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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8. 02:13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얼마 전에 북오프에서 산 고미타로의 '어른 문제'
60세가 가까운 아저씨라고 알고 있는데
사고방식이 너무 핫!하셔서 감동했다.

예를들면 왕따(이지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학교를 없애자, 뭐 그런 의견을 줄창.
그림책 작가라는 타이틀을 보면 굉장히 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리고 친구가 보내준 2003년 '정열대륙'를 보니
너무나도 동적인 사람이고 하고 싶은 말 확확 해버리는 참으로 일본인같지 않은
아저씨라는 게 너무 인상깊었다.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진보적(?)인 색채가 가장 강렬함;;;

여튼, 학교, 학생, 아이들 얘기가 나와서 나도 여러가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월드컵 때 광화문에서 차 위로 올라가 쑈하고 놀았다던, 경찰서or파출소를 가끔(?)
들락날락했다던, 술이야 예사로 마셨다던 사촌동생님에 비하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는데,
비평준화 서열 1위 남고 다음인 여고의 특성을 고려하면
나름 파란만장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들, 말한다.

내 기준에서 보면
연간 적어도 남자 열 명 정도가 목을 메는 인기녀인 덕택에 딱 고딩 수준의
문란한 이성 생활을 행하고, 뒤에서 세는게 빠른 등수지만 기타를 쟈쟝쟈쟝 치며
인생을 논하는, 부모님과의 혈전에 가끔은 눈에 멍도 들고,
술과 담배를 잘하는 척 하면서 콜록콜록대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런 드롸마틱한 삶이야말로 '파란만장' 한 여고생의 삶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고를 한 번 못치고
1. 그저 마구 지각을 했고
2. 또한 지각을 했으며
3. 중간에 공부를 살짝 멀리해서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고
4.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난리쳐서 몇 번 욕을 먹었으며
5. 고3이 되어 여전히 지각을 하고 아침자습과 보충과 야자는 되도록 안했으며
6. 아주 가끔, 진짜 몇 번, 학교를 안가는 
7. 가끔 선생님들과 언쟁(?)을 하는
그런 정도였다.

지금도 생각하지만, 학교, 7시 반까지 가는 거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나?
한 10시까지 가는게 밥도 확실히 먹을 수 있고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12-1시까지 점심시간, 그리고 늦어도 4시쯤에는 보내주면 참 이상적인
학교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3~4일정도는 가고 싶다고 생각할 것 같음.

특히!!!!!!! 교무실 청소 따위 시키니까 자꾸 집에 늦게 가는 거다.
그 때도 생각했지만 교실이야 학생이 사용하니까 청소하는 건데
교무실 청소는 대체 왜 해줘야 하는걸까. 
자기네가 쓰는 장소니까 자기네가 청소하면 될텐데, 하고 생각했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음. 정 하기 싫으면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것도 좋고.

그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신기하다.
학생주임 썜이 나한테 맨날 늦게 와버릇하면 수능 때도 지각한다 그랬는데
그럼 3년간 아침 일찍 오는 것은 수능 하루를 위한 연습인 셈? 허무함.
그 때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렇다.
체육시간에 하기 싫은데도 체조를 해야하고,
수학 선생님이 농담삼아 욕설을 하는데 다들 웃고만 있고,
참, 불합리하고 하나도 즐겁지 않고 애매모호하며 강제적인 학교 생활.

사실 그리 배짱이 두둑한 편이 아니라 때려치진 못했지만
안갈 수 있다면 안가도 되는 곳이 이런 종류의 학교가 아닐까 싶다.
이런 종류의 학교에 자발적으로 안가는 사람이 틴에이저의 절반가량되면
학교 안나왔다고 손가락질 당하고 차별당하는 일도 없겠지.

어른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 안나오면 큰일난다고 하셨지만
요즘 대입을 위한 가장 쌈박한 루트는 어린 시절에 되도록이면 외국에 가서 살다가
영어 쫌 쏼라쏼라 해와서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는 거라고, 대학 다니는 사람들은
십분 공감하리라 믿는다.

또 '대학가면 다 잘될것임' 류의 전형적인 선생님들의 사기 외에
요즘 속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의 협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요 한 마디.
요새 학교 선생이란 직업을 고르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그들이야말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지 심히 의심이 된다.
뭐 사회에 부딪힐 겨를이 있다고 무섭다고 말하는건지;;
무섭다는 감각은 개인적인 것이니 먼저 말한다고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여태까지 생각한 건 진정으로 무서운 사회란 제대로된 노동을 제공하고도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회지 않을까 싶은데
열심히 일하고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할 때의 대처방법에 대해서는
하나도 배운 적이 없으니~
이제는 때때로 열심히 일하고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받아서
적당히 재밌게 사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함.

그런데 학교는 아직 그런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사랑하는 과외남은 내가 안녕~하고 인사하면 응~하고 대답하거나
수업 중에 아아 힘들어요! 하고 누워버리고 싫은 거 시키면 대놓고 짜증내지만
반면 금방 또 헤헤 잘 웃고 뭘 물어보면 말도 재밌게 잘하고 유니크함-
수업 중에 누워버리는 습관은 알아서 안하고 있고
살살 구슬리면 헤벌쭉하니 열심히 푸니 참으로 귀엽기 그지없다.

비록 수학과 영어 이외의 과목이 전부 50점을 안넘는다고 해도
그걸 명랑한 얼굴로 큰일났다고 말하는 과외남과
수줍고 해맑게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이런 집안 분위기에 이런 성격을 갖고 앞으로 살아나갈 때
굳이 공부를 못한다고 장래를 비관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찾아서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과외남이 아니나 다를까 학교 선생님에게도 나에게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게 행동하고 있어 노여움을 사고 있다는 어머님의 걱정이-
'혼내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수업태도가 불량하다' 등등을
이유로 나의 어여쁜 과외남을 꾸짖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 전 과외남의 이런 성격은 장점이라고 봐요-라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 버럭에 위축되고, 선생님 앞에서 쫄아있는 애들이, 불쌍하다고 하기 전에
그렇게 어른들에게 공손하게 대해서 크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데-
예의도, 차려야 할 사람이 있다면 차리게 되고, 차려야 할 나이가 되면 차리게 됨.
그걸 굳이 15살의 어린 아이를 윽박질러서 쫄아있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학교 선생님의 생각이야 말로 불량하지 않나~

나의 어여쁜 과외남은 그런 악의 무리들에게 굴하지 말고 꿋꿋하게 명랑했음 좋겠다.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안좋은 생각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