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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흥청망청/진지한 얘기'에 해당되는 글 38

  1. 2009.09.21 종교문제
  2. 2009.09.17 속상해요 오늘밤 요즘
  3. 2009.05.21 張り切って行こう!
  4. 2009.05.07 お願い
  5. 2009.04.19 연재 기획+_+; 나의 아이들(1)
  6. 2009.04.11 스트레스
  7. 2009.03.26 それでも
  8. 2009.03.09 운동
  9. 2009.03.08 다짐
  10. 2009.01.17 감상.
  11. 2008.11.27 두통
  12. 2008.07.15 균형
  13. 2008.06.23 토론?
2009. 9. 21. 01:5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1. 최근에 친구가 나를 '전도'하려고 했다. 한마디로 끔찍했다.
금요일 저녁, 맛있는 중국 요리에 맥주 500cc를 즐겁게 들이키고,
조용하고 저렴한 까페에서 치즈 케익과 칵테일 한잔을 마시고 집에 가려는데
내게 요즘 교회 나가냐고 묻는 것이다. 정녕 오마이갓이로구나.

교회를 제2의 집으로 삼아 매일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는 걸
낙으로 살아가는 이 친구는, 행색은 제3의 패션이요 사고방식도 널널하니
같이 있으면 재밌는 친군데 꼭 이렇게 하나 에러가 난다.
나도 태어났을 때 부터 교회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살아왔으니
종교에 올인하는 그 친구가 대견(?)하기도 하고 너 좋은 대로 하면 되지 않냐는
관용으로 내버려두었으나
내게 전도 운운 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시한번 오마이갓이다.

어느 대형교회에 성도로 등록하기 위해 거쳐야하는 7주간의 과정 중에 배포되는
소책자에 인쇄된 말과 토씨하나 안틀린 말을 읊어대는 친구를 보니
마음속에 착잡함과 회의와 짜증이 뭉게뭉게 솟구쳤다.
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고민하고 있단 말이다!!!!

태어나서 약 25년만에 나는 처음으로 종교의 자유를 집안에서 외쳤고
애초에 소심한 나는 그 따위 안믿어, 하고 단호하게 외치기보다
내게 시간을 달라, 하고 애걸하는 형태로 부모님과의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주어들은 건 많으니 그 친구가 이말저말 해도
다 한 번씩 들어온 말인데,
구원받은 자가 지옥으로 떨어질 자(=바로 나입니다만)를 바라보는
안타깝고 오만방자한 시선을 눈앞에서 보자니
다시 한 번 짜증과 화가 솟구쳤다. 잘났어 정말.

진정으로 기도를 해본적 있냐고 묻는 친구의 말은 가히 폭력적이다.
내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정으로 기도를 한 적도 없을만큼
불성실하게 임해온 것으로 보이나?
내가 그 친구와 소원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 안그랬으면
두번 다시 안 봐도 후회없도록 욕을 바가지로 했을 것이다.

나는 신,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데,
가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매달려서 기도도 해보는데,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없이 내 마음이 안정되는 것도 없이
시간이 흘러서 상황과 마음이 안정되는 경우를 하나 둘 거치면서
대체 무엇을 바라면 좋을지 모르게 되었다.
한비야씨 책처럼, 나보다는 저기 아프리카에서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고
분쟁에 휘말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기는 아이들을 돌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함.

누군가를 전도한다는 말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은
너님부터 잘하세요,이다.
개신교의 비겁하고 비합리적인 점은 뭐든 핑계를 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교회가 싫어, 공동체에서 인간들의 금전적 성적 타락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돼
그런 사람들의 말에 대해 인간은 원래 죄인이니까 그렇고 성경에도 나온다는 말이
대체 누구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진정한 전도는, 자신의 삶이 남에게 깊은 감동을 줄 때 가능하지 않나.
교회에서 이틀 삼일 살 시간이 있다면 독거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더 값지지 않나 싶은데, 지금의 내 머리로는.

나는 '만들어진 신'처럼 철저하게 신을 부정할 의도도 깡도 없다.
'구원'의 힘도 나름 믿는다.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종교인들의 모습은 거룩하고 아름답고,
현실이 힘든 이들에게 주는 위안과 평화야말로 '구원'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전도 운운하며 그렇지 않은 이들을 미개인 취급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오만하고 교만방자한 태도지 않나 싶다.
전도해야겠다고 맘 먹어준 건 고맙지만,
날 좀 더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같이 맥주를 마셔주는게 내겐 구원이다.

+++++++++++++++++++++++++++++++++++++++++++++++++++++++++++++++++++++++++

2. 회사를 안되겠다 정말 그만둬야지 하고 맘 먹은 날,
맞은 편에 앉아있던 사람 좋아보였던 남자 선배가 자기 오늘까지 일하고 그만나온다고 씩 웃으며 얘기했다.
놀라서 되묻고, 이유를 되묻자 '교회에 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번째 오마이갓!!!!!!!!!!

밥 먹을 때 마다 기도하는 건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지만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사실 조금 놀라서 그렇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닌 나도 나지만
한 청년이 교회 갈 시간이 없어서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가는 상황을 제 눈으로
보게 되다니 놀랄 노자다.
친구는, 교회도 못갈만큼 일하는데 돈이 얼마 안되는거 아니냐? 하는 냉소적이고도
정곡을 찌르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착한 나는 순수하게 받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참 종교란 허울좋은 변명도 되주는구나 싶었다.  
종교적 신념-개신교어로 믿음이라 부르는-을 가진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신념, 가치 판단 기준을
매우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사람도 청년 실업이 거세다는 요즘 아무 망설임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
백수가 될지 안될지는 몰라도 당분간 빈둥거릴 아주 거룩하고 숭고한 변명을
갖고 있으니, 참 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블로그에 쓰고 있는 느낌 그대로
비겁하고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어 까고 싶어진다.

물론, 종교적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게 어딨냐고 이해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나는 본인들이 상관할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글쎄,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 나도 주말도 휴일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돈도 많이 안줄 것 같은 이 일이
내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 좀 더 확고하게 그렇게 말하고 그만두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근데 나는 교회 안가면 안되는 인간이라 일을 할 수 없다니,
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판게 아닐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가 회사 다니기 싫은 이유를 종교로 돌린
그의 단호한 자세가 부럽기까지 하다. 
쓰는 것만큼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 우스운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덕분에 나도 허울좋은 구실이 생기긴 했지만,
과연 그는 '주일'을 보장받는 일을 구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삶을 살까?
안됐다 싶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시덥잖은 부르심에 응해야만했던
그의 허여멀건한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두고두고 내 결정을 종교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마음 편한지를 되새길 것이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9. 17. 01:28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말, 머리속을 한참 맴돌고 있는 말들을 쏟아내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참 힘들다 요즘.

뭐든 꾸준한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뭐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하면서.

싫다싫다 하면서 참가(?)했던 로케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4일동안 참 여러군데를 다녔다.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었고 다리도 땡땡붓고 입술에는 물집이 잡혔다.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중요할 때 일본어 단어도 생각안났다.
도움이 안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리버리하게 있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게 없었던 시간들. 부끄럽다.
좀더 잘했어야 하는데.

나는 강한 인간이 아니고, 빡센걸 견딜 수 없는 인간이라고 인정해야겠다.
내 몸이 피곤한데 남을 돌볼 여유가 없는 건,
경험부족이라기 보다는 성격에 가까운게 아닐까.
내 방을 두고 돼지우리라는 표현을 쓴지도 참 역사가 오래됐다.....
주변 정리도 못하는데 남 돌보기는 흥.

나보다 훨씬 자그마한 체구에 12살이나 많은 선배를 보면서 생각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꾸준히 붙어다니고 한순간도 정신을 놓고 있지 않다.
선배에게 이 일은 '자신의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지-
내 일이란 무엇일까. 언제까지 내 일을 두고 고민을 할까.
게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는 걸 보면
일을 떠나서 그저 내가 참 그릇이 작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와 괴로웠다.

스스로를 버겁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이상이 높아서 그런가, 적당히 단념하고 체념하는게 필요할까, 그게 어른인가
동시에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뭐 하나 끝장을 본 적이 없는 인생 부끄럽다고

항상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정반대쪽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그 간격에서 허우적대느라 아무결정을 못내리는게 나란 인간의 관성인 듯 싶다.
누구에게도 틀렸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자신은 옳았다는 주장이 가능하도록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안되는 소심한 인간.
누구에게도 틀렸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잘 하면 되는데
안타깝게도 거기까진 힘이 못미치는지라...

쓰다보니, 나는 꽤 속상한 것 같다. 이래저래.
이렇게 자신의 감정이 어느쪽에 있는지도 자신있게 판단을 못내리게 되고
그건 결국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으며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

나와 또 다른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사는게 불가능한가보다.
서로가 어디있는지 아직도 못찾고 헤매고 있는 중.

posted by steadyoung
2009. 5. 21. 15:35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もう張り切るしかないな!

。。と思いつつ、恥ずかしいといったら恥ずかしいし、悲しいといったら悲しいもんね。

積極的、という言葉で説明がつく時もあれば、
クール、という言葉を用いられる時だってあるけど、
実は不器用に正直過ぎるだけだ。

でも信じたいのは、この不器用な正直さが役に立つ時がいつか、きっと来るということ。

正直にものをいう、感情を表に出す、
そういう自分をただ笑ったり、見下したりせず、
そのままちゃんと受け止めてくれる人と
いつかは必ず出会えると信じなきゃ

。。。生きてゆけない状態です。(泣)

今更自分を変えたりすることはできないし、
痛い目によくあうのはあうので悪くはないものだと自分を慰めながら
もう張り切るしかないな!と思う、
雨の日でございます。

最後に笑うのは正直なやつだけだ、といった歌詞をスローガンに。


posted by steadyoung
2009. 5. 7. 10:35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恋愛の神様へ。

今度は裏切らないでね。
posted by steadyoung
2009. 4. 19. 22:3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황정민의 '밥상과 숟가락' 이야기에 말그대로 숟가락만 올려서 말해보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밥상 차리는 법'을 가르쳐서 수입의 절반을 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느냐, 즉 나는 '과외'를 하고 있다.
대학교 때의 과외는 용돈을 벌어쓰는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끔 지인들이 농담으로 아예 그 길로 나가라는 말을 하는데
나도 농담으로 맘만 먹으면 못할 건 없다고 받아친다.
누구처럼 한달에 몇천씩 벌어들이는 족집게 과외는 아닐지라도,
남들 연봉 부럽지 않게 벌 자신이 있다. 무슨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하지만 나에게도 일단 하고 싶은 일이라는게 있고, 그 일이 당장 내게 생계를 보장해주진 않으니까
알바 중 그나마 고수입이고 적성에 맞는 과외를 기약없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다 보면 이 아이는 이대로만 가면 대학까지 문제 없겠구나 싶은 아이도 있고, 얘는 좀 위태위태하다 싶은 아이도 있다. 그건 물론 지금 당장의 시험 성적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것보다 집안 분위기(솔직히 말해서 어머님들의 성격)와 아이들의 성격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와 하는 방법에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가르친지 1년을 훌쩍 넘는 아이들과 올해 새로 과외를 시작한 아이들까지 총 4명을 일주일에 한두세번씩 만나고 있다,
그 중 내가 '신뢰'하고 있는 아이는 단연 중3의 A양(알파벳 순은 내키는대로...)!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전부터 수학을 가르쳐서 지금까지 맡고 있으니 일년 반이 조금 넘는다. 또 A양의 세살 터울의 오빠도 중3때 가르쳤기 때문에, 그 쪽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 집 자체를 '친척'처럼^-^; 느끼고, 편하게 생각한다. 
A양의 부모님들도 매우 좋으신 분들이다. A양과 오빠를 보면 두 분이 사회적으로 남들이 우러러 보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야무지고 수더분한 딸과 과묵해도 착하고 든실한 아들이 있으니까 남 부러워할 필요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서민가정의 어려움만 조금 나아진다면 말이다(어려운 건 우리집도 그닥 다르지 않지만-_-;)

A가 물론 학교에서 알아주는 수재, 전교에서 '노는' 우등생은 아니지만, 시험 성적은 항상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중학교 때 공부 좀 잘해봤자 고등학교 가서 안하면 땡이라는 것, 중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해놓으면 고등학교 때 맨땅에 헤딩하기 쉽지 않다는 게 내 지론.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수월하려면 중학교 때의 두드러지지 않는 상위권 정도가 최적이다.

A의 훌륭한 점은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만나지 않는데 그 성적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수학 진도를 다 빼고 복습을 하려면, 내주는 숙제를 다 해오고 틀린 문제를 복습하는 본인의 철저한 노력없이 불가능하다. 나도 숙제를 잔뜩 내주는 타입은 아니고, A가 숙제에 대해서 궁시렁 궁시렁하는 일도 다수ㅋㅋ 있지만, 숙제 다 해오고 별로 틀리는 것도 없고, 어려운 것 풀어줄 때도 딱딱 알아듣고, 아아, 나의 수제자!! 라며 얼마나 예뻐하는지, 넌 모를 것이다 A야!! (>.<)b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학기당 적어도 수학문제집을 두권은 풀고(2학년 2학기땐 세권 풀었음) 시험기간에는 수학을 다 해놔서 영어나 사회 같은 과목도 봐주곤 한다.
 
특정지역의 누구들처럼 김밥에 참기름 칠하듯 공부에 과외로 돈칠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기) 충분한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자기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주고 싶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4. 11. 09:57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다들 말하지.
요즘 만병까진 아니어도 몸이 성치 않은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조심해야하는 상황에
또다른 스트레스를 받는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생활에 긴장감을 가져다주는데
다들 너무 스트레스, 스트레스 시끄럽다.
스트레스 안받는 사람도 없으면서.

그러니까 쌓인 스트레스를 잘 풀어낼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주는 또다른 스트레스를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posted by steadyoung
2009. 3. 26. 23:54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金には負けないのだ。
絶対に。











posted by steadyoung
2009. 3. 9. 00:19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몇년 전에 텔레비전에서 리듬체조 선수들의 경기를 본 적이 있다.
여느 때라면 곧장 채널을 돌렸겠지만,
어린 선수들의 경기를 주의 깊게 보고 있자니 점점 빠져들어서
경기가 끝날 때 까지 눈을 뗄 줄 몰랐다.

노래 틀어놓고 판 위에서 하염없이 리본과 몸을 뱅글뱅글 돌릴뿐이지만(내 눈엔..;;)
내가 감탄한 건 선수들의 탄탄하고 유연한 몸이었다.

저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저 5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자기가 연마한 것을 전부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흔히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지만 그런 말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몸을 생각한대로 마음먹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 엄청난 사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맙의 나카이는
경기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까지 참아야할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걸 전부 참아내고 훈련에 임하는 운동선수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운동의 효용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빼어난 몸매와 탄탄한 체력을 목표로 운동을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끈기와 인내력이 필요한지.
생활의 초점을 운동에 맞춘다는 말에 과장이 없을만큼
소중한 시간과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고 땀을 뻘뻘흘리는 일 없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여름에 몇시간을 걸어도 지치지 않는 강철체력을 얻고
고3시절의 기록을 슬슬 위협하고 있는 몸무게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그리고 그새 굳어버린 못된 습관을 지방과 함께 화끈하게 태워버리기 위해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3. 8. 23:59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당신이 말씀하시는 걸 세상 사람들이 옳다고 여긴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거나 책에 씌어 있는 것을 저는 표준으로 하지 않겠어요.
저는 제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해결을 찾아 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입센의 <인형의 집> 中


*하나의 생각과 일에 몰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참 답답하다.

만약 내 성격, 습관, 가치관이 한 벌의 옷이라면
훌러덩 벗어서 던져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훨훨 날아
내게 꼭 맞는 멋진 옷을 찾아 입고 싶은데.

그런 불가능한 일을 손모아 기도하다
점점 서글퍼지는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

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줄 수 없니
'나를 믿는다'는 다섯 글자는 왜 이렇게 실천하기 어려운거니

25년을 비록
한눈도 팔고, 가끔 농떙이도 부리고, 크게 넘어져 엉엉 울기도 하며 달려왔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한 순간들과 견주어보면 눈 한 번 찔끔 감고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있는거 아냐?  

스스로를 자책하고 편들어주는 나날의 연속.

그래도 내 삶은 나쁘지 않았다.
좋았던 시간도 많다.

남은 삶은 여태껏 겪었던 감정, 순간들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으로 채울테다.
 
사람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리고 내 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뱉어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있는 무게를 지닐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몰두하고 싶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다소 더디더라도,
굳이 하나의 생각과 일이 아니더라도,
웃고 떠들며 달리다가 잠시 멈춰선 그곳에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한 정확한 지도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1. 17. 18:44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제법 길었던 '연애'가 끝났다.
계절과 함께 따로 또 같이 지낸 시간들은
늘 그랬듯이 추억 혹은 기억으로 남았다.

어그러진 관계를 바라보고 느끼면서
차라리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시작하지 않았다면
즐거웠던 순간도, 섭섭했던 시간도
그 어느 것도 없었을테니

하얀 얼굴 위로 가느다랗게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걷어내듯
황량한 마음에 볼품없이 들러붙은 후회의 실을 걷어내기로 했다.

한 번 끝난 인연을 두 번 다시 되돌릴
맘도 재주도 없는 못난 나.

그래도 소멸된 자리에 남은 수북한 추억들과
한 사람에 대해 그렇게까지 노력했다는
궁핍한 변명을 방패삼아

새로운 다른 누군가와 또 한 번 시작할 그 날을 기다리며
내게 난 생채기, 그에게 난 생채기가
아물기만을 바란다.

끝.
   
posted by steadyoung
2008. 11. 27. 02:0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최장시간 두통을 기록했다.

일요일, 약속 장소로 가는 전철안에서 두통이 엄습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안에서는 그냥 배째라고 열차 바닥에 드러눕고 싶을 만큼
통증이 심해져서 집까지 겨우겨우 왔다.

밥 먹고 떡 먹은 게 얹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연장에서 먹은 사이다는 아무 소용 없었고
집에 돌아와서 배에 끼얹은 까스활명수도 소용 없었다.
두통약 두개가 소용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두통의 원인처럼 느껴졌다.

빨리 자는게 상책이라고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괜찮아진 것 같아 몸을 일으켰을 때
두통도 따라 일어났다는 걸 알고는 엉엉 울고 싶어졌다...면 좀 과장이고

체념했다.
게다가 왜, 소화는 아직 안된건데...

누워서 드라마를 좀 보다가 다시 잠들었다. 이번에야말로...하고 눈을 떴는데도
조금 괜찮아졌다고는 해도 사그라지지 않은 두통에
정말 두손두발 다 들고 내 속옷을 찢어 백기를 만들어 흔들고 싶을 만큼 ㅠ.ㅜ
찜찜한 마음보다 신경질이 앞서서 두통약을 더 먹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희미한 두통과 함께 이른아침 부모님께 전화를 한 뒤
내과에 가봐야 하나하는 걱정을 안고 실용영어수업을 들었다.
오후에 게보린을 또 먹고 말았다.

오늘은... 두통은 거의 없어졌지만 10년이 다 되어가는 턱관절 통증의 아침방문이
모처럼.
이게 언제 두통으로 발전될지 모른다는 불안도 함께.

원래 편두통이 있어서 (거의) 주기적으로 약을 먹긴 하지만 
이렇게 장시간동안 두통에 시달린 건 처음이었다.
두통이란게 심하면 토하고 싶을 만큼 울렁대고 짜증이 치솟고
제법 가라앉아도 '지끈지끈' 꾸준히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왜?
posted by steadyoung
2008. 7. 15. 01:37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지난 주 월요일 오랜만에 B를 만나 술을 마셨다. 정치오타쿠 B는 언론계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때 우리는 어른을 흉내낸 유치한 허영심과 무엇하나 진미를 내지 않는 설익은 고민을
   품고 있었고 형체도 없던 꿈을 빌미로 어설픈 방황을 했다.
   발밑을 적셔오던 현실의 차가움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던 무렵이었다.
   여고생치고 참 귀엽지 않게 살았다. 좀 더 움직였더라면 미래는 달라졌을까? 좋던 나쁘던. 궁금.
   
   우리는 오랜만에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는데 동의했다. B와 달리 나는 아직도 진로가 명확치 않다.
   하지만 변명하는 것도 그만두고, 이번에야 말로 솔직하게 가보자고 얘기했다.
   물론 후반부에서는 취해서 꺄-꺄- 했을 뿐이라 그리 진지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 때랑은 달라야 하지 않겠냐고 자신을, 혹 서로를, 타일렀다.

   B니까 물어볼 수 있는 일들, B답게 훤히 꿰고 있는 그쪽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조중동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신문이 객관적이란 말, 믿지 않는다.
   현장에 있는 건 다름아닌 '진실'이겠지만 나는 내 눈으로 그걸 보고 너는 니눈으로 그걸 본다.
   즉, 하나의 진실을 두고 무수한 해석들이 존재하는 거다. 그 진실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존재란
   적어도 두발달린 생각하는 동물에겐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결국 자기가 할 말을 조리있게
   정리해서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하는 수준이 기껏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인거다.
   그러니까 자기의 의견은 힘있게 밀어부치는게 상책이다.
   조중동이 하는거나 한겨례,경향이 하는거나 하는 행동의 성질자체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안에 대한 하나의 의견을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세개의 신문이
   동시에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공간에서 "아니예요!"를 외치는 목소리,
   모두에게 들리기는 하는걸까?
 
   즉 나는 문제의 핵심은 '균형'에 있는 거라고 보는거다. 반대로 한겨레,경향,또뭐, 이렇게 삼사의
   목소리가 조중동 비율로 커지면 그것도 문제가 되는거다. (물론 이런 일,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는건 조중동에서 둘 정도 없어지고 하나는 여지껏 해온대로 신나게 하면 된다는 건데
  (물론 이런 일도, 없을테지;;;) 그러자 친구가 지인이 왜 한국인들은 이리도 '균형'에 집착하는건지
   궁금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야 당연히 균형이 가장 올바른 상태니까!!!!하고 다소 수학적 개념으로 균형은 미다 어쩌구 해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겠지...단순히 나의 계급성이 조중동이 대표해주는 계급이 아니니까
   균형을 빙자해서 기득권 좀 나눠달라는 요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시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 없는 것이라 모두가 평등하게 권력을 누리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인류 역사를 기원 전부터 살펴봐도 계급이란 없어도 만들어지는 일종의 '본성의 발견'에
   해당된다는 굉장히 비약적인 의견을 늘어놓는 것도 내 자유지만
   아무리 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주장을 한다 해도 모두를 설득하려면 공익이 걸려있다는
   아름다운 뻥을 쳐야한다고 친구가 말했기에 나름대로 답을 찾아봤다.

   그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이 디카를 사려고 하는데 갖고 있는 팜플렛에는 삼성 것만 실려있다.
   게다가 선전문구가 가득 써있고 단순한 사양만 기본명시 해놓았을 뿐,
   단점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다. 다른 팜플렛도 마찬가지. 어라? 분명 디카를 만드는 회사는
   더 있었는데 이것 밖에 없어? 라고 생각하겠지. 근데 그건 만드는 회사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때야 가능한 이야기, 애초에 인터넷이 안되는 집 밖 반경 5km이내에 삼성 팜플렛 밖에
   없을 경우 어쩌면 당신은 디카에 대한 지식을 지닌 인간을 만나지 않는 한 디카는 오로지 삼성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 않겠나? (물론 억지스런 비유-알고 있음;)
  
   삼성 팜플렛이 있는 자리에 올림푸스나 니콘, 캐논, 소니, 산요, 펜탁스 등등의 팜플렛도 놓여있고
   옆에는 여러가지를 사용한 후기와 각각의 장단점을 논한 소책자들도 같이 놓여있으면
   당신은 그것들을 몇몇 집어들어 집에와서 비교해 보면서 드디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정이 삼성이라면, 그건 일단 타인이 뭐라고 할 수 없는 존중받을 선택이다.
   삼성 밖에 없어서 산 거랑 결국 삼성을 고른 거랑은, 한 보 백만 킬로의 오십보백보 차이쟝-  
 
   물론 나처럼 선배에게 부탁해서 대충 아무거나 샀던 ㅡㅡ^ 인간이 들 비유는 아니지만 요는
   되도록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과정에서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정보를 멋대로 잘라버리는
   횡포 때문에 잘못된 거다. 아무도 나의 결정권에 허튼 영향을 끼치게 하지 않겠어!!! 라는 대단한
   각오가 없는 이상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 중 아무거나 보게 되고 그걸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니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야. 근데 (내가 그랬듯이) 신문 읽는 것도 귀찮은데 그걸 일일히 다른 거랑
   비교하고 거기에 또 이런 저런 사람들이 내던지는 칼럼들도 줏어먹어야 하니까.
   그냥 다 필요없고 나는 띵까띵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처럼 [난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일본인들이 부러운 적도 처음이다.
   너네는 꿍시렁대도 관료들이 착착 일 해주잖아! 정경유착에도 레벨이 있다!!! ㅡㅡ^
  싫어도 지켜봐야하는 요즘같은 세태가 좋은지 나쁜지 ㅡㅡ^ 그래도 아직은 어린 나는 잘 모르겠다.
 
  자기의 색을 주장하는 건 좋지만, 덩치 큰 사람들이 손잡고 똑같은 소리 말하는 건 아무리 봐도
  페어플래이가 아니잖아. 갖고 있는 딱 반을 옆 사람에게 주라는 건 아니니까 조금은 다른 신문사랑
  방향이 다른 이야기, 해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균형이란, 이룰 수 없기에 동경하는 덕목이란 말이지. 흐음.
  
posted by steadyoung
2008. 6. 23. 04:07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다른 사람과 거시적인 주제(가 결국 내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이 요즘 나의 결론이지만)
에 관해 다른 논점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에 대해 감정 상하는 일이 없다해도(전에도 후에도
관계가 잘 유지된다 하더라도) 얘기 후에는 늘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글쎄, 그게 일차적으로 내 의견과 달라서 무조건 생긴 배타적 느낌일 수도 있다. (난 소인배 흑흑)
(본인은 배타, 배척은 인간의 기본 본성이라고 생각, 본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 그게 적어도
 주변 사람들과의 쓸데없는 불화를 일으키지 않는 다는 것에 위대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A가 잘못된 의견이라고 지적해도 그 사람은 그런 내 의견이야 말로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결국 딴에는 심각하게 어울리지도 않는'고찰'을 해서 도출한 결론과
과정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셈이니,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에 개거품을 무는 나로서는
참 수지 안 맞는 짓이라 생각되기에 참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내 생각이 절대적이 아니다'라는 걸 사고구조 베이스에 깔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가는 이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상식범주에 넣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항이 심하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미력하나마 일단 어떤 입장을 표명한다거나,
견해를 밝히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참여'를 향한 스텝을 밟고 싶다.

감정적 대응 따윈 필요없다.
물론 논리력으로 둔갑한 인신공격은 더욱 사절.
말로 남을 설득하는데에 목표를 두기 보다는 남과 나의 의견을 '교환'하는데 목표를 두고
그게 피스풀 월드(평화로운 세상보다 훨씬 공정한 어감)에 위배되지 않을 경우에는 공존을,
설득을 원할 땐 행동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상대방의 '선택'에 맡길 것.
이게 멀고 지루해보여도 적합한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필요한 건 주장을 뒷받침하는 충분하고 타당한 근거.
단지 의견차이로 인간관계 자체에 절망하는 실수는 하지 말 것.
내용이 어떻든 의견이 서로 부딪치는 건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을 내기 마련이다.
이걸 꾸욱 감내해서 달라도 공존할 수 있도록 길을 함께 모색하는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의 가치관에 내가 일정 부분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를.

나의 말을 경청하고 자기 의견을 피력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불협화음은 '남'이 아니라 '우리'가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불행한 미래가 아니라 행복한 미래를 향한 협력을 바라는 일종의 신호.
겸손의 미덕은 여기서도 발휘되야 하는군.


*음, 그래도 주성영 의원은 역시 쫌...이 아니라 많이...아웃!
posted by stead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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