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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11. 03:26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어제는 하루종일 통역일을 했다.
통역을 담당한 아저씨는 곤충요리 연구가로, 한국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호텔에서 만나서 간단히 회의를 하고, 경동시장으로 고고.
아저씨는 지난번에 와서 '지네'와 그밖의 곤충을 샀다는데 이번에는 동물(?)도 사기 위해 한번 더 방문.

뱀과 도마뱀, 동충하초, 그리고 고려인삼을 샀다.
지금까지 26년을 살면서 동충하초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동충하초에서 다양한 곤충들의 이름까지 참으로 뜻깊은 공부가 되었다 ㅡ_ㅡ;
중국 지네보다 한국 지네가 훨씬 깔끔하고 아름답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건 보면 안다;;;;

그리고 다시 명동으로 돌아와서 짜장면을 먹고,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
아저씨가 설문조사를 하고 싶다는거다. 거리인터뷰를 몇 번 해서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에도
상처ㅋㅋㅋ받지 않게 되어서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국 사람들이 곤충'식(食)'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문조사였다.
1. 번데기 먹어본적 있냐 /맛은 어땠냐? 2.그거 말고 딴 곤충은 없냐
근데 골떄리는건 여기서부터!!!

3. 일본 곤충을 한 번 먹어볼래???
그리고 다이소에서 산 1500원의 세칸으로 나뉘어진 타파에
메뚜기, 벌의 유충, 자자무시(강에 사는 벌레)를 조리한 걸 넣고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할 수 있지 뭐. 
하고 생각했는데 아저씨 왈, 너도 먹고 해야되지 않겠니???

그래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메뚜기, 벌의 유충(방송촬영 때는 제법 커진 유충도 간장에 찍어서..ㅠ.ㅜ),자자무시를
먹었다. 먹었다. 먹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같은 반 여자애가 도시락 반찬으로 메뚜기를 싸와서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벌레를 먹은 것이다 흑흑흑

아저씨가 너무 진지하게 권해서 계속 웃으면서 싫다고 하기도 그렇고, 호기심도 조금 있고(물론 될수있음 안먹고싶지만)
명동 한복판에서 벌레 내밀면서 설문조사하려면 나도 먹어야겠지...그래야겠지...하면서 먹었다.

메뚜기를 잡는 손가락이 부들부들...흑흑 싫다!!! 그래도 일단 넣어서 씹었다.
이건 뭐...잔새우 볶음 같은 맛이라서 평범했다. 근데 메뚜기는 다들 먹기도 하니까 괜찮은데
벌의 유충은 진짜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아저씨에게 내 인생 일년 분의 용기를 써야한다고 말했다.
글고 씹었는데... 이것도 뭐 콩이라고 그러면 조금 수상하게 여기면서 먹을 것 같은 맛ㅠ.ㅜ
큰 개미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걸 권하길래 진짜 정중하게 사양했다ㅡ_ㅡ;
그리고 자자무시도 먹었는데 이건 양념맛이 굉장히 강했다. 이 양념맛이란게 딱 일본인입에 맞을 것 같은 맛이라-
짜고 달착지근한 맛에는 꽤 익숙해서 양념맛은 나쁘지 않았다.(나중에 이 벌레를 용기있게 먹은 몇 분이 비리고 맛없다고 했다)

올해들어서 이렇게나 나란 인간이 대단한지 처음 깨달았다. 하하하ㅏㅎ
살면서 이렇게 용기 내본 순간이 없다고 말하니까 아저씨가 오바하기는...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진짜로!!!!!
적어도 세달분의 용기를 응축시켜서 몇 분 간 사용한 기분, 팍 늙은 기분....흑흑흑

그리고 모 모텔로 옮겨서 촬영, 지금 생각해보니 와일드바니 재범 만보기차고 난리치는 장면을 찍은
바로 그 곳 아닌가!!!  (어쩐지...로비에 투피엠 사인이 있다 했다...)
촬영은 굉장히 늦어져서 12시 반 경에 끝났는데, 촬영의 클라이막스는 벌칙으로 바퀴벌레를 먹는 것이었다.
마다카스카르바퀴벌레라고 엄청 큰 바퀴벌레...
나도 그 아저씨 블로그 들여다보고 어제 하루 같이 있다보니 어느정도 익숙해졌는지
바퀴벌레라는 한음절한음절이 가져다주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조금 덜해졌다. 아아아아아아아ㅏ 싫다
그걸 먹은 모 연예인 분 진심으로 안됐다고 생각했는데...그래도 리액션이 약해용
우에시마 아저씨랑 데가와 아저씨가 있었다면
와라이노카미가 오리떼키따노니!!!!!!!!!!!!!!!!!


아저씨가 바퀴벌레도 권하려고 하길래 이건 무리라고 거두절미하고 사양했다.

사실 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흥미가 있는 편이라, 벌레 먹는다고 손가락질 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벌레를 솔선수범해서 먹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제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면, 벌레를 먹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벌레를 먹으라고 강요받았기 떄문.
벌레란 나에게 먹어서 안될 건 없지만 안먹어도 되는 생물인데,(라고 생각함)
아저씨가 반농담반진담으로 내가 곤충연구회 한국지부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하하하하 싫죠.

나는 어렸을 때 부터 강아지에 별 흥미가 없었다. 물론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긴 하지만
엽서에 그려진 강아지들을 보고 귀엽다고 온 몸을 부르르 떤 적이 없는 걸로 봐서 
그냥 강아지라고 특별할 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어린 마음에 강아지는 먹을게 아니라고 느꼈는지
엄마가 보신탕을 사와도 안먹곤 했는데(하루는 엄마가 강제로 입에 넣어서 씹었는데..부드러웠다),
2006년, 학교 선배와 친구들이랑 복날을 맞이해 개고기 도전을 해서, 그냥 평범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학생 떄 부터 보신탕 찬성반대 운운했을 때도 뭘 그런걸 갖고 찬반을 논하는지 이해가 안갔는데
그건 개고기를 먹게 된 이후부터 더 강해졌다. 돼지나 소나 개나. 하는 생각.
식품으로 정할 수 없어서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던데 그럼 식품으로 정해서
위생적으로 문제가 안생기도록 단속을 강화하면 되는거잖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먹는 사람들을 냅두자는 건데 다들 말이 많군
하고 생각했다. 지금도 물론.
근데 신기한 건 그 무렵부터 강아지라는 생물이 애완동물로서 귀엽다는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개에 대한 흥미가 생긴건가 단순히....

뭐 어쨌든 보신탕 생각나서 먹으러 가는 수준은 아니지만, 먹으러 가자면 아무 거부감없이 따라가고 있는데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게 개고기.
개고기를 먹느냐...그걸 어떻게 먹냐...못먹겠지 않냐.... 이런 말하는 일본 사람 사실 속으로 짜증난다.
(물론 나도 먹어보고 싶다, 먹어본 적 있는데 역시 잘 못먹었지만 먹는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는 상식적인 인간도 있음)
거기에서, 내가 오바해서 생각하는 걸수도 있지만, 한국을 야만적인, 즉 자기네 보다 열등한 문화라고 까고 싶어하는
은근한 속내를 느끼기도 하고, 그런 걸 전혀 생각치는 않아도 개고기 나도 먹는다, 고 이미 말한 나를 앞에 두고
그걸 어떻게 먹냐고 하는 건 조금 실례라고 생각되지 않나? 그 정도의 배려심도 없나? 하는 마음에 짜증 대박.

근데 이제는 조금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물론 개고기와 곤충은 꽤 다르지만, 내가 곤충을 향해 손을 뻗는 정신상태나 개고기를 향해 숟가락을 뻗는 정신상태나
근본은 똑같겠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저씨 곤충 먹는다고 이상하게 보고 싶진 않은데,(오히려 한가지에 심하게 집착하는 일본인의 성향은
결국 여기서도 발휘되나 싶어서 매우 자연스러웠다) 아저씨가 곤충을 먹을 자유와 권리가 있는 것 처럼
나도 곤충을 안먹을 자유와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가끔 내 발언에도 결국 이런걸 왜 먹니 먹는 너는 좀 이상해 하는 시선과 감정이 섞여 있었겠지.
그걸 느끼게 했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나는 
곤충을 먹었잖아!!!!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