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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2. 01:57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전부터 좋아하던 선배가 있다.  좋다, 라는 건 뭐랄까, 연예인 좋아하는 마음과 비슷하게,
이 사람이랑 실제로 사귀고 싶다거나 (나이가 나이인만큼) 미래를 함께 하고 싶다거나ㅡ_ㅡ; 그런 건 아니고,
보고만 있어도 꺄아아아아악 하고 환호하고 싶은 그런 선배.

대학교에 입학해서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시간 동안
멋지거나, 어렵거나, 그런 선배들에 대한 환상 또한 무참히 깨져왔는데,(그래서 친해졌거나, 사귀다 깨졌거나ㅡㅡ^)
아직도 순수한 마음으로 꺄- 동경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그 선배와 내가 친하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ㅋㅋㅋ
(무려 같이 밥 먹은 횟수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만큼)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커피를 마셨다.
입학한 뒤, 무려 같이 공연도 해놓고, '얘기'다운 얘기를 나눈 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밥을 같이 먹은 건 생각나는데, 밥 먹으면서 무슨 얘기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는 걸 보니 별 거 없었을테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한참 학회 활동할 때 그 선배는 '날라리' 선배 같은 느낌이어서ㅋㅋㅋ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도 그렇고, 나랑은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타입'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근데 이번에 만나서 얘기를 하고 보니, 
내가 좀 더 활발하게, 괜시리 어렵게 생각안하고 '막 대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됐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선배도 선배인지라, 나이가 들은지라, 그래서 바뀐 점도 많이 있겠지만,
전에는 이런 사람과 나는 타입이 달라서 어쨌든 못친해져- 하는 쓸데없는 선입견 따위 무시할 수 있게 된,
나도 참 성격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냐면,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들 앞에선 활발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됐다는거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농담도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위화감도 덜 느끼게 되고.
애초에 내가 왜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그렇게 소심해졌는지, 곰곰이 생각하니까 또 별로 안좋은 기억만 잔뜩.
그랬다. 그땐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밝고 명랑한 것도 사실인데
이래저래 눈치 보는 것도 많고, 주변 눈초리도 신경쓰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도 명확하고 가리는 것도 많고
사소한 일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소심하단 말인데)
내 캐릭터를 힘차게 밀고 나갈 만큼 강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그럴꺼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동경과, 이래저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덕에 거쳤던 많은 일들 때문에
얼굴 근육이 마비될 정도로 싱글싱글 웃으면서 친절하게 굴 수 있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때때로 허무함에 허탈해질 때도 있지만 난 이런 내가 싫지 않아서, 앞으로 더더더더 싱글싱글 웃고 싶다.
애초에 내 성격이 어쨌냐느니 나는 원래 이렇다느니, 그런거 일체 고민안해도 되는 무아지경 상태로 있고 싶다.
일본어로 표현하자면, '히라키나오루'라고, 사전으로는 정색한다는 표현이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

내가 어느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음. 근데 나는 연극이 짱 대박 쪽팔려서 되도록 안하고 싶은데
다들 하라고 강요하고, 진짜 안하면 안될 것 같은 상황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쭈빗쭈빗 하다보니깐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에라~ 모르겠다~ 이럴꺼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싸지르고 빨랑 끝내고 잊어먹어야지, 하고
무대에서 폭주하다.
이럴 때 써먹는 말이 '히라키나오루', 라고 나는 생각한다. ㅋㅋㅋㅋㅋ

지금 나도 딱 그런 느낌이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예전엔 안그런 인간이 그런 척하고 있으니 거짓말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건 아니고, 이게 내게 맡겨진 '배역'이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는 수 밖에 없다는 느낌. 
근데 역시 원래 그런 인간이 아니다보니

말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발 밑이 푸========욱 꺼지는 듯한 허무함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결론은, 그 선배랑 더 친해지고 싶다고.......................................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