어가는 인간 관계 등 사회적 요인을 사건의 동기와 배경으로 갖는 사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던정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발생한다.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보려 안간힘 쓰고 다시 꺾이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삶의 의욕을 잃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된다. 나 자신을 향한 공격성이 바깥을 향해 분출되는 것도 전혀 이해못할 수준의 일도 아니고.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오오타상 말처럼, 나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 삶도 내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힘. 항상 더 일해야하는데, 더 성공해야하는데, 더 보란듯이 살아야하는데 하는 생각에 조바심을 내다보면 정작 감사하게 여겨야할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놓치기 쉽상이다.

나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언제까지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보낸다. 누구처럼 고시에 붙고 누구처럼 대기업에 가는 등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을 갖고 비싼 가방에 비싼 옷을 사입으며 떵떵거리고 누구처럼 학벌과 집안과 수입이 괜찮은 남자와 결혼을 하고 혹은 누구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도전하고 누구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지내는, 그렇게 내 주변의 그 누구들처럼 살아야 내 삶이 바르게 가는 것일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괜시리 불안해지는 거다.
(지금의 내 처지를 비관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새벽에 출근하면서 해뜨는 걸 볼 때, 비는 시간에 조조영화를 보고 있을 때, 영어 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운동을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과외녀 과외남들과 낄낄 댈 때,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 재밌는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그런 순간들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 때! 그 감정의 볼륨을 높이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생겨나는 불필요한 열등감이나 초조한 마음, 시기와 질투의 잡소리를 덮어버릴 수 있다. 그 힘도 다 상상력에서 오는 것 아니겠는가.

새로운 걸 시작하려 할 때 세월이 흐른 뒤의 자기 자신을 상상하면 때 지금의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지금의 나는 꽤 나이가 있을지 몰라도 10년 후의 나에게 10년 전의 나는 얼마나 젊을까. 시계를 뒤에서부터 감아보면 놓치고 있던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도 얻을 수 있고.
 
물론 나는 늘 앞을 계획하며 즐거움을 찾는 타입이다.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운운하며 현상에 만족만 하기에는 갖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은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과 충실감이 없으면 그저 허무하기만 하다. 
인생이란 무언가를 계획하는 중에 터지는 예기치 못한 일들의 퍼레이드라는 누구의 말마따나 무언가를 계획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터지기 마련이다. 즉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터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지금 영위하는 일상 생활은 과거의 내가 벌였던 일들의 결과이자 진행이며, 지금 하고 있는 노력들은 미래의 '현재'를 위한 밑거름이므로 어느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에게 절실한 건
스스로 '나 자신은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아닐까.
 
posted by steadyoung
2011. 1. 3. 01:0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1. 지금 계속 듣고 있는 영어 수업을 1,2월 동시수강하면 할인해준다기에 한꺼번에 등록했다. 돈은 항상 쓰고 나면 별 생각없는데 쓰기 바로 전에 너무 두근두근하다. 어쨌든 꾸준히 듣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라는 자기세뇌로 거침없이 결제했다.
나는 내가 그 발음수업을 할 수 있게 될 때 까지 들어야겠다는 다짐과 살짝 과장된 쌤 추천 글을 올려서 어학원으로부터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쌤으로부터 증정이 없다. 흥. 이로서 내 논노 2월호는 물건너갔다. 젠장, 아라시가 표지모델인데. 문화상품권 받으면 살라그랬는데....

원래는 영어회화반도 등록하고 싶었다. 근데 과외 하나를 그만두는바람에 사교육에 그리 많은 투자를 할 수가 없어졌고, 게다가 방학이라 사람도 많을 거 같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너무 다니고 싶은거다 ㅠ.ㅜ 다니고 싶은 맘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레벨테스트를 받았다. 짧게 5분 정도 이야기를 한 거 같다. 나는 리스닝과(토익 파트 원투 같은 질문) 발음은 good을 받았고 그 외에는 다 good에 못미쳐서 중급에서도 중에 해당하는 레벨을 부여받았다. 존심 상하고 답답했다(너무 당연한 결과이지만ㅋㅋㅋㅋ). 내 기필코 쏼라 쏼라 말하는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들고 말테다+_+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영작해서 달달 외우기로 했다. 푸하하하하~
근데 이번달에는 그냥 일본어 프리토킹을 다니고 영어회화는 3월까지 참기로 했다. 3월에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보아요, 강사님.


2. 마지막날에는 친구네 집에 가서 파닭을 먹고 몬스터를 보다가 잠들었다. 1월 1일도 당직을 나가는 친구는 결국 담날 일찍 못일어나서 나와 아침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리고 회사에 갔다. 설마 구정에는 당직 안세우겠지. 새로 들어온 신참한테 시켜주세요!!
너무너무 추워서 서울까지 가기가 싫었는데 귀찮다고 집에만 있으면 토,일요일도 하고 있을 '노트북을 연인 삼아 뚫어져라 바라보기'를 삼일 연속 하게 되니까... 그건 좀 싫었다. 친구네 집에는 책이 참 많았다. 나한테 제인에어도 안읽은 무식한 년이라고 뭐라 뭐라 했지만 이 몸은 대꾸를 안하기로 하셨다. 그래 너 좀 책 많이 읽었고 읽고 있다, 너 잘났다, 옛다 임마, 하고 거들먹거림을 반사하지 않았다. 김혜리의 진심의 탐구와 인생 기출문제집 2에서 최규석씨 인터뷰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찰나, 친구네 집에 습지생태보고서가 있길래 빌려달라고 했더니 친구가 새해 선물이라고 가져가란다. 돌아오는 전철길에 다 읽었다. 너무 웃겼다. ㅋㅋㅋㅋㅋ 근데 그림을 보니 이건 가난뱅이의 역습에 나오는 표지그림과 너무도 비슷한 그림이 아닌가. 그 때 책 표지 그림 별로라고 뭐라 그랬는데... 생각해보니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과 잘 어울리는 작가를 섭외한게 아닌가. 난 그런 기특한 발상도 몰라보고...쏘리~


3. 목욜. 오래 근무한 옆 교실의 강사님의 부름을 받고 갔더니 모 시험 모의테스트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해서 이래저래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근데 어차피 시험 삼아 볼 거라면 시중에 나와있는 문제를 적당히 바꾸면 안되겠냐고 하더니 그 때 부터 내가 몰랐던 나 쪽팔렸던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 선생님 그 때 4월에 만든 문제가 좀 문제가 됐었잖아요.
아 쪽팔려! 그렇다 문제가 있었다. 내가 낸 문제 수가 답안지의 답 수보다 하나 더 많았다. 나의 부주의였다. 고이 잘못을 인정했더니 뭔가 내가 모르는 상황을 들춰낸다. 즉, 문제는 답안 수, 그런게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4월(인가?) 나는 부장님의 명령(?)으로 모의테스트를 하나 만들었다. 부장님은 절대 만들지 말고(실수가 생기니) 기존의 문제를 바꿔서 내라고 해서 나는 고이 바꿔서 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학원 수강생들만 보고 마는건데 뭐가 문제람! 게다가 시간도 촉박하고 돈도 얼마 안되고... 영어학원에서도 일할 때라 잠잘 시간도 없었을때라 기한 맞추려고 전철에서 노트북을 두들겨대던 기억과 시급 5000원도 안된다고 투덜대던 생각이 나는구나. 급수가 다른 모의테스트를 만들어야했을 다른 선생님은 결국 마감을 못넘기고 다른 테스트를 복사해서 넘긴걸로 알고 있다.
그럴만하다. 나보다 타이핑 해야할 게 배는 많았을텐데.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며칠 뒤 부장님이 달려와서 이거 시중으로 넘어가면 안되는거죠? 다른 부서에서 이걸 시중에 돈을 받고 판매하겠다고 하더라. 안되는거 아니냐, 하시길래 당연히 안되죠~ 이거 대충 바꿔서 냈지만 누가 봐도 다 알거예요~ 그러자 부장님이 그 사람들이 와서 물어보거든 절대 안된다고 하세요. 네. 그래서 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

근데 그게 결국 시중으로 풀린거다. 자체 제작한 교재 부록으로 주려고. 근데 그 책을 만든 그 선생님들이 나의 문제지를 보고 이거 너무 비슷해서 대형서점 물류센터까지 들어간 그 모의테스트를 회수하려는 등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근데 나는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에 대해 전-혀 들은바가 없었다. 모르겠다. 부장님도 그 얘길 못들은건지 듣고도 나한테 일부러 얘기를 안한건지. 그저 잊어버린거지. 그 선생님들은 내가 모르고 있다는걸 몰랐던 것 같다. 모르셨다니 잘못이 없죠. 이쪽이 원래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서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를 꺼낸 선생님의 뭐라뭐라 말을 해주긴 하는데  멍-했던 것 같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사람들은 지난 반년간 나를 돈 받아먹고 책임감없이 그 근저에 있는 교재 대~충 베껴서 시중에 내놓은 완전 뻔뻔한 인간으로 생각했을거 아닌가! 아우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 뭐 부서가 이렇게 중구난방이야. 언뜻 생각해봐도 이중구조인데 그럼 나는 어디 장단에 맞춰야하지...하는 복잡한 생각도 했다. 담부터는 이렇게 돈 안되고 내 손아귀를 벗어나는 일은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은 이제부터 골라가며 해야지. 저렴해도 완전히 내가 컨트롤할 수 있거나, 시중에 내놓고 싶다면, 아님 사용 목적을 사전에 밝히는,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수와 시간을 보장해주는 그런 일. 2010년을 더러분 기분으로 마무리했다.

4. 하나 더. 위에 그 선생님들하고 이야기했을 때, 파트 원 사진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든대요 하길래 나도 그냥 농담으로 그러게요 일본 보내주면 찍어올 수 있을텐데, 했다. 근데 나의 농담이 너무 진심으로 들렸는지(분명 히죽히죽 웃으면서 얘기한건데! 하긴 그 때 얘기한게 학원 근무하고 첨 길게 얘기한거니 내가 말하는 스똬~일을 모를 수도 있다 흑) 한 분이 일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꼭 그런 얘기하는데 그게 쉬운게 아니예요. 어쩌구 저쩌구... 일본 가서 사진을 몇백장 찍었는대도 건질게 없어 어쩌구 저쩌구...

잘 모르겠다. 그게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나는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고 책 잡히는 게 죽을만큼 싫은데 것도 일본어에 관련된 일로 쪽을 먹고, 뭣도 모르는게 말만 쉽게 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더러운 것도, 이해가 가나요? 게다가 나는 자부심이 있다. 그건, 내가 일본에 오래 있던 건 아니어도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왔고, 통대를 나온 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일을 할 순 없어도 나름대로 통역이나 번역으로 부끄럽지 않게(물론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으나...ㅡ_ㅡ;;;) 돈을 받아왔던 경험이 있다는거다. 그래서 단언도 하련다. 내가 그 선생님들보다 일본어를 더 잘할것이라는 자신이 있다고. 물론 확인된 바는 없으나...
근데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이 드니 따따블로 충격을 먹지 않겠느뇨. 어질어질한 상태로 내 강의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까 있었던 일과 말을 재생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 선생님들은 이 업계(?)에서 일한지 이제 곧 10년이 되어가(는 듯 하)고,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책이 있다. 학위 10년은 저기로 갖다 치워버릴 수 있어도 뭐를 하든 경력 10년은 무시할 게 못된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이제 일한지 1년도 안되고 오전에만 쓱 근무하고 사라지며 도무지 자기들과는 친해질 맘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수상하고 책임감 없는 철딱서니에 불과한게 아닐까. 엄밀히 말해서 이쪽 일은 강사가 일본어를 일정 수준으로만 구사하면 그 이상은 필요가 없다. 요는 수강생들이 공부를 하게 만드는 요령이 중요한거지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혼자 떠들어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거다. 
뭘 하든 오래 하는 건 중요하다. 나는 졸업 전부터 일을 해왔지만 뭘 하든 오래 한 적이 없다. 졸업 후도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서 그나마 길게 한 일들이 다 강사인데, 나는 과연 강사에 적합한건가.   

올해는 나도 이제 그만 방황하고 일에 대한 방향을 좀 정해야겠다. 나는 올해 호주로 떠날 생각이라 그거랑 어떻게 상충시키면 좋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고민 중이다. 여지껏 그랬듯이.
나도 결국 통역대학원에 가야하나. 근데 올해 겨우 등록금을 다 갚는데 또 등록금으로 빚을 지라고? 그건 너무 잔인하다.
그럼 다시 사장님한테 받아달라고 졸라볼까. 근데 너, 그만 안두고 잘 다닐 수 있겠어? 하루종일 회사에 있어야하는데...
그럼 일반대학원으로 진학해서 문부성 장학금을 노려볼까? 그럼 나, 일본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공부하고 가야한다. 박사과정을 밟고 다시 한국으로 오는 건... 그건 너무 암울하다...뭐할라고....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빙빙 돌지만, 그래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볼멘 소리 안하고 열심히 학원으로 출근할꺼다.
쪽팔린 만큼 열심히 하겠어. 어차피 팔린 쪽, 다 팔릴 때 까지 더 맘껏 들고 다녀야지.
오늘 '프리터 집을 사다'에 나온 대사. 무리라는 말은 계속 할꺼야. 하지만 그만두진 않겠어.  아니다, 호주 가기 전까진 계속 하겠어, 군. 

posted by steadyoung
2010. 12. 14. 11:0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원래 8시간은 자야하는데!
주중에는 대략 많이 자면 6시간, 못자면 4시간 자다보니 (다 헛짓하다가 늦게 자는거임 ㅠ.ㅜ)
요즘 주말에 이러다가 허리와 이불이 붙어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잠을 몰아자고 있다.
토욜은 하루종일 자도 밤에 12시도 안되서 눈이 감기는데 일요일은 새벽 2시까지 눈이 말똥말똥하다.
담날 5시에 일어나야하는데! 아니, 세시간 뒤에 일어나야하는데!!!!

그래도 주말에 워낙 뒹굴뒹굴 해서 그런지 월욜은 얼마 못자도 크게 피곤하진 않다.
대신 잠이 안오는 밤에는 어쩔 수 없이 여지껏 내가 저질렀던 어리석은 선택들과 그 결과들을 곱씹고 <과거에 대한 후회>
앞으로 너무너무 불투명하고 뭐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들을 상상해보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미래에 대한 염려>
쓸데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그만두질 못하니 잠이 안오면 참 괴롭다.

어제도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요 두 달간 좀 여유롭게 지냈는데 난 그 여유를 온통 텔레비전에 쏟았다.
자연스럽게 슬럼프에 빠지고, 원래 한 2주면 거뜬 극복을 했는데 시간이 많으니 두달을 가더라.
앞으로 뭘 어떻게 하고 살아야할지 생각해봐도 각은 안나오고
근데 뭔가를 좀 해봐야하지 않나 급한 마음도 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그러고 보니 그냥, 내 생활과 지금의 일에 충실할 것, 이라는
너무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한 결론이 나왔다. 왜냐, 할 수 있는게 그거 밖에 없는 거다 ㅠ.ㅜ

오전 일본어 강사일은, 좀 더 경력을 만들고 싶어서 내년 여름까지는 할 거 같고
저녁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뭐랄까, 애들은 안보면 보고 싶달까...ㅡ_ㅡ;;; 결국 같이 있을 때 즐겁다는 걸 부인 할 수 없다. 
무기력증은 애들 두명이 중3이라 잠시 공부를 쉰, 딱 그 시기에 시작되었다. 게다가 일은 늘 끊기지 않고 잘 들어온다. 
시작한 애들은 대부분 오래 공부를 한다. 지금 내가 예뻐하는 애들은 수능 치는 거 까지 보고 싶기도 하다.
(친구가 오바하지 말라고 뭐라 그랬다 ㅡ_ㅡ;;)
이쯤되면 가르치는 일은 내 적성에 너무 잘 맞고, 나는 거기에 소질도 있으며 성과도 반응도 좋다.
그럼 여기에 매진해야하는건가...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자꾸 어디로 떠나고 싶고, 새로운 걸 배우고 싶고, 내 자리에 가만 못있고 자꾸 헤맨다.
그래서 그냥 당분간은 어쩔 수 없으니 지금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볼 생각이다.
나 자신에게 엄격해지네 어쩌네 라는 말은 되게 쑥스럽고 나랑 안맞는 노선이지만,
요즘 따라 그냥 나 자신에게 그동안 너무 물렀다는 생각도 들고,
결국 나란 사람은 착한 척도 좀 하고 고분고분하게, 엄하게 사는걸 별로 싫어하지 않는 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서
허영 따윌랑 버려보고 좀, 일개미처럼 살아봐야겠다.
오전 저녁 일 열심히 하고, 기타도 배워보고, 영어학원도 꾸준히 잘 다니고, 안나갔던 모임도 나가보고,
이동도서관에서 책도 빌렸으니 책도 많이 읽고, 화장도 다시 찐~하게 하고 ㅋㅋ 옷에도 좀 신경쓰고ㅋㅋ
그럼 살을 빼야하나??? 흑흑.

여튼, 난 다시 오늘부터 열심히 해볼라고.
 
  
posted by steadyoung
2010. 8. 27. 09:56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너 피곤해"

이건 내가 예전에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들은 말인데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내가 여태껏 사귀었던,
혹은 잠시 만났던 모든 남자들에게
들은 말중에 가장 충격적인 한마디이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피곤한 여자친구이고 싶지 않다!!!!!!!!!!!!!!!! 그건 그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튼 그 후에 엄마에게 넌지시 "엄마 난 피곤한 사람인가?" 그랬더니 엄마가 웃으면서 받아넘기길
"맞아, 니가 좀 피곤한 구석이 있지" 하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게 아닌가!!
마치 내가 어렸을 때 부터 그랬다는 듯, 그걸 이제 알았냐는듯!!! 아니 엄마가 어떻게 자기 딸이 피곤한 인간이란 걸
태연하게 인정할 수 있지??? 나는 더욱 충격을 먹었지만, 뭐, 예전부터 그랬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원리 원칙을 고수하는 인간이다. 문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발언과 행동을 서슴없이 해댄다는 데에 있다.
나 중2 때 까지 그날 든 교과서 다 책가방에 넣고 다닌 사람이야! (응??)
나 대학교 2학년 때 까지 영어사전+일본어 사전 영한 한영 일한 한일 네 권 다 들고 한시간 넘게 통학했던 사람이야!
(왜 좀 더 일찍 사물함을 이용하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일찍 전자사전을 사지 않았을까! ㅡ_ㅡ;;)

내 의도된 명람함과 의도되지 않은 긍정적인 성격이 마치 내가 초!자유스럽게 행동하자는! 주의의 인간. 혹은 정말로
'꾸밈없이' 밝은 인간으로 보이게 만드는데 나는 열심히 '꾸며낸' 밝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피곤한 인간이다.
그래서 어두운 부분도 많고 걸핏하면 우울해지고 의욕도 바닥나고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꼭 굳이 꼬치꼬치 따져야
직성이 풀리며 감정 기복도 심한 편이라 동생에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불같이 화를 냈다가 30분도 안되서
깔깔 웃는 등, 가깝게 지내면 지낼수록 내가 존중받아야할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될 때가 많다.
(물론 장점도 많다- ... 있다- ... 있으니까 친구들이 여전히 붙어있어 주는거겠지?? ...
여전히 동생이 날 좋아하는거겠지?? ㅡ_ㅡ;;)

그래서 나는 내 그런 점이 싫어서 낯선 사람과 한 번 만나고 끝나는 관계를 선호했고 길게 이어질수록 내 꼬장꼬장한
성격이 뽀록날까 두려웠는데 이제는 슬슬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래! 난 피곤한 여자다~!!

인간보다 여자라는 말를 붙일 때 더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다. '피곤한'이란 형용사는.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겠다. 난 그런 사람인거다. 그런 여자인거다. 
기왕 인정할 거 더욱더 철저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맘 먹었다. 내 꼬장꼬장함이 드러나는 사례를 열거하면 그게 뭐~ 
하고 별거 아닌 일들의 총집합인데,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일상 생활의 장애물이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원인이었다.
근데 이제는 난 원래 그런 녀자~니까 더욱 더 철저하게 꼬장꼬장하게 굴어야겠다.
블로그를 쓰다가 말이 막힌다고 한참 쓰다가 창을 닫거나 하지 않겠다!. (리얼하게는 횟수를 줄이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벌인 일은 끝을 맺고 본다! (난 소설을 쓰고 싶다! 다이어트로 할꺼고 영어도 할꺼다!)
토론을 하다가 말이 막힌다고 포기하지 않겠다! 그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생각할꺼다! 등등.

어느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한없이 유들유들하고 넉넉한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인 것 같다.
그냥 내 원래 성격을 철저히 지키는게 좋겠다.
그러다가 유턴을 하던 모로 가던 도로 가던 그쪽이 더 맘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편하고 싶어서 피곤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악했는데 결국은 그런 척 하는게 더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므로 난 앞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피곤한 여자가 될꺼고 덕분에
'남친이 있는 여자'와의 거리는 백 걸음 더 멀어진 셈이다. 

posted by steadyoung
2010. 8. 20. 12:0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초등학교 때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로 본격 가요계 (빠순) 입문을 마친 뒤로 늘 무대와 가수를 동경해왔다.

초등학교 5,6, 중1 때 까지는 내 모든 열정을 춤에 바쳤다....고 하면 물론 뻥이고 중2때부터 노래부르는 취미가 생겼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집에서 했던 일은 아주 가끔 공부와 독서, 대체로 tv시청과 수면,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여자 가수들 테이프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 불렀던 시간들이 메꾸고 있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꿔봤다면 거짓말인데, 나한테는 당장에 들이닥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더 중요했고 ㅡ_ㅡ;;
중학교 때 성적이 떨어지고 학교를 빼먹는 다는 건 세상이 두쪽나도 하면 안되는 일로 여겼다.
고등학교 때 가서 그렇지도 않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소심하게 반항도 해봤지만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이름있는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아이돌 그룹을 보면서 내가 가수와 무대를 동경했던 그 시절, 한 번이라도 어디 기획사 오디션이네 이런 걸 봤었더라면,
붙었더라면, 계속 떨어져서 오기로라도 가수가 되야겠다고 생각했더라면, 
그래서 결국 실패했다고 해도 원하는 걸 위해 바로 행동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내 인생이 크게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깟 수능 못보면 좀 어때.
그깟 대학 안들어가면 좀 어때.

하고 우겨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 인생과 잘 몰라도 이해하려고, 이해가 안되면 외워서라도 머리에 집어넣으려고
애썼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나는 괜찮은 학생이었다. 

여튼 요새는 그래도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턱없이 부족하다.
더더더 행동으로 옮기고 더더더 실수하고 처음 먹었던 맘을 코딱지만한 결과물이라 해도 그렇게 만들기 위해 더욱 끈기있게 굴어야 한다.
 
아, 이야기가 너무 샜다.

어쨌든, 노래 부르는 것도 습관처럼 돼버렸기 때문에 지금도 땡기면 노트북으로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부르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노래는 '온 힘과 마음을 다해' 부르지 않으면 그 어떤 기교를 부려봐도 하찮게 들린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런 거 생각안하고 그냥 따라부르기만 했는데 부를 때 마다 느껴지는 내 시원찮은 노래에 영 심기가 불편하다.
나는 성량이 딸리고 기교를 부릴만큼의 가창력도 없지만, 불러왔던 시간들이 쌓이니 어설프게 흉내를 낼 수는 있다.
근데 그런 거는 (난 가끔 내가 노래 부르고 녹음해서 들어본다 ㅡ_ㅡ;;)
(일본어나 영어도 소리내서 읽은 뒤 녹음한 걸 들어본다;;-> 이거 의외로 좋은 공부 방법! 자신의 형편없는 외국어 발음과 억양에
좌절하지만 ㅠ.ㅜ 뭘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단번에 파악이 가능하다)
아무리 운좋게 잘 불러졌다고 해도 '난 얄팍하게 대충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라는 느낌이 강하다.

호흡이 끊어지거나 엉성한 고음처리는 기교가 딸리는게 아니라 성의가 부족한거다. 
지금 이 노래 부르고 숨이 끊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로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
다소 삑사리가 나도 온 맘과 힘을 다해 부른 노래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내가 내 노래에서 그런 걸 느낀 적은 물론 없고; 느껴도 웃기고; 그렇게 빈번히 모든 노래를 녹음하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는 건 단순히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돈을 받고 노래를 부른는다는 프로 정신과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진부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자세에서 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제와서 가수가 되겠다는 꿈은 꾸지 않지만
노래를 뭐 땜에 부르던 온 힘과 마음을 다해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posted by steadyoung
2010. 6. 5. 11:5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6월 2일은 선거날. 투표를 했다.
지지난주에 안과를 못가서 그냥 다담주 수욜이요, 하고 예약을 정했는데 다담주 수욜이 선거날일 줄이야.
안과는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왜 이날 오겠다고 했을까...좀 후회를 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검사는 
이동시간+엘레베이터+대기시간, 의 1/10에도 못미치는 시간에 끝났다. 아, 강남은 열라 멀다 ㅠ.ㅜ
의사쌤이 완전~ 잘 회복되고 있다고 열라 경쾌한 말투로 말했다. 흐음.

안과 다녀와서, 고딩 과외녀를 만나고, 부족한 힘(?)이나마 유시민씨한테 표를 던지기 위해 마감 시간 얼마 전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총 8명을 해야했는데, 누가 누군지 잘 파악이 안됐지만ㅡ_ㅡ; 어쨌든 투표의 꽃은 시장과
경기도지사였기 땜시, 글고 그냥 한나라당을 안뽑으면 되는 일이기에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전부터 쭈욱 시장을 해왔던 한나라당 모씨가 이번에도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공약이 아닌 1번 후보 비방에
중점을 둔 홍보활동이 거슬리긴 했어도, 1번보단 낫겠지, 하고 민주당 모씨에게 표를 던졌다. 
맘에 안들긴 하지만 어째. 에이, 그래도 안되려나- 했는데 그날 밤 결과를 보니 완죤 놀랬다. 
따라잡기 힘든 차이로 이기고 있는 2번씨. 당선 축.

유시민씨의 선전도 놀랠 노-. 사실 그렇게까지 표를 얻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했다.
엄마가 김문수씨가 참 부지런해, 하더니, 공무원들이 유시민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냐고 비방(?)을 한다.
근데 투표 안할래다가 유시민에게 한 표 주고 싶어서 다녀왔다는 말을 하는 엄마는 사실 유시민을 좋아한다.
ㅋㅋㅋㅋㅋㅋ
공무원들에게 미움 받는 건 자기 팔자고 유시민씨가 완벽하게 멋진 대안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치만 그 콩꼬물
안떨어지는 성장이라면 치가 떨리는 나는 김문수씨의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공약이 허망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개발을 하고 얼마나 더 경제가 성장이 되야 모두가 먹고 살만한 세상이 오는걸까.
나 살아있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긴 하는걸까. 아닐꺼 같다. 어제 속보로 경제가 성장률이 어쩌고 뜨더만,
전-혀 의미가 없다.

나는 유시민씨가 좋다. 고등학교 때 항소이유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같은 책을
감명깊게(?) 읽은 탓이 클꺼다. 홍세화씨 책도 절절하게 읽었고만, 요새 뭐 없다. 내가 한겨례를 안보기 때문인가?
여튼 뭐 이래저래 좋게만은 볼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있었다 한들, 그걸 흠으로 잡고 김문수씨
한테 표를 던지기엔, 태생이 서민인 나는, 한나라당이 좀 많이 싫다. 
없는 살림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아빠도 이해가 안된다. 근데 그런 감정은 제쳐두고라도, 내 주변이 그렇듯,
텔레비전이 그렇듯, 그리고 사회가 그렇듯 그냥 좀 더 다양한 캐릭터들이 정치판에 있는게 좋지 않겠느뇨.
한나라당에 노홍철 같은 사람이 몇 명 있다면, 그래서 우리 시에 출마하면 한나라당도 다시 봐줄 용의가 있다.
누구 말마따나 다양성을 인정하는게 진보라는데, 소위 똑똑해서 재수없는 유시민씨가 경기도지사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 사회에 긍정적 파장을 불러오지 않을까. 너그럽지 못하고 기다릴줄을 모르는 우리네
사람들은 물론 야당이 잘못했을 때 여지없이 여당으로 가겠지만. 


신해철씨가 20대에게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단다. 좀 웃기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가 아무 생각이 없다고 비난한걸 반성하겠단다. 좀 웃겼다. 왜지. 
음, 20대라는 카테고리안에 묶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요즘 20대들, 하고 묶는 것 자체에 반감이 든다.
물론 20대가 투표를 했다는 사실이 사회에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진 건 그만큼 20대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인데, 어레레, 이상하지 않아? 20대 동안에 몇 번이나 투표를 한다고.
나도 20대 초반에는 투표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걸 과연 20대 무개념-으로 정리해도 되는걸까.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상관없이 수능 공부하다가 대학에 온건데, 그 때 부터 짠, 하고 정치관심남,녀가 될리
만무하다. 아무도 암것도 안가르쳐주던데.

패기없고 저항하지 않는 20대도 존재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은 않는 20대도 존재한다.
다양한 정치인이 정치판에 있길 원하는 것 처럼, 20대도 한가지 면이 아니라 다양한 가면을 동시에 뒤집어쓰고
사회에 존재한다는 걸, 곧 있음 30대로 진입하는 내가 블로그에 외친다고, 별 다를 건 없겠지만...
뭐든 '소수'의 가능성과 '여지'의 미백일랑 치워버리고 뭐든 알기 쉬운 말로 딱딱딱 정리하고 넘어가려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성 세대가 그렇게 원하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20대는 나오기 어렵지 않겠어. 

 
posted by steadyoung
2010. 5. 24. 02:1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작년 초, 방송 아카데미에 등록하면서 생각한 건
나는 말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생각한게 통역, 강사, 리포터, 였다.

통역은 최큼씩최큼씩 했었는지라, 통역을 하고 싶다는 건 통역대학원에 들어가서 통역을 업으로 삼는
무언가가 된단 건데,
통역은, 재밌고 잘 맞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꿈에도 그리던 직업은 아니고.
강사는 사실, 하는 것 자체에 대한 기회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어떻게 커지느냐가
관건인 세계라, 좀 더 나중에 해볼 수 있는 생각이.
그래서 리포터 과정을 등록한건데 이게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지 않다는 게 과정 수료와 동시에 판명 ㅡ_ㅡ;;
아예 접고 다른 일에 몰두했던 올해 3월에 생각치도 않게 리포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일본 방송)
역시~ 빨랑 포기하길 잘했구나~ 아하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재밌었지만 말야.
그래도 리포팅 과정 등록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코디일과도 인연이 닿았으니. 단순히 생각하면 본전은 뽑은 셈 ㅋㅋㅋ 본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도 덤.

그래서 나는 지금 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어를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친다.
기껏해야 10명도 채 안되는 과정이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했던 일 중 가장 고민 덜하고, 덜 찡찡대고 하고 있다.
나의 원대했던 포부를 들었던 사람들은 결국 내가 '강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찝찌름한 반응을 보이지만
신경안쓰려고 한다. 원래 소심하고 남의 눈 신경 쓰는 타입에 자존심도 세서 그대로 무시하긴 좀 힘들지만...
독기를 품을 때도 있지만 내 독기에 내가 취해서 어지럽기 때문에 -_-;; 그냥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한다.
강사를 계속해서 크게 되야지 하는 포부도 별로 없고... 지금도 언제 호주로 떠날지 고민하고 있다 ㅡ_ㅡ;
그치만 그냥 그런 상황과 감정들에 묵묵히 견디며 생활비를 벌고, 그냥 그렇게 사는 수 밖에 없다.
그 때 그 때 감과 의욕에 따라 움직이면서...

하고 생각했다.

근데 나는 요즘 다시, 슬슬,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생각이 든다.
내 애초의 꿈은 노래를 부르는 거였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졌던 꿈이다.
그치만 노래를 부른다=가수인데, 나는 가수 같은거, 되기 위한 노력도 안해봤고, 할 자신도 없었다.
될 거라는 생각도 안했다.
근데 노래를 부른다=가수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마음.
결국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구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변이된 형태로 방출-_-;

프로이트, 인간은 어릴 때 욕망했던 걸 해야 행복하단다.
그럼 나는 후뢰시맨이 되어서 지구를 지키던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래서 다시금 기타든 피아노든 치고 싶다. 노래도 부르고 싶다.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악기를 배우겠다는 거다.
기타도 두달 배우고 그만둔 적이 있고 피아노도 두달 배우고 그만둔게 세 번이다.
이번에도 또 두달 배우고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그럴 확률이 높지만)
나는 원래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서 무언가 하는 것 만으로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요즘 오오이시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뮤지션, 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오오이시가 부러워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새로운 버닝 남정네가 나타나면 바뀔 수도 있다.

그런거다. 그래도 지금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posted by steadyoung
2010. 5. 22. 01:57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전부터 좋아하던 선배가 있다.  좋다, 라는 건 뭐랄까, 연예인 좋아하는 마음과 비슷하게,
이 사람이랑 실제로 사귀고 싶다거나 (나이가 나이인만큼) 미래를 함께 하고 싶다거나ㅡ_ㅡ; 그런 건 아니고,
보고만 있어도 꺄아아아아악 하고 환호하고 싶은 그런 선배.

대학교에 입학해서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시간 동안
멋지거나, 어렵거나, 그런 선배들에 대한 환상 또한 무참히 깨져왔는데,(그래서 친해졌거나, 사귀다 깨졌거나ㅡㅡ^)
아직도 순수한 마음으로 꺄- 동경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그 선배와 내가 친하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ㅋㅋㅋ
(무려 같이 밥 먹은 횟수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만큼)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커피를 마셨다.
입학한 뒤, 무려 같이 공연도 해놓고, '얘기'다운 얘기를 나눈 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밥을 같이 먹은 건 생각나는데, 밥 먹으면서 무슨 얘기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는 걸 보니 별 거 없었을테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한참 학회 활동할 때 그 선배는 '날라리' 선배 같은 느낌이어서ㅋㅋㅋ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도 그렇고, 나랑은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타입'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근데 이번에 만나서 얘기를 하고 보니, 
내가 좀 더 활발하게, 괜시리 어렵게 생각안하고 '막 대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됐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선배도 선배인지라, 나이가 들은지라, 그래서 바뀐 점도 많이 있겠지만,
전에는 이런 사람과 나는 타입이 달라서 어쨌든 못친해져- 하는 쓸데없는 선입견 따위 무시할 수 있게 된,
나도 참 성격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냐면,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들 앞에선 활발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됐다는거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농담도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위화감도 덜 느끼게 되고.
애초에 내가 왜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그렇게 소심해졌는지, 곰곰이 생각하니까 또 별로 안좋은 기억만 잔뜩.
그랬다. 그땐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밝고 명랑한 것도 사실인데
이래저래 눈치 보는 것도 많고, 주변 눈초리도 신경쓰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도 명확하고 가리는 것도 많고
사소한 일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소심하단 말인데)
내 캐릭터를 힘차게 밀고 나갈 만큼 강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그럴꺼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동경과, 이래저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덕에 거쳤던 많은 일들 때문에
얼굴 근육이 마비될 정도로 싱글싱글 웃으면서 친절하게 굴 수 있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때때로 허무함에 허탈해질 때도 있지만 난 이런 내가 싫지 않아서, 앞으로 더더더더 싱글싱글 웃고 싶다.
애초에 내 성격이 어쨌냐느니 나는 원래 이렇다느니, 그런거 일체 고민안해도 되는 무아지경 상태로 있고 싶다.
일본어로 표현하자면, '히라키나오루'라고, 사전으로는 정색한다는 표현이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

내가 어느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음. 근데 나는 연극이 짱 대박 쪽팔려서 되도록 안하고 싶은데
다들 하라고 강요하고, 진짜 안하면 안될 것 같은 상황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쭈빗쭈빗 하다보니깐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에라~ 모르겠다~ 이럴꺼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싸지르고 빨랑 끝내고 잊어먹어야지, 하고
무대에서 폭주하다.
이럴 때 써먹는 말이 '히라키나오루', 라고 나는 생각한다. ㅋㅋㅋㅋㅋ

지금 나도 딱 그런 느낌이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예전엔 안그런 인간이 그런 척하고 있으니 거짓말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건 아니고, 이게 내게 맡겨진 '배역'이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는 수 밖에 없다는 느낌. 
근데 역시 원래 그런 인간이 아니다보니

말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발 밑이 푸========욱 꺼지는 듯한 허무함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결론은, 그 선배랑 더 친해지고 싶다고.......................................





posted by steadyoung
2010. 5. 18. 10:06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지금 내 몸통만한 검은 덩어리가 내 마음을 배회하고 있다 ㅡ_ㅡ;;

어제 아침 1.

최근에 마무리한 일이 하나, 돈은 내 생각으로는 받아야할 돈의 1/3 정도 받고 한 것 같다. 

그래도 경험삼아(언제까지 경험!만 해야할까-_-)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빛의 속도로 키보드를 두들겨서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까지 이래저래 챙겨야할 게 많아서 짜증도 좀 났지만, 워워.
근데 그래도 실수가 하나 있었다. 아 쪽팔려. 돈은 돈이고, 그냥 쪽팔렸다.
실수한 것도 쪽팔리고 // 돈이 적은건 사실인데 그건 그거고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이상 제대로 해야했는데
이렇게 실수를 하나다니. 사소한 실수라고 위로해볼까 했는데 실수에 크고 작음 없음. 그냥 실수는 실수.
말씀 하신 분이야 그냥 넘어가줬지만 돈 적다고 불평할 처지도 못되나 싶어서 이건 정말 위축됐다. 
나한테 화났다고 할만큼 멋진 인간은 아니고. 난 실수한 인간이다. 그저 한탄만 나올뿐이다. 아아.   

어제 점심 2.

저녁 일에 한시간 반 정도 시간이 비는데, 대체로 롯데리아나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보낸다. 싸니까!

근데 지난 주 롯데리아가 완전히 무도회장 급으로 시끄러워서 어제만큼은 제대로 한시간이라도 쉬고 일 가
야지
했는데, 아뿔싸- 잘들고 다니던 열쇠를 왜 놓고 온지 몰라... 엄마 가게에 갔는데 엄마도 열쇠 없고...
컵라면으로 대충 때웠다. 짜증 게이지가 만땅으로 찼지만 이거야말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나 멍청한 탓..
짜증도 너무 나면 만사 체념이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돌뿌리 걸려 넘어졌으면 그대로 울었을거다.
그래놓고 오늘도 안갖고 왔다. 아.  

어제 저녁 3.

자꾸 월요일에 안오는 애가 한명 있다. 사방으로 전화해도 연락이 안된다. 요 2~3주가 그렇다. 결국 친구들
과 어울
리느라 학원을 띵까는것으로 밝혀졌다. 뭐 더 자질구레한 사정이 있지만, 여튼 열시쯤 어머님이 
전화해서는
결과 '우리 아들과 얘기한 결과 애가 학원을 안나간 건 너 탓인 것으로 밝혀졌으니 너나 잘하
라'고 전달했다.
짜증게이지가 만땅을 넘어서 마그마처럼 흘러넘쳤다. 아. 내가 왜 더 하겠다고 했을까. 
지금 당장 때려친다고
나도 짜증을 내볼까. 내일 그 애를 만나면 칠판 지우개를 집어던지는 퍼포먼스를 
한 번 해볼까. 등등.
지금까지도 게이지를 넘어선 짜증 마그마는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되새기면서 마그마에 기름을 붓고 있다. 

어쨌든, 아침 1 사건은 그냥 입다물고 싫은 마음이 가실 때 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팔릴 쪽이 다 팔리면 된다.
점심 2는 그냥 새똥 맞은 셈이니까 내일은 열쇠를 들고 나오면 된다.

그러나 저녁 3과 같은 경우는 항상 본질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애초에 내가 이 짓을 왜하고 있는거지? 

왜 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면 원래 호주에 가고 싶어서, 영어 공부 할 겸 약간의 돈을 벌어볼라고 
시작한거라는 답이
나온다. '가르치는게 좋아서' 라는 말은 '그나마 가르치는게 싫지 않으니까' 라고 변해서
싫은 상황을 꾹 참는 이유가 되긴 하나, 요즘 다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 놀고 싶다. 아, 아무 것도 하기 싫다. 호주 가는 비행기를 결제하고 싶다.
근데 호주가면 뭐 달라지나? 그저 누구 밑에서 뭘해서 생활비를 버느냐에 차이일뿐.(일이라도 구하면 다행이지만요)
, 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내 안에 검은 덩어리가
나의 긍정적 에너지와 사고방식을 이 때다 하고 갉아먹고 있다는 걸 뜻한다ㅡ_ㅡ;;

아 싫어도 너무 싫다. 상황이 싫다. 실수한 내가 싫고,
학원 안와서 전화를 하게 한 그 애도 싫고 걔네 엄마는 더 싫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고 짜증내는 나는 더 싫다.

안면몰수하고 냉큼 그만둘 배짱은 없으니, 그냥 하긴 하겠는데 7월 말까지 하는 건 생각해봐야겠다.
이대로 가다간 때때로 귀엽다고 느꼈던 아이들 조차 짜증 게이지 상승의 잠재 요소로 둔갑할듯.
결과, 그냥 어제처럼, 지난 주 처럼 가만히 입다물고 하루를 보내는게 정답인데,
짜증 게이지가 잦아들때까지 요동칠 생각과 마음이 버겁다. 
참고 한다고 뭔가 내 인생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일이 아닌 게 명확한데 참고 해야하니 미치겠다.
이래서 돈은 좋다가도 결국 아무래도 좋아진다.

넷북을 질렀는데, 오늘 넷북이 도착할까? 넷북 만지작거리면 좀 기분이 나아질까.

                 
posted by steadyoung
2010. 5. 10. 08:22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아아~ 날씨가 너무 따뜻하다. 너무 좋다. 낮잠자기 딱 좋은 계절이다.

수면부족에 매일매일이 너무 빡셌던 4월달이 어쨌든, 무사히 끝나고,
 
5월이 되고부터는 틈만 나면 자고 있다.

그 좋았던 어린이날도, 어제도, 오늘도, 도합 12시간 정도를 잔것 같다.

오늘도 그렇게 잤는데, 잘 잘 것 같다.



일본어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역시나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있다가

jlpt 기출 해설을 올려야지! 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역시나 시간은 흐르고...

오늘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해봐야지 하고 쓱쓱 독해지문 해설 하나를 만들었더니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어쩐지 곰방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뭐든 시작만 해놓고 보면, 절로 움직이는 법이다.


요즘에 실감하는건 생각난건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는게 좋다는거다.

팽이줄을 돌돌 감아서 바닥에 내팽개치면 지가 알아서 도는 것 처럼

일단 해놓고 보면 알아서 움직이는 법이건만

망설인다기 보다는, 이래저래 불가능하다는 상황 탓보다는 단순히 게을러서 안하는게 많다.

지금만 해도 영어학원 그만두면, 그만두면, 하고 벼르고 있지만

막상 그만둔다고 해서 딱 그만둔 날부터 뭔가를 열심히 할 게 아닌 걸 알기에,

그만두기 전부터 미리 조금씩 해둬야 궤도에 오르니까 

오늘 책과 파일로 가득찬 노트북 가방(요즘 서류가방으로 이용하고 있음...)에 노트북을 쑤셔넣고 학원에 왔다.  


아, 열심히 한 번 해봐야지.

일본어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지금 맘 먹고 있는 모든 컨텐츠를 다 제작해보고, 그리고 호주 고고씽.

 

 

posted by steadyoung
2010. 4. 23. 10:43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어제, 프린트물을 어디서 다운 받으면 좋겠냐는 질문과
오늘 '선생님은 블로그 없으세요?' 라는 질문을 받고
일본+일본어 전문, 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할 '필요성'을 느꼈다.
친구랑 앞으로 운영할 까폐(아직 난 암것도 안하고 있지만...)를 위한 홍보 겸.

티스토리 블로그는 감정 뒤치다꺼리 + 빠순심을 불태우는 장소이기 때문에
정말 친한 친구들이나 전혀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 빼고는 공개하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이건 이대로 비밀로(?) 해두고,
네이버 블로그는 뭐라뭐라 제약도 많고 안써버릇해서 그런지 이래저래 불편하므로 제끼기로 했다. 

남은 건 2년 전에 만들어두고 방치한 이글루스 블로그!

열개 정도의 포스팅이 있더군.
아니나 다를까 블로그를 열심히 하겠다던 다짐의(?) 글이 있길래 망설임없이 삭제해버렸다 ㅡ_ㅡ;


나름 일본어에 접해온지 어언 10년이 다 되가는데(히라가나 외운 시점부터;;)
이래저래 할 얘기는 많지만 정식으로 풀어놓은 적이 없으니 맘 다 잡고 꾸준히 운영하면 좋겠다.


재밌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아주 활성화 되면 그 때.... 티스토리에도 링크를 걸어보자. 우훗!

posted by steadyoung
2010. 1. 26. 02:26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어떤가요?

한심해 보이나요?

 

 

바로 나예요.

 

 

 

작년의 나는 졸업 전부터 몰두했던 '꿈 찾기'에 계속 열중했었다.

아카데미에 다니는 둥,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하지만 결국 11월 쯤 결론을 내렸다. 깨닫고 말았다.

 

꿈을 갖고 노력하는 인간을 무한 동경 하지만

정작 그런 나는 꿈을 가질 수도,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할수도,

그러므로 나중에 '성공기'와 같은 후일담을 늘어놓을수도 없는

그런 인간이라는 걸.

 

인생을 큰 그림으로 보는 멋진 습관도,

내 인생은 내가 바라는대로 된다는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매우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이지만

사람의 삶이란게 때때로 본인이 차마 견딜 수 없는 시련이 닥쳐

풍지박산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살기 때문일까.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내가 맘 먹은 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떡갈나무 정신이 애초부터 내게는 없다.

주변 상황에 무작정 휘둘릴 뿐이다. 갈대처럼.

 

 

꿈가진 인간에 대한 동경은 예전부터 심했기 때문에

이걸 인정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인생'을 걸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아직 못찾아서

지금 내 삶의 모든 것이 꿈 모색 행위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건

아마 앞으로 적어도 5년은 계속 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서른 살 쯤 되었을 땐 스타트라인에 서있고 싶다;;)

 

일단은 결론을 내렸다. 내게는 꿈이 없다, 지금 그리고 당분간.

 

 

꿈을 못찾아서 헤매고 다닐 땐 내가 덜떨어진 인간 같아서

절망적이고 비참한 기분이었는데

(꼴에 또 회사를 다니긴 싫어서요...회사 안다니려면 뭔가 멋진

꿈이 있어야될 것 같잖아요...)

막상 인정하고 보니 속이 시원하다.

그건 절망적인 일도, 비참한 일도 아니라

그냥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인거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내가 A형인 것 처럼, 머리가 반곱슬인 것 처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걸까. 생각했고,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 죽을 때 까지 생각하겠지.

하지만 지금, 이미 회사라는 선택지는 내다버린지 오래니까

흥미를 느끼는 일- 참고 할 수 있는 일, 싫지 않은 일의 끈을

단단히 잡고 꿋꿋하게 해나가기로 했다.

싫은 일은 매일 매일 산더미지만,

그래도 어쩐지 참을 수 있는 일이란게 있다.

내게 소중한 건, 와주지도 찾아지지도 않는 꿈의 파편이 아니라

참을 수 있는- 싫지 않은 자그마한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끈을 놓지 말아야지.

그 끈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원대한 꿈과 거창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니까,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덤덤하게 실을 잡고 가는 그 길의 끝에는,

운명이 장난을 치지 않는 이상 내가 바라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건 지금 내가 막연하게 꿀 수조차 없는 꿈도 뭣도 아니라

어떤 깨달음이나 해탈과 같은 형태로 문득, 아주 잠시

내 머리를, 내 몸을 스쳐지나가지 않을까.

그 순간이 언젠가 온다면 내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생일텐데.

 

세계의 정세, 나란 인간이 타고난 운명, 내 역사, 나의 성격,

그 때의 내 노력과 감정들,

그게 내 끈과 공명할 때 얻어진 산물이 내게는 꿈이다.

나는 결과론을 믿기로 했다.

 

준비 땅하고 꿈을 꿀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꿈을 꾸면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구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꾸고 나서 꿈이었다고 알게 되는 것처럼, 깨닫는 것 처럼

나는 그런 사람이길 희망해본다.

 

 

꿈은 이루어진다, 꿈이 있는 자가 행복하다, 성공한다.

그런 말에 현혹되지 맙시다.

과거와 현재에는 꿈이 없을지 몰라도

미래 시제로 옮겨서 되짚어보면 꿈이란게 있을 수도 있어요.

 

없으면 없는대로, 내 인생 자체가 꿈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긍정해보는 게 또 덧없는 시도는 아니잖아요. 

posted by steadyoung
2010. 1. 5. 01:3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폭설이 내려서 차량운행이 안되므로 오늘, 내일 학원수업이 미뤄졌다.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전화를 걸다보니 어머님들과 통화를 하게 되는데,
그 중 예비 고1이 되는 학생의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시더니 다짜고짜
애가 집에서 공부를 안하는데 제대로 시키고 있는거냐고 따져묻는다.
아. 혈압이 빠직, 상승한다.
여튼 좋게좋게 나도 잘 할테니, 집에서 잘 지켜봐달라-하니까, 화가 치밀어오르는데 참는 기색이 느껴지면서
아니 지금 책임을 학부모한테 미루는거냐고 소리를 지른다. 오마이갓 ㅡ_ㅡ;;;
단어 안 외우는것에 대해 제대로 체크를 하고 있느냐-
그거 몇 푼짜리라도 공부시키려고 보내는건데 이렇게 신경을 하나도 안쓰면 되냐
등등 실컷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끊는다. 이게 왠 열폭이람. 누가 푼돈이라고 욕이라도 했나.

아쒸 나더러 어쩌라고!!!!!!$%^&*(
시험을 봐도 안외우고 해오라고 프린트를 내줘도 안해오고 그럼 내가 집에 따라가서 공부하는걸 내내 지켜보랴????
그럴꺼면 과외를 시키던가, 것도 불안하면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을 보내던가!!!!!!!!!!!!!!!!!!!!!!!!!!!!!!
하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없는 살림에 공부시키는 부모님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돈을 받는 입장이니 입닥치고 공손하게 굴었다.
그런거야 잠깐 기분 더럽고 마는거니까 괜찮은데 여기서 잠깐.

방식을 바꿔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쫌 자기자랑)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제법 하는 편이었는데, 사실 공부하기 진짜 싫고 귀찮고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애들한테 지기도 싫고 혼자 체면 차리느라 눈물을 머금고 공부했다.
그렇다고 독한 타입도 못되서 기를 쓰고 1등해야지, 하는 맘도 없고 대체로 5등안에 들면 만족하는 편이었다.
집중력도 짧고 변덕도 심하고 머리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지만 평소에는 학원다니고, 벼락공부만은 열심히 해서
그럭저럭 성적을 유지했다. 공부는 학원에서 배우고, 혼자서 했다. 
그래서 진~짜 공부 안하는 애들을 과외에서 만날 때 마다 스스로 공부했던 중학생 시절의 내가 참 대견했다-_-;
물론 부모님이 중학교 때 날 방치-_-;했던건 알아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겠지만, 
비평준화 선발고사를 앞두고 프린세스메이커2를 밤낮으로 해도(모뎀 때문에 전화가 불통되서 된통 혼난 적은 있지만..)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물론 고등학교 가면 상황이 많~이 바뀌지만)

여튼 공부를 누군가에 의해 마지못해 억지로 한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학원 쌤한텐 잔소리 좀 들었겠지-
남들한테 뭐라고 말 듣는 것도 싫고,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내 일도 자신한테 단언하기 무서운데, 남의 인생, 공부 안하면 큰일나! 같은 말, 죽어도 못하겠다. 
어차피 자기 인생이고, 자기가 하는 공부,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된다. 
드물긴해도, 공부 말고 일치감치 제 길 찾아서 떠나는 애들도 있으니, 제 길을 일찍 찾는 것 만큼 부러운 게 또 없다.
무용하면서도 공부 열심히 했던 친구, 공부와는 담쌓고 작곡가 아버지와 기타치던 유쾌한 여자애, 유학간 아이,
아이들의 은근한 따돌림속에 메이크업 학원을 다녔던 아이.
  
어리니까 아직 모른다는 건, 애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다들 생각이 있다.
그때 암 것도 안하는 애들, 어른되서도 암것도 안할 확률이 높다. (이걸 뒤집어엎은 사람들은 자서전을 내더라...)

왜 남들이 시키니까 하고 안시키니까 안하고, 그래야 하는걸까.
왜 자기 자식 공부 못하는 탓을 남한테 하는걸까.
왜 자기 공부 못하는 탓을 남에게 돌리는걸까.

공부할 의욕은 자기 스스로 찾는 수 밖에 없다.
애들도 스스로 자기 공부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냥 성격상 남들한테 싫은소리 못하는 것도 크지만-_-;;;)

그래서 대체로 과외하는 애들+학원 다니는 애들한테 할만큼의 숙제만 내주고, 소량의 단어를 외우게 하고,
머리 좀 큰 애들한테는 단어 시험을 볼지 말지, 여기까지 숙제를 할지 말지 스스로 정하게 하는데,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이게 당연한건가????
내가 너무 이상적인가? 애들을 존중한답시고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는건가??
어차피 애들은 강제로 시키고 볼일인가???

왜 공부 안시키냐고 떼쓰는 어머님들을 볼 때 마다 땅이 조금씩 조금씩 꺼지는 것 같다.
나는 영문법과 독해를 가르치는 학원 강사지, 그 아이들의 인생의 멘토가 아닌데,
동기도 불어넣어줘야 하고 강의도 하고 집에서 공부하는지도 체크하고 학부모님들 전화도 받아줘야하니
참 짜증이 난다.
그래. 그걸 포함해서 일이다. 말도 안되는 보수지만 꾸욱 참고 일단 하기로 했으니 감수하기로 하자.

하지만 공부 안하는 애들이 너무 한심한건 어쩔수가 없다. 

중소기업의 연봉 2250만원이 적다고 하니 근데 그것도 지원못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고, 3년제인 동생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2250은 말도 안되는 연봉이라고 코웃음치며 취업 안되는 대기업 지원자들 틈바구니에서,
대기업에서도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면서 회사 나가서 뭐할지 고민하는 친구, 선배들 사이에서,
2250이라도 감지덕지 받고 싶은데 4년제가 아니어서 지원못하는 2-3년제 동생 친구들 속에서,
서울 4년제가 아니어서 앞일을 생각하면 울컥울컥 재수하고 싶다는 동생의 옆에서,
학벌이 뭔지, 그 놈의 수능과 내신이 뭔지, 경쟁이 뭔지, 취업이 뭔지 참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남들 알아주는 4년제도 서류전형에서 스스륵 걸러지는게 당연지사다.
취업 준비한다고 뼈를 깎아서 한 두군데 합격하는게 당연한 요즘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간 예전 과외남은 취업을 위해- 미래를 위해- 예전에 공부했듯 성실하게 매우 열심히
경력과 실력을 쌓고 있다.
지방대 가서 그냥 열심히 살아봤자 취업의 벽에서 예전 과외남 같은 애들한테는 이길 수 없다. 딴길을 찾아야한다.
사람들은 그걸 현실이라고 부르고, 당연한 결과라고 여긴다.

안전하게 공부하던가, 공부 안하고 스스로(+뭐라뭐라 잔소리할 부모)를 책임지던가.
전자도 써봐이벌인 이 시대에, 후자 역시 써봐이벌이다-. 뭐든 뭔가 해야한다 이거다 흑흑흑.
이렇게 말해봤자 잔소리 레파토리가 돌고 도는 입아픈 짓이라 가만있는데,
이제는 아이들의 의견 따위 필요없고 그냥 닥치고 무조건 하삼! 포스로 가야하나 고민이다.

이 고민이 심각한게, 일단 닥치고 무조건 하삼! 이라는 말을 곱게 포장한,
미쳐라, 열심히 해라,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를 혐오해왔지만
요즘에는 결국 그 말이 맞나 싶어서, 또 한 번 한 입으로 두 말 할까봐 무섭고 서글프다.

아이들을 무조건 공부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면,
나도 닥치고 뭔가 하나 열심히 안하면 얘기가 안될 것 같아서 싫단 말이다----------------아아아ㅏ아아아아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30. 01:15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지드래곤님이 또 한바탕 이너넷을 뒤집어놓았다.
남의 블로그에서 보고 리플을 읽다보면 덜 심심하긴 한데, 열심히 싸우는 분들 심히 피곤하겠다 싶다.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스타를 데리고 있어서 YG도 참 피곤하겠다 싶다.

아이돌은 일단 다섯명 중 세명은 쫌 생기고 봐야한다는 나의 확고한 아이돌관을
빅뱅이 오롯이 비껴나가는 덕에, 2009년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일지는 몰라도 큰 관심이 없다.
물론 일본 방송계의 변두리를 지켜왔던 동방신기가 일본 진출 후 몇년이 걸려 뮤직스테이션에 출연 했을 때의 감동을
진출하고 샤샤샥 뮤직스테이션에 출연한 빅뱅에 대한 놀라움이 뒤집어엎었을 때는 쫌 깜놀이었지만.
그리고 가라가라GO를 뮤직스테이션에서 부르는 빅뱅이 생각보다 너무 스타일리쉬해서 깜놀.
'하루하루'와 '거짓말' 무대는 뭥미 싶게 엉성했지만, 가라가라 고에서 빅뱅은 번쩍번쩍 빛났다.
과연 쟤는 영어를 잘하는 건가 대중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동시에 욕도 먹는 지드래곤의 영어같은 발음이
일본어 가사에서는 꽤 세련되게 보인다는 것도 플러스 효과.
(일본 방송 관계자 왈, 동방신기는 쟈니즈 눈치보느라 부르기 힘들었지만 빅뱅은 노선이 좀 달라서 부른것 같아)

그리고 무릎팍 도사에서 고현정 언니님 가라사대, "탑 걔가 뭘 좀 알아"
대동의한다. 그렇다. 탑은 뭔가 좀 아는 것 처럼 보인다. 내식으로 해석하면 '색기'가 있다.
세련되게 바꿔말하면 '섹시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대성이는 웃기지. 그러니까 괜찮아. 그리고 나머지는,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드래곤.
2009년 논란의 중심에 섰다. 표절(논란)을 거세게 불어일으켰다.
타이틀은 천보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쳐도 커플링 곡과 오아시스의 원곡은 두-둥이다.
그래도 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에쵸티가 수많은 표절(논란)에 휘말렸을 때 눈을 질끈 감았기 땜시 ㅡ_ㅡ;;;
질타할 수가 없다-_-;;;; 팬질과 빠순녀의 프롸이드를 걸고 한입으로 두말하진 말자...OTL
그래도 배철수씨 라디오에 악플을 다는 건 그저 무식한 행동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으니...안타깝다.
(김태훈씨도 좋아하는터라...)
하지만 인기만큼이나 두들겨 맞는 지드래곤을 감쌀 생각은 요만큼도 없는게, 사실 지드래곤, 비호감이다.
빅뱅이 누군지도 모를 2006년에 벅스에서 무심코 클릭한 '더리캣쉬'를 즐겨들었을 때만 해도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뭐 여기에는 그간의 빅뱅의 행적과 함께 내 상상과 공상의 나래에서 비롯된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압축해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을 진공 청소기처럼 마구 빨아들이는 그의 매력이 그저 오롯이 나를 비껴나갔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콘서트 선정성 논란이 불거졌을 때 무려 클릭해서 게시된 사진을 본 뒤(그 유명한! 성행위 연상 퍼포먼스!!)
에잇 뭐야 하나도 안섹시하잖아!!! 하고 초연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닫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드래곤 팬들은 이걸 보고 밤에 잠못이룰만큼 흥분하는 건가? 역시 성적 취향은 다양하니 존중받아야하는군!!!
하고 곰곰이 생각했는데 아뿔싸 보건복지부가 태클을 걸었다.
평소 지드래곤이 탐탁치 않았던 많은 사람들도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사건'의 뽀인트는 미성년에게 인기가 많아서 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공인' 지드래곤이,
자신을 위해 모인 수많은 미성년(12세 관람가)을 앞에서 성년 퍼포먼스(누가봐도 섹스를 연상시키는)를
과감하게 펼쳤다는 데에 있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란 말이다, 하는 개인적 의견과 섹스에 대한 이중적 잣대-사회적 모순에 대한 불만이
지드래곤을 두둔하게 만들 법도 한데, 또 그렇지만도 않다.

다수였을 여중고생 아가들이 먹었을 그 충격 혹은 우리 오빠가 지금 뭐하고 있을까 하는 그 시츄에이션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멍 때리는 상황에 공감이 안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한국에서 자유로운(?) 개성(?) 표현을 하면 거센 바람이 불어닥칠 사실을 몰랐을 것도 아니면서
감행한 용기를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연예인으로서 기민하지 못했다고 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다른 일에 힘쓰고 판단은 대중에게 맡기는게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팬들도 신문에 광고까지 낼 돈이 있으면 다른 일에 쓰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지드래곤의 퍼포먼스는 '애가 어른 흉내내는' 것 처럼 보이고 ㅡ_ㅡ;;;
그래서 대중들의 관심 자체가 매우 과분하고 쓸데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ㅡ_ㅡ;;
19금AV 비디오 아 이제 DVD인가...여튼 보고 나서 호기심에 한 번 따라해본 것 같은....아이.
페로몬이 부족한가? 아님 내 취향이 독특하나? 내가 너무 맥락없이 그 장면만 봐서 반감됐나?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 다. 비호감이긴 해도 지드래곤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오히려 남들 다 좋은데 안좋으니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아 억울한데!!!!

지드래곤도 섹스어필이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세계에 부합하다고 생각했다면 더 공들여서, 더 정교하게 
한마디로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면서 효과도 이백배로 거둘 수 있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면 됐을텐데
이건 뭐 정면돌파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연출이니.... 흉내한 번 낸 것 같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욕하다니
안쓰럽기도 하다-_-; 는 생각이 들만큼 '남자애의 치기'로 밖에 안보인다.
장근석의 오다리기 죠 패션 따라하기가 안쓰러웠던 것과 마찬가지...

그가 동경하는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가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건, 그게 단순히 섹스를 가리키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끄는 에로티시즘, 뭐 그런것일텐데(오다기리 죠도)
단순히 행위만 따라하고 패션만 따라한다고 분위기마저 연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드래곤도 세월이 조금 지나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그래서 주위의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되면, 그 때 다시 한 번 그런 퍼포먼스를 19금 때려서 해줬으면 좋겠다.
그때는 그 퍼포먼스의 찌라시같은 영상을 잠깐 보고도 밤에 잠못이루는, 
그런 페로몬 뿡뿡의 아티스트가, 된다면 좋겠지??? 그게 지드래곤이 추구하는 세계라면.


지드래곤, 여리여리하게 보여서 욕 많이 먹는게 참 안쓰럽다. 난 원래 남자 아이돌에게 관대하니까 ^ㅡ^ 

하지만 자기가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무엇을 불편하게 하는지는,
공인이 아닌 연예인으로서 한 번은 생각해볼 일이 아닌가 싶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12. 03:38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나는 어렸을 적 책을 좋아했다.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전-혀 안나는데,
내 기억을 뒤져서 읽었던 책 중 가장 오래된 책을 찾아보면 한국전래동화가 있다.
(바리공주, 이런거 있었던 기억난다. 테이프도 딸려있어서 가끔 들었었다)
그런 옛날 옛적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이모네 집에 놀러가서도 비슷한 전집의 전래동화를 
좋아하는 부분은 읽고 또 읽고 그랬더랬다.
(겨우 얻은 여동생이 실은 여우여서 동물의 간을 빼먹고 부모님 잡아먹고 그런 이야기-_-;;)
옛날 옛적에 배추도사 무도사를 보고 또 보고 비디오 빌려서 보고 또 봤던 것도,
은비까비를 보고 또 봤던 것도 머털도사와 왕지락 얘기를 명절마다 보고 또 본 것도 그런 맥락.

부모님이 큰 맘 먹고 사줬을 웅진위인전기(한국은 연두색, 외국은 보라색)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인물들 전기는 굉장히 재밌었는데, 쑨원이나 신채호 막 이런 비교적 근대 위인전은 잘 안읽혀졌던 '감'이 생생하다.
그랬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중학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사회과목을 좋아하게 되는 흐름으로 바뀌는데,
중2때 국사나 세계사를 공부할 때는 너무 신나서, 그럴 필요 없을 정도로 싸그리 외우곤 했다.
'헬레니즘' 문화 같은 말이,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져서 몇 번이고 되내여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가서 수능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선택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내가 세계사를 선택하면서 읽었던 유시민씨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그리고 홍세화씨 책 뭐 등등등, 그리고 조금 특이했던 세계사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는 드디어 근대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학교 때 그렇게 좋아했던 세계사가 산업혁명을 맞이할 쯤 되면 고통으로 느껴지고,
(마젤란은 왜 항해를 했더냐! 짜증도 나고...)
한국이 강화도 조약을 맺을 무렵이 되면 머리가 아파지면서 몸서리치고 싶어졌는데
고등학교에 가니 산업혁명 부터가 드라마틱하더라- 이거다.
즉, 지금의 부조리의 원인을 굳이 역사적 맥락을 끊어 한군데 지정해서 뒤짚어씌우자니
산업혁명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근데 나도 참 설렁설렁한게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책을 좀 더 읽거나 진로를 그쪽으로 했다면 참 훈훈한데
중학교 3학년 때 부터 어렴풋이 진로를 일본어과로 정해놓고 있어서 관심 조금 갖고 아는 척 조금 하는 걸로 끝.

그리고 이야기는 대학교로 이어져-
2007년 2학기, 일본경제와 한일관계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 선생님이 너무너무너무 박식하고
수업도 재밌고 해서, 나는 드디어 독도 문제의 실마리를 알게 되고,  전범재판의 존재를 알게 되고,
조선인 B급 전범도 알게 되고 1965년 한일협정의 문제점도 알게 되고....... 그랬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한일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한 원인을 굳이 역사적 맥락을 끊어 한군데 지정해서
뒤짚어씌우자니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이 아니더냐- 하고.
 

그건 올해 신센구미(신선조)를 보면서도 강렬하게 느꼈는데,
사실 메이지유신이라는게 굉장히 특수하고 놀라운 사건이라는 것. 무려 왕정복고와 서양문물의 융합.
그리고 '시대가 움직인다'는, (미야베 미유키가 가모우 저택사건에서 주장하는) 
인물들이 자기들의 역할을 하나 수행하고 죽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메이지유신의 매력.
물론 한국인 입장으로는 불공평 조약을 당하게 되는 시발점이라 매우 안타깝지만,
역사적으로는 참 재밌는 부분이라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료마가 간다 읽는다면서 도통 책을 펼치지 않는...)

아까 쿠보즈카의 부타이를 포스팅하면서 안보투쟁을 배경으로(정확히 말하면 60년 안보투쟁)한다고 해서
안보투쟁을 좀 조사해보니 2007년에 수업 들으면서 귀에 익었던 단어가 차례차례 등장했다.
키시 노부스케도 그렇고 여대생이 한 명 죽었다는 것도 그렇고 뭐 이것저것.
키시 노부스케는 미국과의 안전보장조약을 통과시키려는데 저지당해서 등등등 사건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번역해보기로 하고
사실 안전보장조약에 대한 관심보다 키시 노부스케가 도죠 히데키 내각의 각료이자 A급 전범이었다는 사실과
그의 정치과정 수행방식에 불만이 있어서 그렇게 커다란 투쟁이 일어났다는 평가가 있었다.
결국 일본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내각을 퇴진시켰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둔 일이지 미국과의 조약 어쩌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 이래서 아직도 주일미군 문제로 오키나와가 시끌시끌....

요즘 쿠보즈카는 료마가 간다를 읽고 있는 듯, 안보투쟁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에 참여하니까
이래저래 핫!한 정신상태인 것 같은데
나도 그와 똑같은 걸 알고 싶고 관심을 갖고 싶으니 더 알아봐야겠다.

쿠보즈카는,
安保闘争・明治維新、同じような熱を感じる。(안보투쟁과 메이지유신, 같은 종류의 열기를 느낀다)
라고 표현했지만,
그가 일본인으로서 느낄 자부심과는 달리, 나는 좀더 다른 입장과 관점으로 일련의 흐름을 보게될 꺼라는게
두근두근, 기대되고 흥미롭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11. 03:26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어제는 하루종일 통역일을 했다.
통역을 담당한 아저씨는 곤충요리 연구가로, 한국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호텔에서 만나서 간단히 회의를 하고, 경동시장으로 고고.
아저씨는 지난번에 와서 '지네'와 그밖의 곤충을 샀다는데 이번에는 동물(?)도 사기 위해 한번 더 방문.

뱀과 도마뱀, 동충하초, 그리고 고려인삼을 샀다.
지금까지 26년을 살면서 동충하초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동충하초에서 다양한 곤충들의 이름까지 참으로 뜻깊은 공부가 되었다 ㅡ_ㅡ;
중국 지네보다 한국 지네가 훨씬 깔끔하고 아름답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건 보면 안다;;;;

그리고 다시 명동으로 돌아와서 짜장면을 먹고,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
아저씨가 설문조사를 하고 싶다는거다. 거리인터뷰를 몇 번 해서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에도
상처ㅋㅋㅋ받지 않게 되어서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국 사람들이 곤충'식(食)'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문조사였다.
1. 번데기 먹어본적 있냐 /맛은 어땠냐? 2.그거 말고 딴 곤충은 없냐
근데 골떄리는건 여기서부터!!!

3. 일본 곤충을 한 번 먹어볼래???
그리고 다이소에서 산 1500원의 세칸으로 나뉘어진 타파에
메뚜기, 벌의 유충, 자자무시(강에 사는 벌레)를 조리한 걸 넣고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할 수 있지 뭐. 
하고 생각했는데 아저씨 왈, 너도 먹고 해야되지 않겠니???

그래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메뚜기, 벌의 유충(방송촬영 때는 제법 커진 유충도 간장에 찍어서..ㅠ.ㅜ),자자무시를
먹었다. 먹었다. 먹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같은 반 여자애가 도시락 반찬으로 메뚜기를 싸와서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벌레를 먹은 것이다 흑흑흑

아저씨가 너무 진지하게 권해서 계속 웃으면서 싫다고 하기도 그렇고, 호기심도 조금 있고(물론 될수있음 안먹고싶지만)
명동 한복판에서 벌레 내밀면서 설문조사하려면 나도 먹어야겠지...그래야겠지...하면서 먹었다.

메뚜기를 잡는 손가락이 부들부들...흑흑 싫다!!! 그래도 일단 넣어서 씹었다.
이건 뭐...잔새우 볶음 같은 맛이라서 평범했다. 근데 메뚜기는 다들 먹기도 하니까 괜찮은데
벌의 유충은 진짜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아저씨에게 내 인생 일년 분의 용기를 써야한다고 말했다.
글고 씹었는데... 이것도 뭐 콩이라고 그러면 조금 수상하게 여기면서 먹을 것 같은 맛ㅠ.ㅜ
큰 개미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걸 권하길래 진짜 정중하게 사양했다ㅡ_ㅡ;
그리고 자자무시도 먹었는데 이건 양념맛이 굉장히 강했다. 이 양념맛이란게 딱 일본인입에 맞을 것 같은 맛이라-
짜고 달착지근한 맛에는 꽤 익숙해서 양념맛은 나쁘지 않았다.(나중에 이 벌레를 용기있게 먹은 몇 분이 비리고 맛없다고 했다)

올해들어서 이렇게나 나란 인간이 대단한지 처음 깨달았다. 하하하ㅏㅎ
살면서 이렇게 용기 내본 순간이 없다고 말하니까 아저씨가 오바하기는...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진짜로!!!!!
적어도 세달분의 용기를 응축시켜서 몇 분 간 사용한 기분, 팍 늙은 기분....흑흑흑

그리고 모 모텔로 옮겨서 촬영, 지금 생각해보니 와일드바니 재범 만보기차고 난리치는 장면을 찍은
바로 그 곳 아닌가!!!  (어쩐지...로비에 투피엠 사인이 있다 했다...)
촬영은 굉장히 늦어져서 12시 반 경에 끝났는데, 촬영의 클라이막스는 벌칙으로 바퀴벌레를 먹는 것이었다.
마다카스카르바퀴벌레라고 엄청 큰 바퀴벌레...
나도 그 아저씨 블로그 들여다보고 어제 하루 같이 있다보니 어느정도 익숙해졌는지
바퀴벌레라는 한음절한음절이 가져다주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조금 덜해졌다. 아아아아아아아ㅏ 싫다
그걸 먹은 모 연예인 분 진심으로 안됐다고 생각했는데...그래도 리액션이 약해용
우에시마 아저씨랑 데가와 아저씨가 있었다면
와라이노카미가 오리떼키따노니!!!!!!!!!!!!!!!!!


아저씨가 바퀴벌레도 권하려고 하길래 이건 무리라고 거두절미하고 사양했다.

사실 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흥미가 있는 편이라, 벌레 먹는다고 손가락질 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벌레를 솔선수범해서 먹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제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면, 벌레를 먹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벌레를 먹으라고 강요받았기 떄문.
벌레란 나에게 먹어서 안될 건 없지만 안먹어도 되는 생물인데,(라고 생각함)
아저씨가 반농담반진담으로 내가 곤충연구회 한국지부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하하하하 싫죠.

나는 어렸을 때 부터 강아지에 별 흥미가 없었다. 물론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긴 하지만
엽서에 그려진 강아지들을 보고 귀엽다고 온 몸을 부르르 떤 적이 없는 걸로 봐서 
그냥 강아지라고 특별할 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어린 마음에 강아지는 먹을게 아니라고 느꼈는지
엄마가 보신탕을 사와도 안먹곤 했는데(하루는 엄마가 강제로 입에 넣어서 씹었는데..부드러웠다),
2006년, 학교 선배와 친구들이랑 복날을 맞이해 개고기 도전을 해서, 그냥 평범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학생 떄 부터 보신탕 찬성반대 운운했을 때도 뭘 그런걸 갖고 찬반을 논하는지 이해가 안갔는데
그건 개고기를 먹게 된 이후부터 더 강해졌다. 돼지나 소나 개나. 하는 생각.
식품으로 정할 수 없어서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던데 그럼 식품으로 정해서
위생적으로 문제가 안생기도록 단속을 강화하면 되는거잖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먹는 사람들을 냅두자는 건데 다들 말이 많군
하고 생각했다. 지금도 물론.
근데 신기한 건 그 무렵부터 강아지라는 생물이 애완동물로서 귀엽다는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개에 대한 흥미가 생긴건가 단순히....

뭐 어쨌든 보신탕 생각나서 먹으러 가는 수준은 아니지만, 먹으러 가자면 아무 거부감없이 따라가고 있는데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게 개고기.
개고기를 먹느냐...그걸 어떻게 먹냐...못먹겠지 않냐.... 이런 말하는 일본 사람 사실 속으로 짜증난다.
(물론 나도 먹어보고 싶다, 먹어본 적 있는데 역시 잘 못먹었지만 먹는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는 상식적인 인간도 있음)
거기에서, 내가 오바해서 생각하는 걸수도 있지만, 한국을 야만적인, 즉 자기네 보다 열등한 문화라고 까고 싶어하는
은근한 속내를 느끼기도 하고, 그런 걸 전혀 생각치는 않아도 개고기 나도 먹는다, 고 이미 말한 나를 앞에 두고
그걸 어떻게 먹냐고 하는 건 조금 실례라고 생각되지 않나? 그 정도의 배려심도 없나? 하는 마음에 짜증 대박.

근데 이제는 조금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물론 개고기와 곤충은 꽤 다르지만, 내가 곤충을 향해 손을 뻗는 정신상태나 개고기를 향해 숟가락을 뻗는 정신상태나
근본은 똑같겠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저씨 곤충 먹는다고 이상하게 보고 싶진 않은데,(오히려 한가지에 심하게 집착하는 일본인의 성향은
결국 여기서도 발휘되나 싶어서 매우 자연스러웠다) 아저씨가 곤충을 먹을 자유와 권리가 있는 것 처럼
나도 곤충을 안먹을 자유와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가끔 내 발언에도 결국 이런걸 왜 먹니 먹는 너는 좀 이상해 하는 시선과 감정이 섞여 있었겠지.
그걸 느끼게 했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나는 
곤충을 먹었잖아!!!!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3. 04:29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11월 둘째주는 대부분을 부산에서 보냈다.
11월 초, 히키코모리 짓을 하고 있다가 갑작스런 출장으로 다른 도시에서 먹고 자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다보니,
돌아왔을 때는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은 변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시 '의욕'이 돌아왔달까.

금요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와서 밥을 먹고, 한숨 자고 싶은 몸을 이끌고
근처 영화관에서 '솔로이스트'를 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근데 솔로이스트 재미없었어용...)

그 기분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츠보미에게 장문의 메일을 쓰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되내이고 싶어서 블로그에 접속했지만,
정작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몇자 쓰다가 덮어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아이돌 관련 포스팅을 시작하고, 백야행에 대해서 혼자 주절주절 쓰는 등,
요새는 봇물터지듯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 나란 참으로 평균적이지 못한 인간이다.
무려 지금은 아까 껐던 컴퓨터를 다시 켜서 방금 전에 읽은 '밤의 피크닉' 감상을 올리고, 하나 더 깨작깨작.

기복이 심하다고 까지 말할순 없어도 안정적이지 않아서 항상 무언가를 꾸준히 하질 못한다.
기분이 내키면 안시켜도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만큼 하는데,
기분이 안내키는 건지 뭐가 이유인지 모를 침체된 시기에는 누군가 윽박질러도 가만히 있을 뿐이다.
부산 다녀와서는 기분도 안정되서 이런 자기 자신의 태평한 or 한심한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히키코모리 현장으로 복귀했을 때는 나 자신을 쪼아대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그리고 그래도,
나는 이대로 있어야지.
더 일하고, 더 책을 읽고, 더 영화를 보고, 더 오와라이를 보고, 더 빈둥거리고, 더 친구들과 만나고
블로그에 보다 많은 것을 쏟아내야지.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1. 03:5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강간 살인 성추행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 마다 내가 피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굉장히 본능적이고 당연한 두려움일테다.

하지만 밑에도 적었듯이
동생이 일하는 곳에서 '몇 대 맞은' 일을 폭력 사건이라고 칭하고 싶은 내 마음이 '이래서 여자들은 별 것 아닌 것 갖고
오바한다니까' 하고 남성 집단에게 손가락질 당하진 않을까 하는 피해망상적 두려움과 
몇 대 맞은 건 폭력이라고 볼 수 도 없는 무시무시한 일상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몸서리 쳐지는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 쑤-욱 솟구쳐올랐을 땐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동생이 그런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걸 원치 않은데,
군대와 회사로 대변되는 조직과 집단의 일상적 폭력 속에 익숙해진 자들로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나도 동생도 되도록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취해야할 입장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사실은 조낸 패주고 싶다고 밝힌 내 속심정이 증명하듯,
폭력엔 폭력으로 혹은 권력으로 맞서고 싶은 인간 본래의 어두컴컴한 심보를 스스로 잘 알고 있을 때는 더욱,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간디보다 함무라비 법전이 떙기는지라...)

동생이 만약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인 '누나'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자괴감만이 증폭되어,
정작 고민을 털어놓은 동생은 샤워하고 발 뻗고 자고 있는데 혼자 공포에 떨고 있다.
나는 가족이나 친구의 일로 자신의 무력함을 맛보는 상황만은 피하면서 살고 싶은데
이렇게 어이없이 이토록 간단히 무력함의 거대한 그늘을 흘낏 바라보게 되는 상황이 올줄이야.

두렵다. 정신 바짝차리고 살아야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겠다.
정면돌파보다는 돌아가는 게 일을 매끄럽게 만들 때도 있다는 걸 깨달을 만큼의 나이는 먹었지만,
부당한 대우와 강요된 인내의 끝은 귀찮다고 해서 피해간 그 길에 있지 않다고 믿을만큼 새파랗다.
일상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확고한 대처가 필요하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1. 03:19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바로 포스팅을 하면 꽤 흥분할 것 같았는데,
어제 올린 엔돌핀 공급용 재범 영상과 친구가 보내준 2PM '프롸이데이나잇'을 보고 또다른 흥분으로 그 흥분을 잠재웠다.

남동생과 나는 다섯살 차이로, 그 옛날 동생이 너무 어려서 내가 힘으로도 우세했을 시절에는
이불에 동생을 돌돌 말아 위에서 울 때 까지 누르거나
새햐얀 동생 손목을 꼭 한 번 있는 힘껏 깨물어보고 싶어서 네번 참고 한 번 깨물어서 울리는 등 동생을 어여쁘게 괴롭혔었다.
남매로서 평소에는 잘 싸우며 지내다가 꼭 한 번 대동단결하는 날이 있는데
바로 동생이 어디 가서 놀림받고 들어올 때.
 
동생이 비교적 순한 편이라 어렸을 때 여자애들에게 꼬집히고 울고 들어오고 그랬다.
동생이 초등학생 때 학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 받고 울고 들어왔길래 쫓아가서 고래고래 악을 쓰고 몇 마디 해서
그 아이들을 되려 울리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언 10년의 시간이 흘러, 
주변에 폐를 끼치고 동생을 부끄럽게 만들 누나 고유의 기질을 발휘할 때가 왔나 싶은 사건이 발생했다.

요새 어디다 살림을 차렸는지 집에 전혀 안들어오는 동생이 매일매일 즐겁게 출근하는 곳이 바로 일한지 일년 넘은 모 음식점.
엄마가 쟨 니 말만 듣는다고 했던 시절도 가고 그렇게 군대 가라고 가라고 노래를 불러도 듣지도 않으면서
즐겁게 서빙일을 하고 음식점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해서 내심 흐뭇하게 지켜봤다.

근데 방금 들어와서 하는 말이, 얼마 전에 주방 사람에게 맞았다는 거다.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홀과 주방이 나눠져있는데(동생은 홀서빙을 하고 있음)
주방 사람이 동생이 자기 욕을 한 걸 들었다고 열 대가 넘게 뺨을 때렸단다. 홧김에 옆에 있던 식칼을 들고 휙휙 휘둘렀다고도.

첫째, 뺨을 열대 넘게 맞으면 아플 것이고, 
둘째, 동생이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점 사람들은 열대 맞을 동안 뭐하고 있던건지 궁금하며.
셋째, 식칼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고
넷째, 매니저는 일련의 사건을 보고 둘이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했단다.
그리고 다섯째, 동생은 욕을 하지 않아서 그 주방 사람이 오해한 걸 듣고 그걸 풀러 주방에 들어가서 맞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년전에 동생이 실수했다고 주방사람에게 걸쭉하게 쌍시옷 욕을 들었다길래
뭐 그런 *&^%$이 있냐고 맹렬하게 화를 냈던 기억이 나서, 혹시 그 때 그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허걱.

그리고 동생은 너무 기분이 나쁘니 사과를 받아야겠는데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사과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된다고 한다.

일단 일방적 피해자인 점, 또 흥분한 그 놈이 자기한테 대들면 흥분해서 정말 칼을 휘둘렀을지도 모르니
같이 주먹다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뭐라 세게 화를 내지도 못하고 누나에게 끙끙대며 털어놓는 동생을 보니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프다.   

사실 머릿 속으로는, 
내가 건장한 덩치의 늠름한 형으로 변신해서 동생이 맞은 것 보다 훨씬 가혹하게 조낸 패주거나
법조계 입문을 눈앞에 둔 친구의 조언을 받아 경찰에 꼬질러서 조서를 쓰게 하거나
본사에 전화해서 매니저와 점장까지 들쑤셔서 그 놈을 결국 일을 그만두게 하는 등,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친 뒤 '아냐 아냐 휴~' 하며 마음을 고쳐먹는 전개가 펼쳐졌지만,

그래도 참았으니 일단 장하다고 해야할지 그걸 참고 있냐 이 멍청아 하고 화를 내야할지 갈팡질팡 어지럽다.
흑흑, 누나가 이렇게 화끈하지 못하니 동생이 그런거야 미안해 흑흑흑, 하는 신파적인 상황도 연출 가능했다.

일년 전 욕을 들었다고 했을 때는 결국 '그런 곳 때려쳐!!', 식으로 화를 내며 무력하게 참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추이를 지켜볼 생각이다.
동생이 나대는 누나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일이 커지기 전에 무사히 사과를 받으면 좋을텐데.
(나도 흥분하면 나중에 쥐구멍을 파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짓을 서슴없이 해서ㅠ.ㅜ
캄다운! 캄다운 ;;; 흥분하지 않도록 계속 마음의 끈을 잘 잡고 있어야겠다)

물론 일이 커지길 바라진 않지만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인내를 강요당하는 것 만큼은
동생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당한 폭력에 정당하게 맞서는 방법을 동생이 터득하도록
조금 귀찮고 힘들다고 해도 같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다.
참는 것은 같이 때리는 것 만큼이나 현명하지 않은 방법이고,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동생이 그런 것에 대해
조용하지만 굳세게 맞서는 인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

동생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음식점에서 군대 가기 전까지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이번 사건이 원만하게, 그리고 제대로 수습되었으면 좋겠다.

다시금 이 일에 대해 포스팅을 할 때는, 잘 수습되었다는 내용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에 동생만으로 잘 안되서 내가 나대기 시작하면, 앞으로 동생이 결혼해서 나만한 자식을 낳고 살게 되도 
부모가 자식 못놓듯 끊임없이 참견하고 간섭하고 걱정하게 될 것 같다 ㅠ.ㅜ) 

  
   
posted by steadyoung
2009. 10. 17. 00:55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올해 겨울, 친구와 함께 2PM에 열광했다.
'떴다 그녀'를 보고 2PM의 귀여운 행동거지에 몸을 파르르 떨었던 전국의 수많은 아낙네들은 기억할 것이다.
빨간 내복 가슴께의 작은 브로치(?)가 어르신들을 유혹하기 위해 달려있는거라며 브로치와 몸을 진동시켰던 엠티,
제시카를 유혹할 때 쓰겠다고 메일로 보냈던 음악파일이 모두에게 뽀록났던 순간의 표정,
동대문에서 막무가내로 뭐든 달라고 졸랐던 무대포 정신.

영상도 볼 수 있는 MP3를 장만하고 제일 먼저 2PM의 무대를 넣어놨다.  
10점 만점의 10점, only you, 안녕이란 말 대신, 그리고 again&again.
무대 위의 2PM 그리고 재범이는, 이제 더이상 무대에서 7명의 2PM과 재범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에 사무쳐 아프도록 멋있다ㅠ.ㅜ

자타칭 빠순이인 내가 한 때 열광했던 모 그룹의 멤버는 술집에서 싸움을 하더니 급기야 음주운전을...
것도 '매우' 살찌기 전 얼굴은 당시 가장 좋아했던 모 멤버를 물리치고 수많은 멤버들 중 내 타입 1위를 달렸는데...
무슨 생각인지 회사 방침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걸어왔고, 걷고 있다.   
우결이나 방송에서 능글맞게 이야기하는 거 보면 난 아직도 참 좋은데, 이번 '사건'의 결말을 두고
대한민국 아이돌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무엇인지가 명확해 질 것 같아 매우 흥미롭다. 
과거의 블로그 글 VS 폭력시비+음주운전

누가 들어도 너무 비슷한 '오마주' 곡들로 대박치는 아이돌 아티스트(줄여 아돌트? ㅋㅋ)도 있는데...
재범이의 자타의적 퇴출이 조금 너무한 처사같아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냥 나는 재범이가 그립다. 머나먼 땅에서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랄께.

   

posted by steadyoung
2009. 10. 14. 03:0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요즘,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다.
그럼 영어공부를 해야지->좋은 영어 공부 방법은 뭘까->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가르치는 건 재밌다->돈도 벌 순 없을까?
->그럼 고등영어 학원강사 직을 구해볼까-하는 순서를 밟아 오늘 면접을 보고 왔다.

학원이 있는 곳은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로, 뭐 지금도 계~속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같은 동네인건 맞지만,
내가 태어나고, 유치원을 다녔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뛰어놀았던 공원과 그 옆의 작은 시장터, 
바로 그 곳에 학원이 있었다.(그 시장 없어져서 안습...뭔가 허전했다)
과외 경험은 풍부ㅡ_ㅡ;하지만 학원 경력은 제로라, 경력 무관에 집에서 가까운 곳을 골라 면접을 본건데
애매한 결과. 원장님이 다시 연락을 할지, 나도 그 학원에서 정말 일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른 학원도 알아봐야하나?
하지만 파트로 일을 하고 싶은 나는 '전임'을 요구하는 학원들의 구인광고를 보면 너무나 부담스럽다.

면접을 보고 동생이랑 밥을 먹으며, 4년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백, 이백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니
학자금 대출을 한 보람이 조금은 있네 하하, 하고 웃었다. 학원 강사 구인광고를 보며 이렇게나 많은 곳이 사람들을
채용하고 있으니 굶어죽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잘하면' 그 이상도 받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쁜 직업이라고는
생각이 안드는데 번듯한 곳에서 기자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니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번듯한 대학 나와서 학원강사가 왠말이야!!!!

원래 잘 쪼는 나는 친구의 박력(?)에 쫄아 궁시렁궁시렁 변명을 늘어놨지만, 이렇게 일일이 내가 하는 행동에
변명+설명을 해야한다니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친구는 나를 굉장히 걱정해서 하는 말이고
너 정도면! 하고 날 치켜세워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커다란 의미를 가져야한다니
눈 앞이 빙글빙글 돌 것만 같다.
'회사를 그만두다=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그 이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인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아니면 회사라는 조직생활이 나와 맞지 않아, 
꿈을 위해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하겠어, 하며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는게 더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나와 주변인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는거라 썩 내키지 않는다. 거짓말하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으러 올 것 같은 소심한 나, 어쩜 이리도 착한걸까.
물론, 나도 내가 게으르기 짝이 없고 베짱이의 탈은 쓴 인간으로 이렇게 띵까띵까 세월을 보내 괜찮을까 걱정이 되지만,
앞일은 닥치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고, 회사가 싫을 뿐 일을 하는 건 아주 좋아하며, 결혼도 집도 하고 싶다 사고 싶다
생각하지 않는지라 나랑 부모님 연명할 돈은 벌지 않을까 싶고, 주변인의 염려대로 완전한 '백수'가 되어
당장 먹을 밥 한끼 걱정하는 처지로 변신할 확률이 더 낮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지금 날 지탱해주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비트다케시의 책에서 사람은 원래 압도적인 차이를 느낄 땐 아무 말도 못하지만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것을 못가지면 흥분한다고 하더라. 전두환의 손녀보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선배의
루이비통 가방이 나를 더 심란케 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비트 다케시의 의견은 너무나 타당하다.
자기가 태어난 환경을 잘 생각하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환경대로 아파트를 사는 등, 크게 무리를 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기자님은 서민층에도 못끼는 집에서 태어나 존재증명을 위해 기를 쓰는 우리의 숙명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지만,
수직보다 수평으로 뻗어나가고자하는 마음과 자세가 정신적, 물리적으로 건강할 삶을 보장해줄 것 같다.

그래도 순도 백퍼센트 워킹푸어족 본인, 슬슬 심심하다는 생각이 드니 이이상 자신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 전에
뭐든 일을 하나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내일부터 학원 조사 들어가야겠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10. 8. 02:13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얼마 전에 북오프에서 산 고미타로의 '어른 문제'
60세가 가까운 아저씨라고 알고 있는데
사고방식이 너무 핫!하셔서 감동했다.

예를들면 왕따(이지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학교를 없애자, 뭐 그런 의견을 줄창.
그림책 작가라는 타이틀을 보면 굉장히 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리고 친구가 보내준 2003년 '정열대륙'를 보니
너무나도 동적인 사람이고 하고 싶은 말 확확 해버리는 참으로 일본인같지 않은
아저씨라는 게 너무 인상깊었다.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진보적(?)인 색채가 가장 강렬함;;;

여튼, 학교, 학생, 아이들 얘기가 나와서 나도 여러가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월드컵 때 광화문에서 차 위로 올라가 쑈하고 놀았다던, 경찰서or파출소를 가끔(?)
들락날락했다던, 술이야 예사로 마셨다던 사촌동생님에 비하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는데,
비평준화 서열 1위 남고 다음인 여고의 특성을 고려하면
나름 파란만장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들, 말한다.

내 기준에서 보면
연간 적어도 남자 열 명 정도가 목을 메는 인기녀인 덕택에 딱 고딩 수준의
문란한 이성 생활을 행하고, 뒤에서 세는게 빠른 등수지만 기타를 쟈쟝쟈쟝 치며
인생을 논하는, 부모님과의 혈전에 가끔은 눈에 멍도 들고,
술과 담배를 잘하는 척 하면서 콜록콜록대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런 드롸마틱한 삶이야말로 '파란만장' 한 여고생의 삶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고를 한 번 못치고
1. 그저 마구 지각을 했고
2. 또한 지각을 했으며
3. 중간에 공부를 살짝 멀리해서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고
4.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난리쳐서 몇 번 욕을 먹었으며
5. 고3이 되어 여전히 지각을 하고 아침자습과 보충과 야자는 되도록 안했으며
6. 아주 가끔, 진짜 몇 번, 학교를 안가는 
7. 가끔 선생님들과 언쟁(?)을 하는
그런 정도였다.

지금도 생각하지만, 학교, 7시 반까지 가는 거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나?
한 10시까지 가는게 밥도 확실히 먹을 수 있고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12-1시까지 점심시간, 그리고 늦어도 4시쯤에는 보내주면 참 이상적인
학교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3~4일정도는 가고 싶다고 생각할 것 같음.

특히!!!!!!! 교무실 청소 따위 시키니까 자꾸 집에 늦게 가는 거다.
그 때도 생각했지만 교실이야 학생이 사용하니까 청소하는 건데
교무실 청소는 대체 왜 해줘야 하는걸까. 
자기네가 쓰는 장소니까 자기네가 청소하면 될텐데, 하고 생각했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음. 정 하기 싫으면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것도 좋고.

그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신기하다.
학생주임 썜이 나한테 맨날 늦게 와버릇하면 수능 때도 지각한다 그랬는데
그럼 3년간 아침 일찍 오는 것은 수능 하루를 위한 연습인 셈? 허무함.
그 때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렇다.
체육시간에 하기 싫은데도 체조를 해야하고,
수학 선생님이 농담삼아 욕설을 하는데 다들 웃고만 있고,
참, 불합리하고 하나도 즐겁지 않고 애매모호하며 강제적인 학교 생활.

사실 그리 배짱이 두둑한 편이 아니라 때려치진 못했지만
안갈 수 있다면 안가도 되는 곳이 이런 종류의 학교가 아닐까 싶다.
이런 종류의 학교에 자발적으로 안가는 사람이 틴에이저의 절반가량되면
학교 안나왔다고 손가락질 당하고 차별당하는 일도 없겠지.

어른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 안나오면 큰일난다고 하셨지만
요즘 대입을 위한 가장 쌈박한 루트는 어린 시절에 되도록이면 외국에 가서 살다가
영어 쫌 쏼라쏼라 해와서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는 거라고, 대학 다니는 사람들은
십분 공감하리라 믿는다.

또 '대학가면 다 잘될것임' 류의 전형적인 선생님들의 사기 외에
요즘 속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의 협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요 한 마디.
요새 학교 선생이란 직업을 고르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그들이야말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지 심히 의심이 된다.
뭐 사회에 부딪힐 겨를이 있다고 무섭다고 말하는건지;;
무섭다는 감각은 개인적인 것이니 먼저 말한다고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여태까지 생각한 건 진정으로 무서운 사회란 제대로된 노동을 제공하고도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회지 않을까 싶은데
열심히 일하고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할 때의 대처방법에 대해서는
하나도 배운 적이 없으니~
이제는 때때로 열심히 일하고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받아서
적당히 재밌게 사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함.

그런데 학교는 아직 그런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사랑하는 과외남은 내가 안녕~하고 인사하면 응~하고 대답하거나
수업 중에 아아 힘들어요! 하고 누워버리고 싫은 거 시키면 대놓고 짜증내지만
반면 금방 또 헤헤 잘 웃고 뭘 물어보면 말도 재밌게 잘하고 유니크함-
수업 중에 누워버리는 습관은 알아서 안하고 있고
살살 구슬리면 헤벌쭉하니 열심히 푸니 참으로 귀엽기 그지없다.

비록 수학과 영어 이외의 과목이 전부 50점을 안넘는다고 해도
그걸 명랑한 얼굴로 큰일났다고 말하는 과외남과
수줍고 해맑게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이런 집안 분위기에 이런 성격을 갖고 앞으로 살아나갈 때
굳이 공부를 못한다고 장래를 비관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찾아서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과외남이 아니나 다를까 학교 선생님에게도 나에게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게 행동하고 있어 노여움을 사고 있다는 어머님의 걱정이-
'혼내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수업태도가 불량하다' 등등을
이유로 나의 어여쁜 과외남을 꾸짖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 전 과외남의 이런 성격은 장점이라고 봐요-라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 버럭에 위축되고, 선생님 앞에서 쫄아있는 애들이, 불쌍하다고 하기 전에
그렇게 어른들에게 공손하게 대해서 크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데-
예의도, 차려야 할 사람이 있다면 차리게 되고, 차려야 할 나이가 되면 차리게 됨.
그걸 굳이 15살의 어린 아이를 윽박질러서 쫄아있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학교 선생님의 생각이야 말로 불량하지 않나~

나의 어여쁜 과외남은 그런 악의 무리들에게 굴하지 말고 꿋꿋하게 명랑했음 좋겠다.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안좋은 생각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10. 4. 00:38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정약용의 보리타작을 살펴봅시다.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응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티끌뿐이로다.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그리고 이상의 권태.

(중략)
그들의 일생이 또한 이 벌판처럼 단조한 권태 일색으로 도포된 것이리라.
일할 때는 초록 벌판처럼 더워서 숨이 칵칵 막히게 싱거울 것이요,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겨울 황원처럼 거칠고 구주레하고 싱거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흥분이 없다. (중략)
그들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정약용과 이상의 공통점을 굳이! 굳이! 뽑아보자면 
'시대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온 엘리트' 정도가 되겠다.
건축과 관계된 일을 해봤다는 점도 추가하자면 굳이 추가할 수 있겠다.

자기가 살던 시대에서 쉬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곱게 늙어갈 수 있었는데
카톨릭을 믿어서 탄핵을 당하고, 유배와 사직을 밥먹듯이 당해도 정조의 아낌없는
사랑속에 다양한(?) 직책을 경험했으며, 
기나긴 유배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참 많은 일을 하다 죽은 정약용과,

건축이라는 실용적인 일을 하다가 결핵이라는 당시의 불치병에 걸려 요양을 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의 세계에 뛰어들어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요절하고만 이상은

굳이 꼽아보자면 비슷한 점 몇 개 찾을 수 있으나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만큼 다른 인생을 걸어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근데 어느 날 언어영역을 다시 보며 재밌다고 느낀게, 바로 저 두 지문.

맛있게 밥 먹고 흥겹게 노래부르며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을 보며
저들이 참 즐겁게 생을 살고 있구나, 낙원이 멀리 있는게 아니구나,
내가 왜 그깟 벼슬자리에 맘을 흔들려했을까 반성하는 정약용의 모습은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
그가 주장한 많은 실학사상과 농민을 위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참으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아름다운 글이었다.

반면 이름도 작품도 포스 작렬하는 이상.
'날개'를 보면 이 사람 제 정신 아니구나, 
'오감도'를 보면 이 사람 역시 제 정신 아니구나.
거기에 나오는 아해들 얼굴이 마치 몽달귀신 같이 생겼을 것 같아서
야밤에 곱씹어보니 쫘악 닭살이 돋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거울' 이런거 보면 측은한 생각도 들고, 공감도 하는데
'권태'를 자세히 읽어보니 흔한 말로 '깼다' '대략 난감'했다.

그야 이상이 농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바랬다면 당근 거짓말일만큼
이상에 대해 깊게 생각해온 적도 없고-_-;
예전에 권태를 느끼는 행위야말로 풍파없는 노말한 삶이란 증거니
어떤 의미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터라 마지막 줄에 공감도 한다.
근데 글의 전체 분위기가 농민들의 고된 하루를 매우 깔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나의 과장된 해석이자 커다란 오해일까나.

남의 처지에 비추어 자신의 행복을 곱씹는 행위도 비겁하고,
당시에는 보다 일반적이었을 농민들의 삶과
보다 일반적이지 않았을 자신의 삶을 전면적으로 배치해서 느끼는게 고작 그거라니.
농민의 딸도 아닌데 기분이 씁쓸-허네.

물론 서민들, 농민들의 애환과 비극을 그린 많은 소설들과는 달리,
'개인'이라는 주제와 파괴적인 이야기,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던 실험정신은
장르의 다양성을 실천했다는 점과 함께 독보적이며 매우 훌륭하게 평가할 수 있지만,
아직도 다양성을 생활화하지 못하는 편협한 나는
그래도 좀 더 농민들을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줬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바람이 있나보다.

농민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전혀 다른 걸 생각했던 두 사람.
나는 그게 너무 흥미로웠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9. 24. 01:4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다.
오늘은 모처럼(?) 지갑을 놓고 나와서 선배에게 만원을 빌렸다.
저녁 대신 빵이랑 커피사먹고, 버스비+전철 두번 타고 돌아오는 길에
컵라면과 콜라를 샀더니 딱 100원 남았다. 허허. 왠지 허탈하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인천공항에 가야한다.
출연자들이 무사히 비행기 타는 걸 확인하면
나도 김포공항으로 무사히 이동해야한다.
그리고 26일까지 스케쥴 꽉꽉 채워서 가말쵸바를 따라다닐 예정.

일단은 이번주 토요일이 내가 한달하고 조금 넘게 일한 이 일을 그만 두는 날이다.
그만둬야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무척 고통스럽고, 일 나가는 것도 싫었는데
그만둔다고 말씀드리고, 아직 확실치 않아도 마음과 행동이 나갈 방향을 정하니
미련이 남는건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요동을 치는지
이 일도 나쁘진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년에 남들 다 하는 취업 활동을 매우 적극적이지 않게 했다.
선배의 소개로 일본계 회사라는 곳에 영업지원으로 뽑히기도 했지만,
내키지도 않고, 내키지 않을 일을 열심히 할 만한 월급도 아니었다.
남들 다 찔러보는 대기업 나도 찔러봤지만, 결과는 뻔했다.
백수가 되는 건 두려웠지만, 대기업 사원이 될 자신도 맘도 없었다.
일 보다는 꿈을 좇고 싶었다. 딱히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리고 2009년이 밝아봤다. 
1월 2월은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동굴에 은거하듯 집에서 일본 쇼프로나 보고
먹기나 하고... 과외는 관성처럼 계속'될' 뿐.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일말의 안도감과 실질적인 수입이 죄책감을 덜어줬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게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졸업을 했다.
그 날은 일본계 은행의 간단한 사무 아르바이트 면접을 본 날이었다.
딱히 일본어를 쓰는 알바도 아니면서 한 시간 동안 전혀 다른 네 명의 사람들이
내 사고방식과 경험과 포부를 물었다. 끔찍했다.
오바하고 있네.

하지 않겠다는 메일을 쓴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 얘기였다. 국제도서전 주빈국이 일본이니 같이 일하자는.
작년에 국제출판협회 서울 총회에서 고작 이틀 일한게 인연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날 넘겨준(?) 관계자 분, 감사합니다.

영화제 사람들이 너무도 끔찍했던 것에 비해, 
그 곳 언니들, 차장, 과장님은 참 좋은 분들이었다.
막판에는 눈 밑이 거북이등처럼 갈라질만큼 힘들었지만
언니 덕분에 리셉션 사회도 보고, 에쿠니 가오리 통역도 해보고, 사인회도 진행해봤다.

일이 끝나고, 6월 한달 동안도 은거했다. 아, 면허 따놓는건데. 후회가 된다.
딱 그것만 해도 좋았는데...
7월 초는 사촌동생과 일본에 다녀왔다. 비정규직과 백수를 번갈아하는 주제에
참 호화스럽죠? 그래도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걸 바탕으로 다시금 의욕이 생겼다.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는 4월 등록이었는데 도서전 일과 과외를 병행하기
너무 빡세서 미뤘다.
100만원을 웃도는 등록금이다. 돈부치고 통장 잔고 봤을 땐 울고 싶었다.
부모님껜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김칫국 마시기와 걱정이 특기라
뭐든 되고 나면 '통보'하는게 나나 부모님을 위해 좋다는 생각을 한다.
한달을 그렇게 살았다.

8월이 되서 일본 방송에서 여대생 출연자를 뽑는다는 연락에 이력서를 보냈다.
결국 난 떨어졌고 다른 친구가 됐지만, 덕분에 코디네이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4개중 두개를 정리하고, 두개는 병행하기로 했다.
사장님과는 아카데미 수료시 진로에 대해 얘기하기로 하고, 일급 알바로 일을 다녔다.

그리고 9월 말이 되었다.
아카데미는 곧 있음 수료다. 
애초에 등록했을 때는, 리포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말을 하는 직업(통역은 너무 뻔하고 학원강사는 나중에도 도전가능하다는 판단)
+프리랜서+그 분야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고 싶음, 정도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데, 일을 하다보니 뭐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방송 관계다 보니 각기 방송 분야의 오래된 경험을 가진 분들이 온갖 충고와
감언이설로 떠나려는 날 잡으려는데, 틀린 말씀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 나의 변명(?) 혹은 진심은,
기분의 문제라는 것이다.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보다는,
내가 처음으로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하겠다는데
이렇게 무도 안썰어보고 칼자루만 쥐고 끝낼 순 없지 않은가.
안되면 안된다고 절실히 깨닫고 포기하는 걸, 나는 하고 싶다.
좀 더 일찍 등록했다면 좋았을까?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없었다... 방송이라는 꿈을 직시하는게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

머리가 참 아팠다. 
카메라를 경계로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너무 다르다.
그래도 방송이라는 끈을 잡게 해준 이 기회는 더없이 감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취업 안되서 힘들다는데, 돈을 많이 주진 않아도-_- 일을 시켜주겠다는데
박차고 나갈 궁리를 하는 것도 참 호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으로 나도는(?) 딸을 흐뭇하게 보는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내일부터 삼일동안 나는 또 바깥으로 나돌면서 일을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
지금은 그만둘 생각을 굳혔지만, 가말쵸바 관련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에 따라
마음의 변화라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은 나는,

참 작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한 곳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런 타입이 아닌걸까? 그럼 그런 타입은 평범하지 않은 꿈을 이룰 수 없는걸까?

모든 걸 간단히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는 힘이, 제일 갖고 싶다.
posted by stead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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