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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4. 01:4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다.
오늘은 모처럼(?) 지갑을 놓고 나와서 선배에게 만원을 빌렸다.
저녁 대신 빵이랑 커피사먹고, 버스비+전철 두번 타고 돌아오는 길에
컵라면과 콜라를 샀더니 딱 100원 남았다. 허허. 왠지 허탈하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인천공항에 가야한다.
출연자들이 무사히 비행기 타는 걸 확인하면
나도 김포공항으로 무사히 이동해야한다.
그리고 26일까지 스케쥴 꽉꽉 채워서 가말쵸바를 따라다닐 예정.

일단은 이번주 토요일이 내가 한달하고 조금 넘게 일한 이 일을 그만 두는 날이다.
그만둬야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무척 고통스럽고, 일 나가는 것도 싫었는데
그만둔다고 말씀드리고, 아직 확실치 않아도 마음과 행동이 나갈 방향을 정하니
미련이 남는건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요동을 치는지
이 일도 나쁘진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년에 남들 다 하는 취업 활동을 매우 적극적이지 않게 했다.
선배의 소개로 일본계 회사라는 곳에 영업지원으로 뽑히기도 했지만,
내키지도 않고, 내키지 않을 일을 열심히 할 만한 월급도 아니었다.
남들 다 찔러보는 대기업 나도 찔러봤지만, 결과는 뻔했다.
백수가 되는 건 두려웠지만, 대기업 사원이 될 자신도 맘도 없었다.
일 보다는 꿈을 좇고 싶었다. 딱히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리고 2009년이 밝아봤다. 
1월 2월은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동굴에 은거하듯 집에서 일본 쇼프로나 보고
먹기나 하고... 과외는 관성처럼 계속'될' 뿐.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일말의 안도감과 실질적인 수입이 죄책감을 덜어줬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게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졸업을 했다.
그 날은 일본계 은행의 간단한 사무 아르바이트 면접을 본 날이었다.
딱히 일본어를 쓰는 알바도 아니면서 한 시간 동안 전혀 다른 네 명의 사람들이
내 사고방식과 경험과 포부를 물었다. 끔찍했다.
오바하고 있네.

하지 않겠다는 메일을 쓴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 얘기였다. 국제도서전 주빈국이 일본이니 같이 일하자는.
작년에 국제출판협회 서울 총회에서 고작 이틀 일한게 인연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날 넘겨준(?) 관계자 분, 감사합니다.

영화제 사람들이 너무도 끔찍했던 것에 비해, 
그 곳 언니들, 차장, 과장님은 참 좋은 분들이었다.
막판에는 눈 밑이 거북이등처럼 갈라질만큼 힘들었지만
언니 덕분에 리셉션 사회도 보고, 에쿠니 가오리 통역도 해보고, 사인회도 진행해봤다.

일이 끝나고, 6월 한달 동안도 은거했다. 아, 면허 따놓는건데. 후회가 된다.
딱 그것만 해도 좋았는데...
7월 초는 사촌동생과 일본에 다녀왔다. 비정규직과 백수를 번갈아하는 주제에
참 호화스럽죠? 그래도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걸 바탕으로 다시금 의욕이 생겼다.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는 4월 등록이었는데 도서전 일과 과외를 병행하기
너무 빡세서 미뤘다.
100만원을 웃도는 등록금이다. 돈부치고 통장 잔고 봤을 땐 울고 싶었다.
부모님껜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김칫국 마시기와 걱정이 특기라
뭐든 되고 나면 '통보'하는게 나나 부모님을 위해 좋다는 생각을 한다.
한달을 그렇게 살았다.

8월이 되서 일본 방송에서 여대생 출연자를 뽑는다는 연락에 이력서를 보냈다.
결국 난 떨어졌고 다른 친구가 됐지만, 덕분에 코디네이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4개중 두개를 정리하고, 두개는 병행하기로 했다.
사장님과는 아카데미 수료시 진로에 대해 얘기하기로 하고, 일급 알바로 일을 다녔다.

그리고 9월 말이 되었다.
아카데미는 곧 있음 수료다. 
애초에 등록했을 때는, 리포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말을 하는 직업(통역은 너무 뻔하고 학원강사는 나중에도 도전가능하다는 판단)
+프리랜서+그 분야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고 싶음, 정도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데, 일을 하다보니 뭐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방송 관계다 보니 각기 방송 분야의 오래된 경험을 가진 분들이 온갖 충고와
감언이설로 떠나려는 날 잡으려는데, 틀린 말씀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 나의 변명(?) 혹은 진심은,
기분의 문제라는 것이다.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보다는,
내가 처음으로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하겠다는데
이렇게 무도 안썰어보고 칼자루만 쥐고 끝낼 순 없지 않은가.
안되면 안된다고 절실히 깨닫고 포기하는 걸, 나는 하고 싶다.
좀 더 일찍 등록했다면 좋았을까?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없었다... 방송이라는 꿈을 직시하는게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

머리가 참 아팠다. 
카메라를 경계로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너무 다르다.
그래도 방송이라는 끈을 잡게 해준 이 기회는 더없이 감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취업 안되서 힘들다는데, 돈을 많이 주진 않아도-_- 일을 시켜주겠다는데
박차고 나갈 궁리를 하는 것도 참 호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으로 나도는(?) 딸을 흐뭇하게 보는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내일부터 삼일동안 나는 또 바깥으로 나돌면서 일을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
지금은 그만둘 생각을 굳혔지만, 가말쵸바 관련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에 따라
마음의 변화라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은 나는,

참 작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한 곳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런 타입이 아닌걸까? 그럼 그런 타입은 평범하지 않은 꿈을 이룰 수 없는걸까?

모든 걸 간단히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는 힘이, 제일 갖고 싶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