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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5. 01:31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폭설이 내려서 차량운행이 안되므로 오늘, 내일 학원수업이 미뤄졌다.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전화를 걸다보니 어머님들과 통화를 하게 되는데,
그 중 예비 고1이 되는 학생의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시더니 다짜고짜
애가 집에서 공부를 안하는데 제대로 시키고 있는거냐고 따져묻는다.
아. 혈압이 빠직, 상승한다.
여튼 좋게좋게 나도 잘 할테니, 집에서 잘 지켜봐달라-하니까, 화가 치밀어오르는데 참는 기색이 느껴지면서
아니 지금 책임을 학부모한테 미루는거냐고 소리를 지른다. 오마이갓 ㅡ_ㅡ;;;
단어 안 외우는것에 대해 제대로 체크를 하고 있느냐-
그거 몇 푼짜리라도 공부시키려고 보내는건데 이렇게 신경을 하나도 안쓰면 되냐
등등 실컷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끊는다. 이게 왠 열폭이람. 누가 푼돈이라고 욕이라도 했나.

아쒸 나더러 어쩌라고!!!!!!$%^&*(
시험을 봐도 안외우고 해오라고 프린트를 내줘도 안해오고 그럼 내가 집에 따라가서 공부하는걸 내내 지켜보랴????
그럴꺼면 과외를 시키던가, 것도 불안하면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을 보내던가!!!!!!!!!!!!!!!!!!!!!!!!!!!!!!
하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없는 살림에 공부시키는 부모님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돈을 받는 입장이니 입닥치고 공손하게 굴었다.
그런거야 잠깐 기분 더럽고 마는거니까 괜찮은데 여기서 잠깐.

방식을 바꿔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쫌 자기자랑)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제법 하는 편이었는데, 사실 공부하기 진짜 싫고 귀찮고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애들한테 지기도 싫고 혼자 체면 차리느라 눈물을 머금고 공부했다.
그렇다고 독한 타입도 못되서 기를 쓰고 1등해야지, 하는 맘도 없고 대체로 5등안에 들면 만족하는 편이었다.
집중력도 짧고 변덕도 심하고 머리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지만 평소에는 학원다니고, 벼락공부만은 열심히 해서
그럭저럭 성적을 유지했다. 공부는 학원에서 배우고, 혼자서 했다. 
그래서 진~짜 공부 안하는 애들을 과외에서 만날 때 마다 스스로 공부했던 중학생 시절의 내가 참 대견했다-_-;
물론 부모님이 중학교 때 날 방치-_-;했던건 알아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겠지만, 
비평준화 선발고사를 앞두고 프린세스메이커2를 밤낮으로 해도(모뎀 때문에 전화가 불통되서 된통 혼난 적은 있지만..)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물론 고등학교 가면 상황이 많~이 바뀌지만)

여튼 공부를 누군가에 의해 마지못해 억지로 한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학원 쌤한텐 잔소리 좀 들었겠지-
남들한테 뭐라고 말 듣는 것도 싫고,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내 일도 자신한테 단언하기 무서운데, 남의 인생, 공부 안하면 큰일나! 같은 말, 죽어도 못하겠다. 
어차피 자기 인생이고, 자기가 하는 공부,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된다. 
드물긴해도, 공부 말고 일치감치 제 길 찾아서 떠나는 애들도 있으니, 제 길을 일찍 찾는 것 만큼 부러운 게 또 없다.
무용하면서도 공부 열심히 했던 친구, 공부와는 담쌓고 작곡가 아버지와 기타치던 유쾌한 여자애, 유학간 아이,
아이들의 은근한 따돌림속에 메이크업 학원을 다녔던 아이.
  
어리니까 아직 모른다는 건, 애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다들 생각이 있다.
그때 암 것도 안하는 애들, 어른되서도 암것도 안할 확률이 높다. (이걸 뒤집어엎은 사람들은 자서전을 내더라...)

왜 남들이 시키니까 하고 안시키니까 안하고, 그래야 하는걸까.
왜 자기 자식 공부 못하는 탓을 남한테 하는걸까.
왜 자기 공부 못하는 탓을 남에게 돌리는걸까.

공부할 의욕은 자기 스스로 찾는 수 밖에 없다.
애들도 스스로 자기 공부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냥 성격상 남들한테 싫은소리 못하는 것도 크지만-_-;;;)

그래서 대체로 과외하는 애들+학원 다니는 애들한테 할만큼의 숙제만 내주고, 소량의 단어를 외우게 하고,
머리 좀 큰 애들한테는 단어 시험을 볼지 말지, 여기까지 숙제를 할지 말지 스스로 정하게 하는데,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이게 당연한건가????
내가 너무 이상적인가? 애들을 존중한답시고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는건가??
어차피 애들은 강제로 시키고 볼일인가???

왜 공부 안시키냐고 떼쓰는 어머님들을 볼 때 마다 땅이 조금씩 조금씩 꺼지는 것 같다.
나는 영문법과 독해를 가르치는 학원 강사지, 그 아이들의 인생의 멘토가 아닌데,
동기도 불어넣어줘야 하고 강의도 하고 집에서 공부하는지도 체크하고 학부모님들 전화도 받아줘야하니
참 짜증이 난다.
그래. 그걸 포함해서 일이다. 말도 안되는 보수지만 꾸욱 참고 일단 하기로 했으니 감수하기로 하자.

하지만 공부 안하는 애들이 너무 한심한건 어쩔수가 없다. 

중소기업의 연봉 2250만원이 적다고 하니 근데 그것도 지원못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고, 3년제인 동생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2250은 말도 안되는 연봉이라고 코웃음치며 취업 안되는 대기업 지원자들 틈바구니에서,
대기업에서도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면서 회사 나가서 뭐할지 고민하는 친구, 선배들 사이에서,
2250이라도 감지덕지 받고 싶은데 4년제가 아니어서 지원못하는 2-3년제 동생 친구들 속에서,
서울 4년제가 아니어서 앞일을 생각하면 울컥울컥 재수하고 싶다는 동생의 옆에서,
학벌이 뭔지, 그 놈의 수능과 내신이 뭔지, 경쟁이 뭔지, 취업이 뭔지 참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남들 알아주는 4년제도 서류전형에서 스스륵 걸러지는게 당연지사다.
취업 준비한다고 뼈를 깎아서 한 두군데 합격하는게 당연한 요즘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간 예전 과외남은 취업을 위해- 미래를 위해- 예전에 공부했듯 성실하게 매우 열심히
경력과 실력을 쌓고 있다.
지방대 가서 그냥 열심히 살아봤자 취업의 벽에서 예전 과외남 같은 애들한테는 이길 수 없다. 딴길을 찾아야한다.
사람들은 그걸 현실이라고 부르고, 당연한 결과라고 여긴다.

안전하게 공부하던가, 공부 안하고 스스로(+뭐라뭐라 잔소리할 부모)를 책임지던가.
전자도 써봐이벌인 이 시대에, 후자 역시 써봐이벌이다-. 뭐든 뭔가 해야한다 이거다 흑흑흑.
이렇게 말해봤자 잔소리 레파토리가 돌고 도는 입아픈 짓이라 가만있는데,
이제는 아이들의 의견 따위 필요없고 그냥 닥치고 무조건 하삼! 포스로 가야하나 고민이다.

이 고민이 심각한게, 일단 닥치고 무조건 하삼! 이라는 말을 곱게 포장한,
미쳐라, 열심히 해라,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를 혐오해왔지만
요즘에는 결국 그 말이 맞나 싶어서, 또 한 번 한 입으로 두 말 할까봐 무섭고 서글프다.

아이들을 무조건 공부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면,
나도 닥치고 뭔가 하나 열심히 안하면 얘기가 안될 것 같아서 싫단 말이다----------------아아아ㅏ아아아아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