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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14. 03:0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요즘,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다.
그럼 영어공부를 해야지->좋은 영어 공부 방법은 뭘까->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가르치는 건 재밌다->돈도 벌 순 없을까?
->그럼 고등영어 학원강사 직을 구해볼까-하는 순서를 밟아 오늘 면접을 보고 왔다.

학원이 있는 곳은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로, 뭐 지금도 계~속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같은 동네인건 맞지만,
내가 태어나고, 유치원을 다녔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뛰어놀았던 공원과 그 옆의 작은 시장터, 
바로 그 곳에 학원이 있었다.(그 시장 없어져서 안습...뭔가 허전했다)
과외 경험은 풍부ㅡ_ㅡ;하지만 학원 경력은 제로라, 경력 무관에 집에서 가까운 곳을 골라 면접을 본건데
애매한 결과. 원장님이 다시 연락을 할지, 나도 그 학원에서 정말 일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른 학원도 알아봐야하나?
하지만 파트로 일을 하고 싶은 나는 '전임'을 요구하는 학원들의 구인광고를 보면 너무나 부담스럽다.

면접을 보고 동생이랑 밥을 먹으며, 4년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백, 이백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니
학자금 대출을 한 보람이 조금은 있네 하하, 하고 웃었다. 학원 강사 구인광고를 보며 이렇게나 많은 곳이 사람들을
채용하고 있으니 굶어죽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잘하면' 그 이상도 받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쁜 직업이라고는
생각이 안드는데 번듯한 곳에서 기자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니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번듯한 대학 나와서 학원강사가 왠말이야!!!!

원래 잘 쪼는 나는 친구의 박력(?)에 쫄아 궁시렁궁시렁 변명을 늘어놨지만, 이렇게 일일이 내가 하는 행동에
변명+설명을 해야한다니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친구는 나를 굉장히 걱정해서 하는 말이고
너 정도면! 하고 날 치켜세워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커다란 의미를 가져야한다니
눈 앞이 빙글빙글 돌 것만 같다.
'회사를 그만두다=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그 이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인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아니면 회사라는 조직생활이 나와 맞지 않아, 
꿈을 위해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하겠어, 하며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는게 더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나와 주변인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는거라 썩 내키지 않는다. 거짓말하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으러 올 것 같은 소심한 나, 어쩜 이리도 착한걸까.
물론, 나도 내가 게으르기 짝이 없고 베짱이의 탈은 쓴 인간으로 이렇게 띵까띵까 세월을 보내 괜찮을까 걱정이 되지만,
앞일은 닥치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고, 회사가 싫을 뿐 일을 하는 건 아주 좋아하며, 결혼도 집도 하고 싶다 사고 싶다
생각하지 않는지라 나랑 부모님 연명할 돈은 벌지 않을까 싶고, 주변인의 염려대로 완전한 '백수'가 되어
당장 먹을 밥 한끼 걱정하는 처지로 변신할 확률이 더 낮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지금 날 지탱해주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비트다케시의 책에서 사람은 원래 압도적인 차이를 느낄 땐 아무 말도 못하지만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것을 못가지면 흥분한다고 하더라. 전두환의 손녀보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선배의
루이비통 가방이 나를 더 심란케 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비트 다케시의 의견은 너무나 타당하다.
자기가 태어난 환경을 잘 생각하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환경대로 아파트를 사는 등, 크게 무리를 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기자님은 서민층에도 못끼는 집에서 태어나 존재증명을 위해 기를 쓰는 우리의 숙명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지만,
수직보다 수평으로 뻗어나가고자하는 마음과 자세가 정신적, 물리적으로 건강할 삶을 보장해줄 것 같다.

그래도 순도 백퍼센트 워킹푸어족 본인, 슬슬 심심하다는 생각이 드니 이이상 자신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 전에
뭐든 일을 하나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내일부터 학원 조사 들어가야겠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