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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10. 11:51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는 생활도 어느덧 5개월이 다 되간다.
첨엔 온갖 부지런을 떠느라 네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도 먹고 나갔는데 한달도 안되서
20분도 안되는 시간에 모든 준비를 다하고 나갈 수 있게끔만 일어나게 되었다. 아침밥은 무슨-_-

8시에 수업이 끝나면 배가 고파서 뭔가 먹어야 하는데 근처에 문을 여는 식당도 별로 없고 밥 한끼 먹으면 적어도 4000원이니까, 커피 마시고, 또 12시 넘어서 출출해져서 빵이든 뭐든 사먹을거 생각하면 결국 오전에만 약 육칠천원을 밥값으로 쓰게 된다. 그래서 내가 주로 애용하는 곳이 편의점과 맥도날드.
불과 2~3년 새에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아졌다. 2500원대의 도시락, 1800원대의 샌드위치,
1200원대의 김밥 한줄, 700원대의 삼각 김밥과 빵 등등 저렴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게 많아서 매번
뭘 고르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사먹었다.

그리고 맥도날드의 맥모닝 세트! 다국적 기업 만세다. 3000원이면 커피 한 잔, 맥머핀, 그리고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해쉬브라운! 너무 풍성하다 ㅠ.ㅜ 뜨듯한 커피까지 포함된 가격이란게 고맙다.
첨에 며칠 먹고 질려서 편의점으로 바꿨는데 역시 맥모닝 세트만한게 없어서 담날부터 질리지도 않고
약 한달을 맥모닝으로 버텼다. 근데 그러던 어느 날... 물론 맥도날드 탓은 아니겠지만...
일욜에 밥 먹고 거하게 체해서(약 먹고 손 따고 토하고)  이건 내 평소 식생활이 안좋아서, 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전 날 먹고 바로 자고, 늦게 일어나서 바로 밥을 많이 먹어서 체한건데 ㅡ_ㅡ; )

여튼 그 때 부터 맥도날드를 끊고, 편의점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편의점도 물리는거다!!!
게다가 내가 요즘 철지난 '하류사회' 읽고 하류 계층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반발중이라, 하류층의 특징인 '요리 하지 않고 대충 대충 끼니 때우기' 버릇을 버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엔 한시에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대충 라면 먹고 떡볶이 사먹고 편의점 도시락 먹고 그랬는데 ㅠ.ㅜ
이제는 꼭꼭 밥을 먹는다.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기름에 야채랑 계란을 지지는 것 뿐이라 몇 끼 먹었더니 그것도 물려서 무려 어제 도시락 싸는 책과 요리책을 주문했다.
학원에도 지난 주 수요일부터 떡 싸오고, 담날 유부초밥 싸오고, 금욜에 대충 반찬에다 밥을 싸와서 먹는데 그게 너무 맛있고 느껴지는 포만감이 다른거다!!! 감격했다.
집 밥이 괜히 좋은게 아니다. 

그리고 다이어트도.
안빠진다고 짜증냈던 기간도 지나 조금씩 조금씩 살이 빠지고 있다. 지금까지 약 2.5kg을 뺐다.
저녁에 안먹고 덜먹고 그러다 보니 낮에 즐겨 사먹었던 기름기 좔좔 흐르는 음식들을 마다하고
있어서 밥을 해먹는게 그리 수고스럽진 않다. 생각해보니 헬스 다니고 부터 라면도 안먹고 있다!

나는 요리하는 인간이 될꺼다.
'잘 먹고' 살아야지.

posted by steadyoung
2010. 9. 3. 11:40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2010년 7월 4일에 있었던 신!JLPT 시험의 결과가 나왔다.
나는 물론 합격이다. 우훗!

당연히 합격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하하하.
일본어로 먹고 사는데 일급 못 따면 그건... 그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을 못한다는 것과 같다 -_-
문제는 몇 점으로 합격하느냐!에 있었는데 시험 치고 모두가 하는 말이 "이번 시험은 너무 쉽다"였다.
나도 N2 치는 기분으로 셤을 봤으니... 그래서 과연 몇 점으로 합격할지가 가장 궁금했다.

비록 2004년에 일급을 쳤을 당시 일본어를 잘 못한 건 맞지만, 어려웠고,
시간이 흘러 좀 잘하게 됐다해도 JLPT N1 고득점, 만점은 어렵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이번에 일급 준비하면서 문제집 몰아서 풀었을 때 틀리는 문제는 반드시 있었으니까.
근데 뭐 그렇지도 않게 됐다.
나는 180점 만점에 180점 만점으로 N1에 합격했다. 헛웃음...나 말고도 만점 받은 사람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니까 시험이 이렇게 쉬우면 안된다!!!!!
나는 고득점으로 170점 이상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셤에 임했는데 셤지을 본 순간 띠용~
셤이 이렇게 쉬워서는 공부도 뭣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나처럼 오래 많이 공부한 사람도 퍽퍽 주저 앉는 문제가 군데군데 출몰해야 셤이라 할 수 있지!
뭐 덕분에 점수 필요했던 분들은 좋았겠지만.

12월 시험을 또 쳐봐야겠다. 이번엔 절정으로 어려웠음 좋겠다. 그래야 공부를 할 맛이 나지.
결국 변별력을 갖고 있는 건 JPT라는 생각이 든다. JPT도 토익처럼 유효기간이 있나? 
곧 있음 2년이 다 되가는데(그 때가 어제 같건만 ㅠ.ㅜ) 한 번 다시 쳐봐야겠다.

여튼 JLPT 그러면 안된다. 어려워져라!!!
 
posted by steadyoung
2010. 8. 20. 11:13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오늘 회화시간에 쌤이 물어봤다. 왜 가고 싶은거니?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딱히 대답할 게 없어서 곤란하다.
가고 싶다는 마음을 남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 막히고 만다.
그런거 나도 몰라!!!!! 내 맘을 나도 몰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남이 외국에 간다면 나도 할 질문이니까 참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해보는 중이예요"하는 말로 둘러대기도 하는데(사실이기도 함)
그럼 다들 벙쩌하길래(여긴 하하하 웃어야 할 부분인데!)

"영어를 잘 하고 싶어서요"

라는 무난한 대답을 고른다. 사실 이게 큰 이유기는 하다.
누구는 한국에서도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한국에서 어떻게 '열심히'하면 어떤 식으로 '잘하게' 되는건지 잘 모르겠다. 가령 토익 점수 900을 넘기고 싶어요, 라는 목표가 있다면 굳이 외국에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충분히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
좋은 교재가 넘쳐나고 학원, 대학교, 과외 등등 뭘 고르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많은 강사와 다양한 수업이 있다.
하지만 외국어를 잘 한다는 건 너무도 포괄적인 개념이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적성에 따라 다른데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된다는 말(예전에 우리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말!)은 곧이 듣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하다.

그리고 경험상, 나라는 사람은 1년 정도의 체재 기간을 갖고 현지에서 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며 기반을 단단히 닦은 뒤,
돌아와서 꾸준히 공부하고 사용하는 방법으로 일본어를 공부했으니 영어도 그 순서를 따르는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어 목표? 
내 목표는 '복잡하지 않은 내용의 순차 통역, 간단한 번역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즉,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책 보고 영화 보고 알아듣는, 내 취미를 위한 영어는 너무 당연한 거고 그걸로 남의 돈을 받기 부끄럽지 않을 수준이 되는게 목표다.
근데 사실 영어를 이렇게까지 하려면 내년에 호주를 간다고 치고, 서른쯤 어느 나라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른 하나, 둘 쯤
영어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빨리 목표를 달성한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돈도 모으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돈을 모으는 건 이젠 한국에서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건 나 자신에게도
안먹히는 이유가 되었다. 돈을 모으려면 맘 잡고 한국에서 일을 늘리는게 더 많이 벌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째.
요즘은 이 이유를 그럴듯한 이유로 밀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어를 오랫동안 접하고 공부하면서 요즘 느끼는 건, 한국과 일본이 무척이나 다른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큰 그림으로
보면 비슷하다는 거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고방식이. (중국은 겪어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지역도 사람도 다르니까 서로 다른 건 당연하지만(서울과 부산이 다르듯) 애시당초 중국에서 건너온 여러가지 사상과 문화를 바탕으로 한
결과물이니 비슷해도 이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

나는 한국이라는 굳건한 디딤돌과 크기도 무게도 제각각인 일본'식'디딤돌을 요리조리 건너면서 '사고'를 하는(것 같은)데
요즘따라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이 원래는 당연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깊어져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고등학생 때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리고 뭘 모르니까- 라는 생각이 더 커서 누를 수가 있었는데,
요즘은 정치적인 견해를 비롯해 사회에 대한 의견은 크고 어리고, 배우고 못배우고를 떠나서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그 디딤돌이 절대적이 아니라면,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서 디딤돌을 다시 까는 건 불가능해도
내가 활보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디딤돌들을 더 깔 수 있지 않을까. 다수를 점하고 있던 한국과 일본식 디딤돌을 빼버리고
새로운 디딤돌을 깔았을 때 나는 어떤식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될까,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호주는 어디까지나 시작이다.
호주를 시작으로 음, 미국은 기회가 되면 가고, 실은 유럽에 가고 싶다.
그러니까 호주에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당분간 일을 하지 않고도 체재할 수 있는 돈 정도(적어도 삼개월) 마련해서 떠나는거다!

나는 그 생각만으로 요즘따라 따분한 일상을 견디고 있다.

호주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조울처럼 가고 싶어 안달이 날 때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치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거의 3년이 돼가는데, 언젠가는 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친구들이 너 진짜 가는 거
맞냐고 가고 싶은거 맞냐고 갈 생각 없는 것 아니냐고 추궁(!)할 때 마다 행동하지 않는 자신을 열심히 변호한다.

내년에는 정말로 블로그에, 호주에서의 생활상을 올리고 싶군요.  
  
posted by steadyoung
2010. 7. 22. 23:42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언제부턴진 모르겠는데 비가 갠 뒤 햇볕이 짱짱한 날 지렁이가 아스팔트에서 죽어있는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어제도 출근길에 아스팔트에서 꼼지락대는 짧은 지렁이를 발견했는데 오늘 보니깐 말라있었다 ㅠ.ㅜ
물론 때때로 개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먹이 삼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기도 하는데 (생태계의 순환이랄까)
그래도 비온다고 신나서 아스팔트에 나와서 그대로 죽어가는 걸 보면 좀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랬듯 딱히 뭘 하는 건 아니고 그저 안타까울뿐.
고무장갑을 싸갖고 다녀서 흙으로 옮겨볼까도 싶지만, 만지기가 좀 무섭다 ㅠ.ㅜ 물론 내 몸이 훨씬 큰건 아는데 ㅡ_ㅡ;;


질리지도 않고 계속 보고 있는 "오오타 총리~" 그저께 본거에서 쓰레기 봉투를 한 장에 200엔에 하자는 공약이 나왔다.

사실 나는 유별나게 환경에 대해서 신경쓰는 편은 아니고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뭘 하자는 열성적인 
사람들이 매우 피곤하다. 지구의 존속은 인류의 노력과는 크게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고, 설사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탓에 멸망이 빨라졌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않나. 우리가 그렇게 만든것을. 모두가 다 함께 하나 둘 셋! 하고
모든 생활을 원시적으로 돌리지 않는 한 지구를 지키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같은 생활을 포기할 수 있나?
최큼 많이 힘들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 대신 생기는 결과를 고이 받아들이는게 납득이 쉽다. 근데~

그런거랑 별개로 고작 내 몸 하나 건사하는데 쓰레기가 잔뜩 나오는게 너무 끔찍하다.
예전에 학교 앞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렸는지. 안입는 옷은 세탁해서 아름다운 가게
갖다주고 안쓰는 건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고 내놓고 돈 받고 팔고 해도 버릴게 너무 많았다. 
참 슬펐다.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나는 뭘 딱히 생산하는 것도 아닌데.  
 
근데 어느 스웨덴 출신의 외국인이 유창한 일본어로 자기네는 한달에 축구공만한 쓰레기 밖에 안나온단다! 깜놀이다!!
그리고 '미미즈콘포스트'를 한다고 하니까 모두가 아~ 하고 수긍하는거다. 어!! 난 몰라! 미미즈가 지렁인건 알겠지만
미미즈콘포스토가 뭔지는 몰라!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일본에도 잔뜩 있을거니까 친절한 스텝들이 자막을 달아줬다.

지렁이가 음식쓰레기들을 분해한다는 설명. 방금 좀 찾아보니 분해 후의 배설물에 토양을 이롭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단다.
오오~ 그렇게 신비한 일을 인간차원에서 실천하는 방법이 있던거야??
서양에서는 그런 걸 만들어서 파는 사업도 있고, 일본은 그걸 수입하고 있고, 근데 우리나라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일본 야후에서 검색해보니까 만드는 방법도 나오던데 그냥 땅 파서 지렁이 집어넣는 거 보다는 할게 많아보였다;;; 

그래도 이건 참 좋은 방법이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 내가 먹은 주제에 더럽다고 생각해서 내다 버리기도 싫은데
지렁이가 먹고 배설하는게 땅에 도움이 된다면 이래저래 궁리해볼만 한 일이지 않나.

지렁아, 안녕. 앞으로 널 좀 연구하고 싶엉.
posted by steadyoung
2010. 7. 21. 07:52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얼마전에 씨네21의 진중권씨 칼럼에서 본 말.
예전에 씨네21에서 칼럼쓰기를 그만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세월이 흐르고 다시 쓰나보다.

아, 정체성을 패키지로 가질수없다니, 서글프고도 절묘한 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내가 분명한 근거를 들어 반대를 표명했을 때, 똑같이 반대를 표명하는 사람이 있고
그럼 그 사람과 나는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 할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나.
그니까 모두 정체성을 패키지로 갖고 있지 않으니까 생기는 현상이다. 물론, 패키지로 가질수도 없고.


술집에서 여종업원 폭행 혐의로 방송에서 하차한 이혁재씨 인터뷰가 인터넷 기사에 실렸다. 힘들었단다.
음, 가족들이 참 고생이었겠구나, 그건 참 안됐다. 하지만 그 폭행 혐의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면 모를까,
사실이라면 무척이나 난감하지 않나. 난 사실 폭행 혐의보다 그런 술집에 드나들었다는 것 자체가 쇼크였다.
물론 여종업원이 있는 술집에 간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갈수도 있지. 근데

1.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가장 효도하는 것이라며 효부를 자처해왔던 점,

2.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였다는 점,

3. 인천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점,

등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여종업원이 있는 술집에 드나들었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건 아무래도 혼란스럽다.
아무리 정체성을 패키지로 가질 수 없다고 해도, 바른 사나이임을 자처했던 만큼, 깨끗한 이미지로 덕을 본 만큼
그 정도의 정체성의 일치는 해줬으면 좋았는데 싶어 안타깝다.


그와 별개로, 혹은 같은 맥락에서

남자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됨됨이와 여자문제는 별 상관 없다고 느끼는 인간들이 '주변에도' 많다는게 씁쓸하다.
여자끼고 술마시려면 돈이 많이 든다느니 하는 농담 아닌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데
그건 아무래도 '속좁고 사소한 것 까지 꼬치꼬치 따지려고 드는 피곤한' 여자들의 생각에 불과한가 보다.


진중권씨를 진보쪽 인물이면서 자유주의자네 뭐네 하며 비꼬는거 등등은 사실 아무래도 좋다. 도대체 자유주의자가 뭐지? 
그 놈의 주의주의,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ㅠ.ㅜ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자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정체성이 일치했으면 좋겠다.
간통도 불륜도 개인적인 사정이 얽혀있는거라 제3자가 쉽게 단정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매춘, 성매매, 강간범에 대한 경미한 형 구형, 그리고 가깝게는 단란주점 유흥업소 접대가 만연하는 사회에서
깨끗한 이미지를 자처에서 덕 보고 있는 사람들 만큼은,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줬으면 한다.

  
posted by steadyoung
2010. 6. 14. 11:34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소녀시대가 일본진출을 한단다.

딱히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원체 아이돌을 좋아하고, 나이 들면서 이쁜 남자뿐 아니라 이쁜 여자 봐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게끔 변해서ㅡ_ㅡ;;
Gee 때만 해도 흥,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소원을 말해봐 춤추는 거 보고 그래 너네가 짱먹어라 싶었다.
노래랑 춤도 안빠지고 무엇보다!!!! 다른 걸그룹에 비해 평균적으로 월등히 예쁘다!
작년 연말 시상식 때 포미닛 보고 있자니 소녀시대의 우월함을 절실히 느꼈다.
다른 그룹들 보고 있으면 슬픔이 밀려온다. 결국 여자 아이돌은 이뻐야 장땡... 흠.


야후재팬에 일본진출한다고 떴길래 원래 꼼꼼하게 리플들까지 체크하는 한가로운 본인은,
흥! 한류 따위! 촌씨러~ 꺼져~ 하는 악덕 오덕ㅡ_ㅡ;들의 리플에 분개.
월드컵도 관심 없고 평소에 애국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 음,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일본 진출하는 연예인들, 특히 가수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만큼은 남들보다 배배배로 크다. 

내가 성장기를 모닝구와 함께 했기 때문도 그렇지만 -_-;; 유치뽕의 정수를 달렸던 모닝구의 유치뽕은 뭐랄까,
한수접고 국가대표급 퍼포먼스로 인정해줘야할 면이 있고, 무엇보다 고마키나 야구치나 카고 아이나 츠지 같은
애들은 정말 똑소리나게 잘했던 애들이라, 소녀시대랑은 라인이 다르다는 말로 피해가겠는데,
뮤직스테이션 보다가 AKB48 나올 때 빨리감기 하는 건 막을 수 없다. 질보다 양으로. 고고. 박리다매.
아무리 일본 연예계가 얼굴보다 캐릭터를 중시한다고는 해도,  아무나 막 아이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AKB48 같은 경우에는 팬들이 투표를 해서 일등한 애가 센터에 서는 등, 무한경쟁을 도입했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자기들도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겠지만, 그게 노래랑 춤에 반영이 되나?? 
AKB48은 니네가 보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그저 유치하잖아! 뿡뿡.
AKB48같은 애들이 인기 아이돌이라고 티비를 점령하고 있는 너네는 그럼 안촌스럽냐??? 하고
나도 똑같이 유치하게 맞대응하고 싶은 마음이 화르르르륵ㅋ
 

요즘 난립(?)하는 아이돌들을 보고 있으면 경쟁도 이런 경쟁이 없구나 혀를 내두르게 된다.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동경의 눈길로 바라봤던 텔레비전 속 인간들이, 요즘은 조금 불쌍하게 느껴진다.
데뷔한 애들이 나보다 훨씬 어려진 탓도 있겠지만 ㅡ_ㅡ;; (소녀시대가 힐 신고 춤추면 내 허리가 다 아프다-_-;)
작년 연말 시상식 때 아이돌들이 준비한 무대들을 종합하면 콘서트 4~5시간 분은 너끈히 나올꺼다.
어차피 기획사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식상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인들의 노래 외에도
저렇게나 많은 곡들을 연습하고 소화하는게 대단하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할듯.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아이돌 그룹의 퀄리티가 쭈~욱 올라간 느낌이 든다.
못생겨서 안습인 포미닛(요즘엔 좀 많이 이뻐졌드라~)만 해도 사실 노래가 귀에 착착 감겨서 좋아라 들었었고,
샤이니의 종현이는 아이돌이라고 부르기 억울할 만큼 노래를 잘한다. 요즘 매~애직~매~애직 하는 애들도 쌔끈하고~
빅뱅은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완죤 어설프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서 가라가라고 부르는 거 보고 이리 쌈박할수가!
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저 슬픈 건 동방신기가 찢어졌다는 사실 ㅠ.ㅜ

동방신기가 일본에 갓 데뷔했을 때 일본에 있었고, 그 때 아라시 좋다고 한참 난리칠 때 였다.
하지만 동방신기와 아라시 멤버들의 가수로서의 역량을 비교하면 아라시가 훨씬 딸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근데 팝잼에 동방신기가 나왔을 때 어쩜 그리 촌티가 줄줄 나는지 ㅠ.ㅜ 뭔가 일본에서 세련된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부족한거다. 근데 그 다음해 한국에 와서 동방신기 보니까 어쩜 그리 멋있는지.
10월에 아라시가 내한해서 아라시를 부를 때 짱 촌스러웠던걸 보면 각국에서 먹어주는 스타일에는 약간
(이 아니라 많이~) 차이가 나기 마련인 듯 싶다. (하긴 아라시가 일본에서 세련된 스타일로 인기 있는 건 아니다)


그치만 동방신기의 일본어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후 워낙 주저없이(?) 치고 나오는 입담&성격 때문에
인기를 얻으면서(실력은 두말할 필요 없음!) 스타일도 훨씬 세련되어지고,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제부터 인기가 하늘에 치솟겠다! 싶은 순간에 가차없이 찢어지는 센스를 발휘하심 ㅠ.ㅜ
그렇게까지 팬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좋아하는 그룹이었는데, 모처럼 일본에서 잘나가려는 찰나에 찢어진게 아쉽다.
정말 비주얼, 춤, 노래, 예능, 모든 면에서 조곤조곤 따졌을 때 이렇게 완벽한 그룹은 전무후무 하지 않나 싶다.
ㅠ.ㅜ

여튼 소녀시대도 노래랑 춤이랑 예능에서 치고 나오는 건 이미 입증되었으니, 이쁜 얼굴에 스타일만 닛뽕삘로 가면
요즘 변변한 걸그룹이 없는 일본 가요계에 오아시스 되는 거 시간 문제 아니겠느냐+_+
(당근 일본어는 웬만큼 한다는 걸 전제로...... 공부 많이들 했죠~잉?) 

내가 낳은 아이들도 아닌데 일본에서 그 우월한 다리로 춤출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ㅋㅋㅋ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음악 시장은 여러가지 면에서 일본 시장에 못미치는 수준.
일단 가장 부러운 건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장르가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다는 거.
특히 우리가 흔히 J-Rock라고 부르는 일본의 밴드들의 활약은 정말 부럽다.
롹이 대접받는(?) 사회? 느낌이 안온다. 너무 생경해서 ㅡ_ㅡ;
일본도 아이돌은 꾸준히 존재했고, 80년대 같은 경우 아이돌 붐으로 무수한 아이돌 가수들이 양산됐지만, 그 외에도
오리콘 연간 백위 같은 순위권을 살펴보면 꽤 다양한 노래들이 사랑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아이돌이 다수긴 하다).

90년대 중후반에 TK붐에, 비주얼락이라 불리웠던 밴드들의 선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미스치루,
사잔(올스타즈) 같은 밴드들은 훠~얼씬 오래전부터 활동해왔고, 지금만 대면 알 수 있는 밴드들을 빼고서도
꾸준히 활동하는 굵직한 뮤지션들이 많다. 굳이 롹이 아니어도 재즈나, 오키나와 음악;;이나 뭐 등등등등.

일본 사람들이 특히 더 음악을 사랑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역시 나라의 경제력과 잘 다듬어진 개인지향의
소비문화가 낳은 산물인가. 한국 아이돌들의 퀄리티를 (일본과 비교해서)보면 수요가 있는 곳에 물량공세는 물론
질좋은 상품들을 그득그득 생산해내는 능력이 탁월하구만, 이게 왜 롹에서는 안먹히는건지. 궁금하다.

라이브 문화가 잘 자리잡은 것도 부럽고, 노래 잘하는 걸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하는 것도 부럽고, 텔레비전이 
아니고도 활약할 수 있는 곳이(물론 텔레비전이 압도적인 매체긴 하나 한국에 비하면) 존재하는 것도 부럽다.
반면에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좀 답답하고, 별거 아닌 것도 떠받드는게 우습기도 하고
(노래 별 잘하지도 않는구만) 서양과 자국문화만 인정하려는 자세도 꼴보기 싫을 때가 있다(이건 한국도...).

그래도 소녀시대를 야후에서 블로그 검색에 넣고 돌리니까 한국음악을 즐겨듣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깜놀.
예~전에 에쵸티 활동했던 시절에도 야후에 넣고 돌린 적이 있는데(한류 터지기 전), 그 때에 비하면 인터넷도
발달하고 한류의 영향도 있는지 다양한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듣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흐뭇했다.
한국에서 아이돌 일색이라고 비난받을지언정, 노래가 팝송 짜집기 한 거 같을지언정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 어차피 거기서 거기임~) 일본보다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하는 아이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 소녀시대, 화이팅이야~ 동방신기 몫까지 챙겨서 낼름 집어삼키도록해~
  
posted by steadyoung
2010. 5. 20. 11:03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지난 주 토요일 NHK를 틀었더니 <A to Z>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이 하고 있었다. 테마는 '유니크로'로,
한국에서도 영플라자 점을 필두로 점점 점포수가 늘어나는 등,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유니크로의
활발한 해외 진출에 대해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였다.

나도 일본에 있을 때 가끔 이용하곤 했는데
당시에 유니크로란 대중적으로는 '저렴하면서 질 좋은 의류 체인점'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그래도 친구들에게 유니크로에서 산 옷을 막 입고 다니는 걸 들키면 왠지 쪽팔리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저렴하면서 기본적인 아이템, 속옷이나 내복(같은 기능을 갖는 다양한 아이템들) 혹은 민소매나 기본 T 등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졌을 뿐, 패셔녀블, 스타일리쉬- 하는 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요즘에는 워낙 출중한 모델들을 다수 기용, 재기발랄한 디자인과 마케팅 때문에 조금 인식이 달라졌을...지?
는 모르겠다. 일본에 안사니까-_-;


텔레비전을 마침 틀었을 땐 상하이에서의 발전 정도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제 막 중국에 점포가 60개 정도, 해외의 고급 브랜드들이 늘어선 거리에서 당당하게 자리잡은 유니크로의 위상을
보여주고, 유니크로 사장의 인터뷰와 일을 하는 모습들이 교차되면서 진행되었다. 

*이하 야나이 타다시 사장이 유니크로를 일으키기 까지, 출처 위키피디아.

父(柳井等)はファーストリテイリングの前身「小郡商事」を宇部市に創業した人物。1984年まで代表取締役社長を務め、1999年2月に80歳で亡くなった。遺産総額は、当時の税務署公示によると27億1,500万円。

柳井正本人は山口県宇部市中央町生まれ、東京都渋谷区大山町在住。早稲田大学政治経済学部を卒業後、ジャスコ(現在のイオンリテール)に入社したが9ヶ月で退職し、実家の小郡商事に入る。当時小郡商事が展開していた店舗「メンズショップOS」で取り扱っていたのは紳士服などの男性向け衣料が中心であったが、12年経営に携わる間、洋服の青山アオキなどの郊外型紳士服店が業績を拡大したため、後発を避け安価で、日常的なカジュアル衣料の販売店を着想し全国展開を目指した。カジュアルに拘った理由は紳士服(スーツ)のように接客を必要としない、物が良ければ売れるという点が自身の性に合ったためという[2]1984年、父の後を受け小郡商事社長に就任。「ユニークな衣料 (clothes) 」ということで「ユニーク・クロージング・ウエアハウス(Unique Clothing Warehouse、略称ユニ・クロ)」と銘打って同年6月、まず広島市にその第一号店を開店。その後中国地方を中心に店舗を拡大していく。

ユニクロの路線が、徐々に陽の目を見るようになった1991年、社名を「ファーストリテイリング」に変更。2002年、代表取締役会長兼最高経営責任者(CEO)に就任。いったん社長を退くも、2005年には再び社長に復帰。同年、持株会社制への移行を受けて、グループ各社の会長職を兼務している。


유니크로의 철학은 "싼 값에 질 좋은 옷을 제공한다"

ZARA가 유행을 발빠르게 접목시켜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승부한다면,
유니크로는 '베이직한 아이템'을 중심으로 고객들을 불러모은다.
동시에 유니크로가 신경쓰고 있는 것이 '유니크로의 철저한 일본식 서비스'

The Japan Times에서 읽어보는 유니크로에 해외진출에 대한 간략한 정리.
Choice, chic, cheap — no one feels fleeced
http://search.japantimes.co.jp/cgi-bin/nn20091117i1.html


사실, 질좋은 옷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싸게 공급한다는 건 너무 훌륭한 발상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만,
일본식 서비스를 전세계에 침투(?) 시키려는 고분분투는, 사실 쫌 소름끼쳤다.

명동 영플라자에 유니크로에서 옷을 개고있는 점원분들을 보면 여기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가끔 이상한 기분에 젖어든다.
이곳은 한국인데, 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유니크로 매장안의)은 전부 일본이가 싶어 이상야릇한 기분에 드는거다.
음식점이야 그냥 그렇다쳐도, ABC 마트에 갈 때도 그렇고, 그렇고, 그렇고...

야나이 사장은 내년에 대졸 신입사원을 600명 정도 채용할 계획인데, 그 중 절반 가량을 해외인력으로,
그 다음 해에는 1000명 정도인데 절반 이상을 해외인력으로,
그래서 결과적으로 유니크로 사원의 2/3가 해외인력으로 구성되는 걸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좋아요! 글로벌 기업을 향한 굳은 집념과 실천!

그러나.

해외 시장에 진출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 사실인데, 때문에 새롭게 부상한 문제점,
'유니크로 매장은 어딜가나 전부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는 철칙에 철저하게 대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사이즈를 항상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모든 사이즈가 진열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바지들을 진열할 때 옷걸이에 일률적으로 걸려있어야 하는데 그 옷걸이(바지 찝는 옷걸이의 높이와 간격)이 엉망진창이고
신상품은 뒷전으로 밀어두는 등, 얼굴을 찡그리고 상하이 매장을 체크하는 일본 사원의 얼굴을 보고 
아, 역시 일본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해외인력을 일본으로 불러들여서 몇 달 동안 일본식 서비스를 철저하게 가르친 뒤 각국의 매장으로
내보내는 거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사원들은 일본식 마인드로 무장해서 매장을 관리하게 된다.

그 때 오픈을 앞둔 러시아 유니크로 1호점의 오픈 준비 과정이 소개되었는데,
파란 눈에 금발에 코 높은 아가씨가 더듬더듬 일본어로 일본식 서비스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니 뭐랄까...

안습이랄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요건 러시아점 오픈을 알리는 뉴스인데, 여기서 인터뷰에 대답하는 아가씨가 NHK에도 나왔었음)

물론 그런 생각들이, 야나이 사장은 일본 제1의 부호, 난 일개 한국 소시민 or 서민으로 머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으나-_-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한국에 있어주는 건 좋긴 한데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한국식'으로 살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죠.
유니크로도 그냥 없으면 없는대로 다른 옷 입고 잘 살았을거다, 유니크로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처럼.

근데 굳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유니크로를 입고, 유니크로식 서비스를 제공받고, 그러고 살아서 뭔 재미가 있을까.
일본에 갔을 때 구경하는 일본 브랜드로 있어주는게 좀 더 로망있지 않나.


일본에서 국내 경쟁에 급급해서 다 같이 죽는 것 보다
'살아남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거라고 야심차고 똑부러지게 인터뷰에 응하는 야나이 사장을 보면서...
자국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토대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고 있자니
신기하기도 하고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거대한'걸 동경하는 마인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예전에 이어령씨 책을 읽었지만 그 부분에서
졸면서 읽어서 하나도 생각이 안나네 ㅡ_ㅡ;

그래봤자 '저수지 문화'라고 일본식 사고방식은 털끝만큼도 안바꾸고 그대로 굳게 강행하는 걸 보니 찜찜하기도...

난 또 지난 번에 '아픈 여자들에 대한 동경'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뿌리 깊은 거부감과 성공을 향한 강한 열망에 동시에 사로잡혔다. 

 
p.s 발표준비할라고 대충 쨍여쓴건데 나중에 한 번 더 정리해서 소개할께용.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12. 15:25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한반도 유사시 핵 반입' 문서 나와

일본 하토야마 정권이 벌이고 있는 일본판 과거사 진상조사인 '미일 외교밀약' 공개가 미일 갈등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하토야마 정권과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간 외교 마찰이 수숩도 되기도 전에 제 2라운드로 진입하는 양상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11일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때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작전 및 핵 반입과 관련된 밀약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본 외무성 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그간 존재 여부가 논란이 돼 왔던 밀약 문서가 확인 된 것이다. 발견된 문서는 핵 반입을 묵인하는 내용을 담은 '토론 기록' 초안과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작전에 관한 의사록 등 두가지다.

이들 문서는 당시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외상과 더글라스 맥아더 주니어 주일 대사 간 이뤄진 토론 내용으로 추정되고 있다. 맥아더 주니어 대사는 제2차 세계대전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조카다. 의사록은 한반도에서 전쟁 등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미국이 일본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일본 내 기지에서 한반도로 출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의사록에는 "주일 미군이 즉각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본 시설 등의 사용을 허가한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과거 자민당 정권은 외교밀약의 존재를 극구 부인해 왔다.

8.30 총선으로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민주당 정부는 과거 자민당 정권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정치 주도의 정부 운영체제로 이행하는가 하면 관행으로 굳어진 고위 공무원들의 낙하산 인사 철폐, 1차 확정된 내년도 예산안도 공개 심의를 통해 삭감하고 있다.

미일 외교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하토야마는 '대등한 미일 관계'를 내세우며 미일간에 이뤄진 주일 미군 기지 이전계획까지 재검토하자고 나서 미국의 화를 돋우고 있다. 특히 미일 외교밀약은 내용에 따라 일본이 스스로 주권을 포기했다고도 인식될 사안으로, 민주당 정권으로서는 과거 정권의 밀실외교를 까발릴 수 있는 기회다.

하토야마 정권은 출범 직후 핵 밀약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발표했었다. 외무성은 지난달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구성, 외무성에 보관돼 있는 안보 관련 3000건 이상의 문건 등을 뒤지고 있다. 내년 1월 말에는 공약대로 진상조사 겨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그럴 경우 일본 내 여론이 들끓을 것이고,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맞물려 미일 간 관계는 더 꼬일 수있다.

미국 측은 잔뜩 긴장하는 눈치다. 10월 말 일본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 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 "미 일 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길 바란다"고 일본 정부를 간접 압박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는 "미일 관계의 새로운 긴장요인"이라며 "하토야마 정권하에서 미일 동맹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2009년 12월 12일 기사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12. 02:47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本作は、前衛劇団<天井棧敷>を主宰、つねにそのジャンルを越えた「挑発行為」に生涯を燃やし続けたクロスオーバーの旗手であり、現在も尚、多方面に影響を与えている寺山修司が23歳の時分に初めて手掛けた戯曲である。「一本の木にも流れている血がある そこでは血は立ったまま眠っている」という自身の詩から生み出されたこの作品は安保闘争の時代背景を踏まえながらも、若者たちの憤りや葛藤が瑞々しく描かれた秀逸な青春劇である。孤独であるが故に兄弟のように身を寄せ合う若きテロリスト良(森田剛)と灰男(窪塚洋介)をはじめとする魅力的な登場人物の造形、スピーディーな物語展開と、時代を超え、アナーキーで猥雑な力を放つ。 この戯曲に、世界のニナガワと称されながらも常に〝挑戦者〟であり続ける蜷川幸雄が挑む!鮮烈で刺激的なキャストが集結―、疾走が始まる!!

본 작품은 전위극단 <텐죠사지키>의 대표로, 항상 장르를 넘나드는 '도발적 행위'에 일생을 바쳐온 크로스 오버의 기수이자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테라야마 슈지가 스물 세살에  처음으로 쓴 희곡이다. '한 그루의 나무에도 흐르고 있는 피가 있다. 그곳에서 피는 들끓으며 잠들어 있다'라는 자작시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안보투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분노와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뛰어난 청춘극이다. 고독하기에 형제처럼 서로를 끌어안는 젊은 테러리스트 료(모리타 츠요시)와 카이오(쿠보즈카 요스케)를 비롯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조형, 스피디한 스토리 전개와 시대를 뛰어넘는 무질서하고 혼잡한 힘을 방출한다. 이번 희곡에는 세계적인 니나가와로 인정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항상 '도전하는 사람'으로 있기 위해 노력하는 니나가와 유키오가 도전! 선명하고 자극적인 캐스팅이 집결, 질주가 시작된다!


23歳の寺山修司が渾身の力で書き下ろした伝説の処女戯曲に、

蜷川幸雄が挑む!鮮烈なキャストが集結!疾走が始まる―。


23살의 테라야마 슈지가 운신의 힘으로 써내려간 전설의 처녀희곡에
니나가와 유키오가 도전한다! 선명하고 강렬한 캐스팅이 집결! 질주가 시작된다!

前衛劇団<天井棧敷>主宰、ジャンルを越えた「挑発行為」に生涯を燃やし続け、現在も尚、多方面に影響を与える寺山修司。自身の短い詩から生まれた本作は、六十年安保闘争を背景に、社会の底辺に生きる人間たちの爆発しそうな憤りや葛藤が瑞々しく描かれた青春劇である。この戯曲に蜷川幸雄が挑む!
兄弟のように身を寄せ合う若きテロリスト二人。純粋であるがゆえに狂気を感じさせる良役に、蜷川組初参加、近年、得がたい個性を持つ俳優として益々の注目が集まる森田剛。灰男役には、今回が初舞台となり、ワイルドさとナイーブさが舞台上でどのように開花するか期待が高まる、窪塚洋介。良の姉であり詩人の夏美役に、聖と俗の振れ幅が魅力の実力派・寺島しのぶ。また、六平直政をはじめ、三谷昇、金守珍、蘭妖子、大石継太ら舞台に奥行きを与えるベテラン陣。映像での活躍も目覚しい、柄本佑、江口のりこ、丸山智己。伝説のパンクロッカー、遠藤ミチロウが唄うブルースにのせて、圧倒的なノイズを放ちながら物語は疾走を始める!

전위극단 <텐쵸사지키>의 대표, 장르를 넘나드는 '도발적 행위'에 평생을 바쳐온,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테라야마 슈지. 짧은 자작시에서 탄생한 본 작품은, 60년 안보투쟁을 배경으로 사회의 저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폭발할 듯한 분노와 갈등이 생생하게 그려진 청춘극이다. 이 희극에 니나가와 유키오가 도전한다!
형제처럼 서로를 끌어안는 두명의 젊은 테러리스트. 순수하기 때문에 광기가 느껴지는 료 역에 니나가와 그룹에 처음으로 참가하며 최근들어 두드러지는 개성파 배우로서 주목받고 있는 모리타 츠요시가 발탁. 하이오역에는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 와일드함과 예민함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해낼지 기대되는 쿠보즈카 요스케. 료이 누나이자 시인인 나츠미 역에 신성(聖)과 세속(俗)이라는 극단적인 매력을 넘나드는 실력파 배우 테라지마 시노부. 또한  六平直政를 비롯한 三谷昇、金守珍、蘭妖子、大石継太 등, 연극에 힘을 실어줄 베테랑 배우들. 영화와 드라마에서의 활약이 눈부신 柄本佑、江口のりこ、丸山智己. 전설의 펑크록커, 遠藤ミチロウ가 노래하는 블루스와 함께 압도적인 노이즈를 만들어내며 이야기는 질주한다.


競馬場の裏に位置する港町。
転がるドラム缶、どこかから、猫の鳴き声―。
公衆便所の前では、いつも張(遠藤ミチロウ)の悲鳴のようなブルースが響いている。


경마장 뒤편에 위치한 항구도시.

굴러다니는 드럼통,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
공중변소 앞에서는 항상 장(遠藤ミチロウ)의 비명과 같은 블루스가 울려퍼진다.
 
倉庫には自衛隊から盗みをはたらき革命を目論む若いテロリストがふたり住み着いている。良(森田 剛)は尊敬する灰男(窪塚洋介)に何とか認められようと、落書きや窃盗など“破壊活動”に精を出す。殺伐としながらどこか牧歌的なふたりの時間が流れていた。


창고에는 자위대에서 절도를 행하며 혁명을 도모하는 두명의 젊은 테러리스트 살고 있다. 료(모리타 츠요시)는 존경하는 카이오(쿠보즈카 요스케)에게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낙서와 절도 등의 '파괴활동'에 열을 올린다. 살벌하면서도 어딘가 목가적인 둘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寂れた床屋の主人(六平直政)は、仲間の一人、そばかす(柄本佑)がもってきた闇取引の話に加われず、いらだちを隠せない。集まるチンピラや娼婦たち。ペギー(蘭妖子)は張の弟、ドラマーの陳(丸山智己)を誘い、葉っぱ(江口のりこ)はインチキな占いを繰り返し、釘(金守珍)や南小路(冨岡弘)とぐずぐずとした日常をすごしている。


외로운 이발소의 주인(六平直政)는 동료중 한사람인 소바카스(柄本佑)가 갖고온 암거래 이야기에 참여하지 못해 초조함을 숨기지 못한다. 모여드는 양아치들과 창부들. 페키(蘭妖子)는 장의 남동생, 드러머인 진(丸山智己)을 유혹하고, 핫빠(江口のりこ)는 가짜 점성술을 되풀이하며 쿠기(金守珍)와 남소로(冨岡弘)와 마지못해 일상을 영위한다.


詩人の夏美(寺島しのぶ)が現れる。彼女こそは、良が愛してやまない姉だった。灰男と夏美が恋に落ち、それまで平穏だった良と灰男の関係が歪み始める。そこにひとりの男(大石継太)が訪れる。ダイナマイトを見せ、英雄になりたくないか、とテロ活動をふたりに迫る。そしておこる悲劇―。

시인인 나츠미(테라지마 시노부)가 등장. 그녀야말로 료가 너무나 사랑하는 누나였다. 카이오와 나츠미가 사랑에 빠지자 그때까지 평온했던 료와 카이오의 관계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때 한 남자가(大石継太)가 나타난다. 다이너마이트를 보여주며 영웅이 되고 싶지 않는지 묻고 둘에게 테러활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일어나는 비극-



(출처:http://www.bunkamura.co.jp/cocoon/lineup/10_blood/story.html)

이걸 왜 포스팅했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년 1월부터 2월에 걸쳐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한다.
나도 너무너무 가고 싶은데 흠...티켓이 다 팔려서 암표를 구해야할 것 같다.
티켓만 15만원~20만원이다. 즉, 갈수없다. ㅠ.ㅜ
'니나가와'라면 나리미야와 오구리가 나왔던 연극도 맡았었고
무엇보다 꼬맹이였던 후지와라 타츠야를 발굴(?)해낸 아저씨로 알고 있었는데,
뭐 연극계에서 대부취급해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쿠보즈카와 엮일 줄이야.

쿠보즈카의 활동폭이 넓어지는 게 기쁘다.
이를 계기로 드라마에도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오늘 오랜만에 사이트 가보니까 후지테레비를 정면비판하는 글을 퍼와서
보란듯이 올려놓고 있었다 ㅠ.ㅜ 무려 보이콧을 종용하는;;
그런식으로 오지랖 넓은게 또 좋지만,
이로써 드라마와는 영영 멀어지는건가 싶어 최큼 슬프다. 흑흑.

(출처:http://www.manjiline.com/manjiline.html)

뭐 이번 연극은 어쨌든 성공하겠죠-
모리타가 나올줄은 몰랐는데... 니나가와 아저씨도 영리하다.
쟈니즈를 투입할 줄이야.
쿠보즈카는 이로써 나가세, 야먀시타, 타키 등에 이어 쟈니즈와 투탑이구나.
부디부디부디, 크게 성공하기를.

 

posted by steadyoung
2009. 12. 4. 23:47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이번 영화 홍보활동으로 150여사의 신문, 잡지 취재와 90개의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이제 내 얼굴은 지겹다고 생각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취재에 응해왔다. 어떤 질문이든 온 힘을 다해 대답했고, 불러줬으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태도로 버라이어티 방송의 다앙햔 코너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잘 된 적도 그렇지 않은 적도 있지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개봉일에 가까워지자 녹초가 되어버렸다. 방송에서 게닝들과 어울리지 못해 풀이 죽거나, 애드립이 잘 먹히지 않아 자주 자기혐오에 빠졌다.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탤런트인 척 하기는' 하고 경멸한다. 아내는 내가 나오는 텔레비전 방송을 보는 것이 내심 싫은 모양이다. 
개봉일 전날의 일이다. 아침 4시 반에 방송국에 들어가서 생방송'오하스타'에 출연해 교복을 입고 트위스트를 추고 야마짱(야마테라씨)에게 삐꼬삐꼬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뒤, 스튜디오 알타로 이동해서 '와랏떼이이토모'에 출연, 생방송에서 양 털을
깍은 그 날, 결국 난 소멸되었다.
다음날 무대인사 직후에 있었던 방송국 관련 취재에서 멍한 상태로 있어 뭘 말했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한다. 다음날 스포츠 신문 기사에는 웬일인지 마츠다 세이코씨의 따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는 내 멘트가 있었다.
험난한 홍보활동 중,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탤런트 분들과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해서 느낀 것이, 최전선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나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사실. 모두 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총명하며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았다.
유스케 산타마리아씨는 항상 조증기분인 캐릭터로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된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지만(실례되는 말이죠) 실제로 만나보니 매우 지적이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내가 게스트로 갔을 때 더할나위없이 신경을 써주었다.
악동으로 소문난 런던부츠 1호2호 두 사람도 만나보니 의외로 예의바르고 호감 가는 청년들이었다. 상대방을 상처입히지 않으려는 섬세한 배려를 느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카시아 삼마씨는 방송만 보면 실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 화제의 연극을 보기 위해 일부러 브로드웨이까지
간 일에 대해 스텝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영화도 엄청나게 보고 있고. 얼굴에 노력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영화에도 나와준 시미즈 미치코씨. 그녀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내가 힘이 없는 걸 걱정해서(너무 피곤해서 녹초가 되어 있었음) 굳이 괜찮냐는 전화까지 걸어주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있다니! 연예계는 정말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들의 집단이란 말인가. 아니면 어쩌다 보니? 우연히? 적어도 내가 출연했던 방송 현장에는 버라이어티에 목숨을 건 프로들이 모여있었다. 그건, 나와 같은 아마추어가 상대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세계였다. 
이리하여 나의 잠깐 동안의 탤런트 활동은 조용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타니 코키의 '그저 그런 평범한 생활(三谷幸喜のありふれた生活)'이라는 수필집에서 발췌한 것.
미타니 코키는 전에도 한 번 쓴적이 있는데,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드라마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극본을 썼고 2004년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신선조)의 극본을 썼으며
요즘 봉태규씨가 주연을 맡은 연극 '웃음의 대학' 원작영화의 극본+감독을 맡은 극본가+연출가+감독 등등등...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형사가 거짓증언을 하는 범인의 말꼬투리을 잡고 늘어지는게 일품인 드라마로, 꼭 한 번 보시길...

미타니 코키의 이번 수필은 '大河な日日'에 이어서 두번째 읽은 책인데, 실은 요 책이 2001년 말에 먼저 나온 책이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은게 아니라 책을 꺼내 페이지를 펼쳐서 내키는대로 읽느라 때때로 읽지 않은 부분이 튀어나오는데
그럼 어찌나 즐거운지. 
이번에는 '모두의 집'이라는 영화, 연극 '오케피', 드라마 '아이코토바와유우키(구호는 용기)'등을 촬영하면서 겪은 일들을
보면서 혼자 야밤에 낄낄낄 웃고 있다. 아저씨, 대박이예욤! 하면서.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2006년 파이널을 마지막으로 끝나버렸지만, 또 한 번 그런 시리즈물을 써줬으면 좋겠다.
타무라 마사카즈 죽을 때 까지 후루하타 했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요새도 생각한다.

수많은 일화 중 이번 걸 고른 이유는, 게닝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온 몸을 불싸지르는 정열이 좋았기 때문이다.
가끔 영화 촬영하고 홍보 활동하러 나왔을 때 뚱한 사람들을 텔레비전에서 보면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안나오는 사람들보다야 훨 낫다. 나가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도 있는데 나와달라는데 안나오는 사람들은 뭥미??? 배부른가??)
그건 그들이 안웃기기 때문에=못 웃기기 때문에, 라기 보다는 내가 이런 걸 왜 하고 있지, 하는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일테다.
김수로씨처럼 하라는 건 아니지만 ㅡ_ㅡ; 열심히 촬영한 영화를 한 사람이라도 더 봐줬으면 하는 절실한 마음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지 않겠느뇨.

posted by steadyoung
2009. 3. 31. 13:01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일본 우익잡지의 한국 독자들

한승동의 동서행단

“(미국 해군) 제7함대만으로도 미국의 극동에서의 프레즌스(주둔)는 충분하다.”

얼마 전 알쏭달쏭한 이 한마디를 했다가, 그렇다면 주일 미 공군과 해병대는 모두 철수하라고 요구할 참이냐는 반론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자 오자와 이치로 일본 민주당 대표는 나중에 설명을 덧붙였다. “일본의 방위를 될 수 있는 한 일본이 맡게 된다면 미군의 부담은 적어진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제1야당 당수인 오자와는 늦어도 올 초가을쯤 일본의 새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오자와 발언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자위대를 증강해서 (미군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얘긴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회담할 때 강조한 ‘대등’한 미-일 동맹이란 얘기와 같은 맥락에서 한 것인가?” 하고 사설을 통해 물었다.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우파 월간지 <문예춘추>에서 매년 연말연초에 내는 <일본의 논점>이라는 책 2009년판에 일본 보수우익의 단골 브레인 나카니시 데루마사 교토대 대학원 교수의 글이 실렸다. 요지는 미국 일극 패권은 무너졌다는 것, 미국은 침체와 재흥이 20년 주기로 되풀이돼왔다는 것, 따라서 2020년까지 미국은 바닥을 길 것이라는 것, 따라서 세계는 다극화로 갈 것이고 그 한 극을 일본이 차지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적 군사강국이 돼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아직 패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은 준비(‘장기적 전략문화’)가 돼 있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홀로 설 준비가 될 때까지만 미-일 동맹에 기대며 ‘시간 벌기’를 하자는 것이다.

오자와의 생각은 나카니시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민당 주류 역시 그렇다.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일본을 강화해서 동아시아의 영국으로 만들고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의 복사판으로 만들자는 조지프 나이 전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장이 새 주일 미국대사로 내정돼 있고, 최근 동아시아를 순방한 클린턴 국무장관의 행보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일 동맹이 강화되면 주한미군에 종속된 한국군의 지위를 좌우하는 것은 장차 극동에서 미군의 역할을 대폭 떠맡을 일본 자위대가 될지도 모른다. 자위대가 지휘하는 동아시아 미일동맹군의 하위부대로 최전선에서 분단된 동족에 총칼을 겨누는 국군의 미래상은 모골이 송연하지 않은가?

<일본의 논점>엔 일본 극우 식민사관의 대변자로 출세한, 제주도 출신 여성 오선화(53) 다쿠쇼쿠대학 국제학부 교수의 글도 실렸다. 일본의 위험한 우익 민족주의로 향해야 할 비판의 화살을 거꾸로 그 피해자인 한국의 민족주의로 돌려 마구 쏘아댄 이 가련한 여인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까지 들먹이며 ‘반일을 하면 떡고물을 얻을 수 있다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선한 이웃 일본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적반하장식 단호 대처를 권고하고 있다. 오선화의 머리는 전후좌우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문제는 오선화가 아니라 그를 부추기고 박수쳐주는 자민당 수뇌그룹을 비롯한 우익이다. 알량한 선민의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그들이 건재하는 한 동아시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없다. 일본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 우익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문예춘추>의 해외 최대 구독자는 일본어를 해독하는 한국 보수장년층들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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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eadyoung
2009. 3. 25. 18:30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18 : '격차의 상징, 손목시계'

Sent : Sunday, October 17, 2004 11:38 PM

 
 신작 소설의 집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새로운 취재가 필요한 부분에 도달한 듯 하여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9월 말에 하코네에서 돌아왔다. 이번 신작 소설을 포함해 집필할 때 취재가 필요한 부분은 바로 알 수 있다. 모르는 것은 쓸 수 없다는 기본 묘사할 때 본 적이 없는 것은 기술 할 수 없다. 물론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을 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5분 후의 세계'라는 패럴렐 월드를 그린 소설의 무대가 되는 언더그라운드=지하세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에는 터널 채굴현장의 사진과 비디오 등을 참고해서 썼다.
 본 적이 없어서 쓸 수 없는 것으로는 기계·기기 종류가 대표적이다. 또한 그 기계·기기를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의 디테일을 필요로 하는지가 정해진다. 주인공과 가까운 화자가 그 기계·기기를 사용하는 경우와 화자가 만나는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묘사의 디테일이 달라진다.
 신작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아직 끝나지도 않은 소설의 기법을 써서 좋을 것은 없다. 하지만 하코네가 아닌 곳에서도 소설만 생각하고 소설의 취재만 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에세이의 이야깃거리를 찾기가 어렵다. 현재 일본의 유력미디어들이 전하는 뉴스는 대부분 아무래도 좋은 것 뿐이다. 다이에가 재생기구에 맡겨지는데 이제와서 그게 뭐 어쨌냐는 것이다.  다이에와 관련회사의 사원들 말고 이 일에 누가 흥미를 가질까?
 다이에 재생처리의 대체적인 틀이 정해짐에 따라 불량채권문제가 일단은 끝났다고 말하는 유력 미디어들도 많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본디 시장에서 퇴출되야하는 많은 기업의 채무가 은행 장부상에서는 지웠졌을지 모르지만, 해당 기업도 은행도 눈부신 이익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도 아니며 이익을 생산해내는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막연하고 애매한 '경기회복'이라는 주문이 일본 경제를 감싸고 있다. 선행 지표를 보면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전체국민은 좀처럼 실감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경기회복 국면은 이미 30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이익을 고용과 급여에 반영하지 못해 소비에 불이 붙은 것도 아니고 거리의 경기 판단도 저조한 상태 그대로이다. 그리고 이번 '경기회복' 국면에서도 경기란 말의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다. 이 에세이에서 몇 번이나 말하고 있지만 경기라는 것이 대체 어떤 지표를 말하고 있는 건지 확실치 않다. 경기란 일경 평균주가인지, 실업률인지, GDP인지, 일은단관의 기준인지 확실치 못할 뿐 아니라 기존의 유력 미디어들은 그 말에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사업의 삭감, 고속도로 건설 동결, 우체국 민영화은 분명히 제도 상의 개혁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실업과 실직이라는 문제를 수반한다. 합리화란 말이나 해고란 말도 전부 똑같다. 그것은 시스템의 변경보다는 어느 한 가정의 일손이 임금삭감을 당하거나 실직·실업하는 것으로, 그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고 주택 대출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결코 공공사업 추진파가 아니지만 공공사업이 줄어들면 적지 않은 가정이 돈 문제를 겪을 것이 틀림없다는 실정을 기존의 유력 미디어들은 결코 전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금기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여태까지 몇 번이고 써왔던 것 처럼 그 사실을 전달할 문맥을 유력 미디어들이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연봉 300만(엔)의 사람·가정과 800만, 1200만의 사람·가정이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생일 적에는 한 반에 한 두 명의 생활보호 대상자가 있고 은행의 총수와 회사사장의 아이들도 그와 비슷한 한 두명이었으며, 나머지 다른 아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생활수준을 보여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연봉 300만과 800만으로는 세금공제 후의 가처분 소득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격차 금액을 정확히 노린 상품과 서비스가 상당히 많아져서 생활수준의 차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들어 친구들과 똑같은 명품가방과 옷을 사기 위해 호스티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대생들이 있다고 한다. '한 등급 상승'과 같은 광고 카피가 상투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가 세분화되고 있는 만큼 그 기능은 강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외식 부문에서도 프렌치의 아성이 무너지고 이탈리안과 에스닉의 붐이 일어난 것도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한 달에 한 두번 연인끼리 혹은 가족끼리 3만엔에서 5만엔 정도의 식사가 가능한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세뇌가 모든 미디어에서 무자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가령 롯본기힐스와 같은 고급스러운 쇼핑&레스토랑 몰에서 쇼핑과 식사가 가능한지에 대해 미디어들은 연일 묻고 있다. 그러한 고급스러운 소비생활을 지향하는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충실감을 얻을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처분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차이야말로 '멋진 인생'과 동일시된다.


 남성 패션지에서는 고급시계 붐이 계속되고 있다. 스위스, 바젤 등의 시계 도시에는 200개를 넘는 일본의 미디어가 쇄도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시계란 자신의 가처분 소득 및 연봉을 과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아이템이다. 메르세데스와 포르쉐, 페라리의 열쇠를 항상 짤랑짤랑 자랑할 수도 없는 일이고 아르마니나 발렌티노와 같은 명품 또한 택이 겉에 붙어있지도 않다. 루이뷔통과 구찌 지갑쯤이야 누구든지 갖고 있다. 여기서 시계가 격차사회에서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아이템이 된다.
 내가 흥미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버블경제 무렵에도 프랑크 뮬러나 불가리 시계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때는 아직 롤렉스나 오메가가 주류였다. 샴페인은 돈페리였고 꼬냑은 마텔과 까뮤가 주류였으며, 지금처럼 그랑샴페뉴의 인디펜던트를 보는 일도 없었다. 근대화가 끝나고 사회전체에 충만했던 활력이 가라앉고 격차를 동반한 다양성이 명확하게 눈에 보이도록 출현하고 소비문화가 세련되게 변해감에 따라 차이를 보다 노골적으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끌게 된다. 명품 지향 또한 보다 세련되어져 20만(엔)정도부터 2000만(엔)정도의 시계까지 계속 소개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나라의 사회적 격차는 원한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고급 지향의 남성지에 프랑크 뮬러의 시계를 차고 페라리와 포르쉐를 몰며 레스토랑에서 라타슈와 페토류스를 마시는 과시욕의 남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격차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면 그런 남자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사회적 원한은 그런 성공한 인간들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범죄를 낳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보다 비밀스럽게 고급 명품 생활을 즐기게 되고 그들을 노린 상품과 서비스가 한층 더 많이 생겨난다.

 사회에 원한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도 그것이 범죄로 수렴될 동안은 아직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원한에 사회성이 더해질 때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아직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새로운 공포정치와 경찰국가의 막을 올리는 게 될지 아니면 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회의 국제적인 견본이 될지는 이제부터 일본경제가 몰락해가는 정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3. 24. 16:34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파견은 악이 아니다.
규제강화보다 파견을 활용하는 노동자의 보호 강화에 힘써야 한다.

<야시로 나오히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를 개혁할 수 없는 일본

 고용자 전체에서 비정규직 사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면서 2008년 초에는 34%에 이르렀다. 이는 고이즈미 정권하 파견법 규제완화에 의한 것이라는 '상식'이 성립되어 그것이 파견 금지론의 전제가 되었다. 그러나 실은 증가했다고 여겨지는 파견사원은 비정규직 사원 전체의 약 1할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하지하는 아르바이트의 숫자는 1990년대 이후 경제침체가 장기화되어 파견법 규제완하 이전부터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주원인은 기업이 다수의 정사원을 고용할 수 없게 된 점에 있다.
 서구처럼 불황 때 일시해고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없는 일본에서는 과잉된 고용을 대졸신입자의 채용 억제와 정년 퇴직 및 명예퇴직을 장려하는 것에 의존하면서 시간을 들여 조정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부족한 인원을 고용 조정이 용이한 비정규직 사원으로 보충하는 것이 우선된다. 과거 4~5퍼센트의 높은 경제성장 아래 성립되었던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의 노동 관행을 장기침체기에도 개혁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사원을 증가시키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있다.
 기업이 보다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저임금인 비정규직 사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고임금이어도 그 이상으로 생산성이 높다면 정사원을 고용하는 편이 기업에게는 득이 된다. 일본 기업의 문제는 경기후퇴로 생산량이 감소했을 때에도 정사원의 고용과 임금 모두가 경직적인 상태에 놓여있고 인건비 조정의 여지가 작은 부분이다. 현재 경기침체의 장기화에 의한 과잉 고용으로 노동분배율은 1990년의 66.4퍼센트에서 2001년 74.2퍼센트로 일제히 증가했다. 이것이 정사원의 비율저하를 포함한 고용 조정의 진전으로, 분배율은 2006년에 이르러 70.5%까지 서서히 저하했다.

-자유로운 근무 방식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지금의 일용직 파견 금지를 원하는 여론의 배경에는 ①이중파견 등 직업 안정법과 파견법의 위반, ②구속시간 중의 임금 미지불 등의 노동기준법 위반, ③파견처에서의 노동재해, ④파견 사업자의 높은 수수료, ⑤일용직으로 밖에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노동자의 생활 보장 등 다양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①~③까지의 문제는 현행 법률 위반의 방치에서 발생한 것으로 노동행정의 태만에 가깝다. 노동자를 보호해야만 하는 노동기준 감독서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지만 지방의 공공 직업안정소에서는 2만 2천명이나 되는 국가공무원이 창구서비스를 행하고 있다. 이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옮기고 민간 개방을 실시하는 것에는 대한 반대가 거세지만 노동 행정 전체의 집중과 선택의 관점에서는 이들 인원에게 노동기준 감독업무를 이전시키는 것을 진행해야 한다.
 또한 ④의 의견으로 대표적인 것이 파견을 금지하여 파견처 회사(파견을 부탁해 고용한 회사)가 직접 고용을 한다면 파견회사의 수수료 만큼 임금이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런 고전적인 '착취론'은 파견처 회사가 왜 파견회사에게 지불하는 수수료 만큼을 제외한 낮은 임금으로 자체적인 고용을 행하지 않는 가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단기간의 고용에서는 자체 모집과 채용 및 급여지불을 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 비용만큼 파견회사에게 외주해왔다고 생각했을 경우, 직접 고용으로 임금이 상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오히려 비용 증가로 고용기회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⑤의 일용직 파견 노동자의 생활보장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파견 금지 후 평범한 일용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월급날까지 생활자금의 단기융자를 공적으로 지원하는 등의 복지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단순한 금지로는 문제를 덮어 숨기는 데 급급할 뿐이다.
 파견 노동자가 조직할 수 있는 가장 큰 조합인 인재 서비스 제네럴 유니온의 조사로는 일용직을 포함해 자유로운 파견근무 방식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람도 많아, 파견을 '나쁜 방식'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파견 노동자의 입장에서 명확한 반대를 하고 있다.
 애당초 현행 파견법에서도 노동자의 안전상, 항만과 건설업무의 파견은 금지되어 있다. 미숙련된 단기노동자의 파견에 대해서는 금지해야만 하는 업종을 더욱 추가하는 규제 강화로 파견 노동자의 정보부족을 보충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으로 보인다.다른 곳에서 일용직 파견 자체에 문제가 크다고 해서 30일 이내의 단기파견을 전부 금지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것은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이익을 저해한다. 예를들어 거리에서 전단지 배포 등 단순 업무지만 안정성에 문제가 없는 업무를 왜 금지하는가를 명확하게 표시할 필요가 있다.

-기간제한 철폐는 파견 노동자에게 있어 부담만 줄 뿐이다
 
 일용직 파견 금지는 파견업 전체의 규제강화를 향한 제 1보가 되는 위험성을 숨기고 있다. 파견사원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차이점을 들자면 파견처 기업의 고용책임의 유무이지만, 이것은 미국처런럼 파견처 기업에도 재해자에 대서 책임을 부과하는 것과 같이 파견원으로서의 공동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또한 위법 파견을 행한 파견 사업자에게는 파견 사원이 실업할 가능성이 큰 업무정지처분 뿐만 아니라 위반의 정도에 따른 벌금을 징수하는 것으로 억제효과를 높일 수 있다.
 애당초 현행의 파견 노동자 실태는 '파견사업자 규제법'이기 때문에 이를 '파견노동자 보호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실질적인 파견기간 제한 철폐를 살펴보자. 현행법에서는 파견사원이 동일한 파견처에서 3년 이상 근무할 경우에는 직접고용의 제안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파견노동자 자체가 단기간 일하는 방식으로 용인되었다는 법제 정시의 경위와 불안정한 방식이 장기화 될 경우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가부장적인 배려가 있다. 그러나 파견처의 기업으로서 직접고용하고 싶다면 의무화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것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 3년 이내로 파견계약을 끊을 수 밖에 없다. 덧붙여서 이 고용제안의무는 파견회사의 정사원(상용형 파견)에게도 적용된다.
 이것은 정작 중요한 파견 노동자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규제이다. 원래 구속성이 높은 정사원의 방식을 피해 파견사원을 선택한 경우는 물론, 동일한 기업에 오래 근무하는 것으로 인해 그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숙련기술을 습득해 정사원이 되기 쉬운 가능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견기간 제한은 현행 파견법에서는 고용보장과 연공서열의 '좋은 방식'인 정사원이 '나쁜 방식'의 파견사원으로 대체될 것을 막기 위한 것이 하나의 커다란 기둥이 되어왔다. 이 '상용 대체 저지'는 파견노동자의 고용안정의 시점에서는 양립될 수 없는 면이 크다.

-정사원과 파견사원의 공존에 의해 생산성을 높인다

 
또한 파견노동자를 위해 좋은 파견회사를 육성하려는 태도도 중요하다. 파견 노동에는 미숙련된 아르바이트생이 기술을 습득해 정사원이 되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이 있다. 이 때문에 파견회사의 사원을 파견처가 정사원으로서 채용할 경우에는 '소개료'로 그 교육비용의 일부를 회수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을 제도화하여 질 높은 파견회사의 육성을 도모할 수 있다. 
 파견노동은 사용자측이 파견노동 규제완화를 원하고 노동자측이 규제강화를 원하는 노사대립의 문제로 파악하기 쉽지만, 오히려 고용과 연공서열제도가 보장된 정사원과 약한 입장의 파견사원과의 '노(勞)노(勞)대립'의 면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앞으로의 저성장 상황에서는 과거의 고성장기와 같은 연공서열제도를 전제로 하여 비정규직 사원의 임금을 거기에 맞춰야한다거나, 1700만명의 비정규직 사원을 전원 정사원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비정규직 사원를 위한 교육, 훈련으로 생산성을 높여 임금을 올리기 위한 정책과 정사원의 연공서열제도 시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파견사원에게 일반적인 일을 시키고 정사원은 기업내의 숙련도을 살린 일을 특화하는 것으로 생산성과 임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양자의 대립이 아닌 공존의 방식을 구축해갈 필요가 있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3. 24. 10:13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23 : '희생과 지배'

Sent : Sunday, March 13, 2005 0:19 AM

 다음 주에는 신간의 견본이 완성될 예정이다. 이 원고가 활자가 될 무렵에는 신작소설 '반도에서 나가라'가 분명히 서점에 놓여있을 것이다. 후쿠오카 시의 위성사진 위에 원색 독개구리가 붙어있는 충격적인 디자인을 지닌 책으로, 이번 처럼 안절부절 못한 상태로 견본을 기다리는 것은 처음이다.
 다양한 방면의 일에 대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만 책이 완성될 때 까지 침착하게 있지 못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반도에서 나가라'는 여러 사실들이 겹쳐진 근미래소설이기 때문에 집필 할 때에 새로운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가 몇 개나 떠올랐다. 새로운 소설의 아이디어를 에세이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소설 뿐만 아니라 '13세의 할로워크'와 같은 그림책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그 중 하나가 취직에 관한 기획이다. 최근 10년 간 학생들의 취직상황은 보면 볼수록 이상하기 때문이다.

  의학부와 약학부 등의 일부 학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은 입시와 부모의 감시에서 겨우 벗어나  1,2학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노는데 보내고 3학년이 되면 취직활동에만 열중하여 통합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취직의 단어 그대로의 의미는 직업을 갖는다는 말이지만, 지금은 입사와 동의어가 되버렸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가를 알게 된 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해 암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1년 반에 달하는 학생들의 취직활동이 능력의 향상과 사회적 체험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측에서도 확고한 채용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대학의 브랜드력도 발휘되지 않는다. 일본의 대학은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만 나오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는 근대화 도상형의 구조가 뿌리깊게 남아있기 때문에, 가령 와세다의 정경학부를 나왔다고 해도 성적표를 보고 어느 정도의 지식과 스킬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기업측에서는 불가능하다.
 
 착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나는 지금의 대학교육과 취직상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히 굉장히 비합리적인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질려 아무도 그 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위기감을 갖고 있을 뿐이다. 수 십만명의 일본 학생들이 18개월 가량을 쓸모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거기서 배우는 것이라고는 눈 앞에 있는 현실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다. 아르바이트와 파견, 비정규직과 같은 새로운 고용형태가 이미 정착되고 중도채용도 늘어났지만 대졸신입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 회사의 절대수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경향이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거품경제 이후의 경제정책에서 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연쇄도산 등의 구조적 위기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은행에 거액의 공적자금이 주입되자 심상치 않은 저금리가 계속되며 시장에서 사라져야 할 쇠퇴기업들이 연명하게 되었다. 중년 남성들의 해고가 주목을 끌었으나 15세에서 24세까지의 약년층의 실업률은 지금도 유별나게 높다. 즉 해고는 주목을 끌지만 신규채용의 감소와 중지는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무력한 젊은이들을 희생시켜도 그것은 그리 주목을 끌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저항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정치적으로 굉장히 약한 입장에 놓여있으므로 희생양으로 삼기 수월한 것이다. 착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나는 젊은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저 불공정한 것이 싫을 뿐이다.
 사람들은 1980년대 미국에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자동차 산업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우수한 젊은이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IT혁명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미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자동차 산업을 연명시켰다면 지금쯤 빌게이츠는 공장에서 트럭을 조립하고 있을 것이라는 알기 쉬운 농담도 던진다.
 
 일본은 기존의 대형은행과 대기업을 구제하여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방향에서 거품경제 이후의 상화을 극복하려 했다. 물론 은행을 비롯해 금융계에서 합병 및 흡수가 연달아 발생하고 은행 수도 줄어들었으며 해고정책도 감행되는 변모를 보였어나 구조와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때 창업 열풍이 불어 벤쳐기업도 다수 생겨났지만 이들 대부분이 희생양이 되자 입장이 약해진 젊은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강한 안정을 원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과 젊은이를 둘러싼 환경은 이전보다 더욱 그들을 숨막히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더욱 폐쇄적으로 변한 이 사회에서 라이브도어의 일본방송에 대한 적대적 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나는 라이브도어, 라쿠텐(낙천) 그리고 야후 등의 소위 IT기업의 생존자들이 쇠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야구를 이용해 자기선전을 하려 했던 점에 크게 실망했다. 나쁘게 말하자면 애당초 그들은 획기적이고 독자적인 기술과 비지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높은 이익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방법을 기본으로 해서 IT버블을 잘 견뎌낸 생존자들이다. 거기서 얻은 풍부한 자금으로 금융게임을 해서 자신의 잇속을 불렸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니다. 그저 그런 방법론으로 가능한 일은 한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성 가치와 기득권 계층에는 끼어들기 쉽지만 폐색적인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지금 현재 그들에게 가능한 것이라고는 자금을 모으는 것 뿐, 새로운 가치와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야후는 후쿠오카 돔의 명칭을 야후돔으로 바꿨다. 야후는 후쿠오카 쯤이야 어찌되든 상관할 바 없는 것이다. 그 옛날 다나카 히데토시가 재적했던 세리에A의 페루자에 위치한 스터디움에는 레나토 크리라는 애칭이 붙어있다. 레나토 크리는 페루자에 몇 번이고 승리를 안겨다 주고 시합 중에 사고로 죽은 축구선수의 이름이다. 만약 페루자의 스폰서 기업이 스터디움의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면 서포터들은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신흥IT기업이 AM라디오의 경영권을 쥔다고 해서 과연 무엇이 바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만약에 라이브도어가 슈에이샤를 매수하여 '소년점프' 만을 남기고 다른 부분을 전부 팔아서 주가를 올려 이익을 얻는 방식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일본방송의 경영권을 쥐는 것으로 기성의 유력 미디어의 구태의연한 문맥과 방향성에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착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나는 라이브도어의 적대적 매수를 비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야심찬 젊은 실업가로서는 할 법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황한 일본방송과 후지텔레비전의 간부들 쪽이 훨씬 보기 흉하고 꼴 사납다. 
 라이브도어 사장이 '지배'란 말을 사용하자 유력 미디어들은 그 말에 과잉반응했다. 하지만 경영권을 쥔 것 만으로 방송 콘텐츠를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스폰서들이 잠자코 있을리 없으며 프로듀서를 비롯해 현장의 우수한 제작 스텝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소속기업에 종속해 상사에게 지배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라이브도어에게 지배받는 일이 일어나면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유력 미디어들은 일방적으로 단정했다. 하지만 경영자가 이전의 나치스와 구소련 처럼 미디어를 지배하에 두고 원하는대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경영자는 회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manage'해서 이익을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연일 미디어가 소동을 부리는 것에 비해 라이브도어 사장이 쓴 서적들의 판매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방관자처럼 사태를 바라보고 있을 뿐 사실은 그다지 흥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3. 20. 17:46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일본의 논점 2009 - 고용과 노동>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저임금 노동을 조달할 수 있는 파견제도,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카마타 다카시>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노동자 파견법

 2008년 6월에 아키하바라에서 무차별 살상사건을 일으킨 카토 토모히로 용의자가 도요타계열 자동차 조립공장에 파견노동자로서 파견되었던 사실과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가벼움'을 핸드폰 사이트에서 호소했었던 일이 보도되자 후쿠다 수상과 마스조에 후생노동성 대신이 위기감과 함께 파견제도에 대해 언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2년 전인 1986년 '노동자 파견법'이 실시되었을 때는 이와 같이 비참한 범죄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노동자고용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충분히 예상이 할 수 있었다. 전후(戰後)에 제정된 '직업안정법'의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새로운 법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직업안정법 제44조에는 '몇 명의 - 노동자 공급사업을 행하는 또는 그 노동자 공급사업을 행하는 자로부터 공급되는 노동자를 자신들의 지휘명령 아래 노동시켜서는 안된다'고 정해져 있어 노동자를 모집하는 경우에도 '재물 혹은 이익을 얻어서는 안되'었다.
 이 법적 규제는 항만노동자의 모집과 공급에서 출발한 야마구치 조직 등의 유력자(노동보스)가 행하는 폭력지배와 이익 갈취의 악폐를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노동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관계 조정법 등과 함께 직업안정법를 제정한 이유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GHQ에의 민주화정책에 의해 드디어 일본에서도 노동자의 인권이 경영자의 인권과 대등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노동자파견법'이 제정되기 2년 전인 84년 11월, 중앙직업안정심의회가 정리한 '노동자파견사업문제에 대한 입법화의 구상' 에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쓰여져 있다.
 최근들어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를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에 의해 '전문적인 지식, 기술, 경험 등'을 활용하는 직업군이 증가하여 자신이 고용할 노동자를 다른 기업에 파견해 거기에 취업시키는 형태의 사업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관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
 이 때 '파견'이란 '전문적인 기술, 경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 지금과 같은 생산 현장과 서비스업에 파견된 미숙련, 단순 중노동의 노동자군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급격하게 진전하는 컴퓨터 리제션를 위한 대응책이었다.

-'좌천'에 가까운 '파견'이 이윽고 '편도티켓'으로

  그러나 직업안정법에 구멍을 내기 위해 '전문적, 경험'이란 문구를 이용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다.
 1952년 직업안정법 44조를 피해 철망업을 중심으로 노동현장에 사원이 아닌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서 실행규칙을 개악했다. '전문적인 지식, 경험'의 문구를 삽입하여 그것을 방패로 육체노동자도 인정하기로 한, 일종의 돌파구였다.
 이로 인해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만 그 종류를 헤아려보아도 철망, 조선, 탄광, 시멘트, 유리공장 등의 중화학 공업 현장에 '인부공급업체' 로 부터 '전문적인 지식, 경험'을 일절 갖고 있지 않은 대량의 하청업자, 미숙련, 불안정 노동자가 공급되었다. 그 때 까지는 회사내에 기계, 설비, 기재를 가진 하청업체의 사원만이 모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노동자 파견법이 제정되기까지 '파견'이란 '좌천'과 같은 기업의 '감량' '해고'책으로, 적은 회사에 두고 일정기간 동안 자회사나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뜻했다. 돌아올 수 있는 경우에는 '왕복티켓'으로 불렸지만 얼마 안가 '편도티켓'이 되어버렸다. 그 무렵 프로그래머 등을 고용했던 전기노동연합에는 파견된 채 장기간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자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로부터 급료가 지불되자 놀라서 회사에 가보니 원래 회사가 없어졌더라는 불만이 제기되었고, 전기노동연합은 방만한 파견을 규제하는 법률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노동자파견법에 찬성했다고 한다.
 그래도 당시의 '파견자'에게 원래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주차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종류의 불만은 있었다고는 해도 카토 용의자가 고통받았던 것 처럼 갑자기 '고용정지'라는 명으로 해고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금과 같이 극단적인 워킹푸어가 대량발생할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파견은 부품화된 '인간간판방식(필요한 때 필요한 부품만 확보하는 경영방식, Just In Time)'
 
  나는 1984년에 '컴퓨터와 노동보스', 1985년에 '사람굴리기 악덕업자의 부활'이란 제목을 가진 글에서 이 법안에 반대했지만 당시에 함께 반대했던 이들은 항구에서 노동보스의 지배와 싸워온 전항만과 토건노조 등 소수에 불과했다. 미국의 항만노동자에 대한 폭력지배와 저항은 엘리아 카잔 감독의 '워터프론트'로 알려져있으나 일본의 야쿠자 영화에서는 '조직'에 지배당하는 노동자의 저항을 그린 영화가 전무하다.
 동경의 야마타니, 오사카의 카마가사키 등 노동자의 '집합장소'에서는 폭력단의 노동자공급과 폭력지배, 나아가 살인까지도 드문 것이 아니었다. 야마타니에서는 그 실태를 촬영했던 기록영화감독이 두명 연속 살해당했다. 이와 같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노동자 파견법은 '처음에는 일단 살짝만 건드리는 방식'으로 본래의 프로그래머 등의 소프트노동을 중심으로 번역, 통역 등 건드려도 별다른 탈이 없는 13업종을 중심으로 출발했다.
 노동자 파견법의 문장이 '해당타인에 대해 해당노동자를 해당타인에게 고용시키는 것을 약속함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제2조) 와 같이 새삼 문장을 난해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작성자가 노동자 파견법에 대해 떳떳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해에 소규모의 수정이 이루어지고 1999년도에는 제조업 등의 파견 금지 업종을 지정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대상업무의 자유화를 일제히 단행했다.
 나아가 2004년 저항이 심했던 제조업도 해금하여 파견법의 확대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2007년에는 파견기간을 일년으로 인정하고 그 후에는 정사원으로 채용해야하는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정을 3년으로 연장, 노동자 보호는 아랑곳하지 않는, 말그대로  경영자를 위한 '카미카제'가 되었다.
'19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제정 당초에 제가 구상했던 노동자 파견법이 대부분 실현되어, 완성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제조업 적용이 해금된 2004년 일본인재 파견협회의 축사교환회에서 파견법의 부모격인 다카나시 아키라 신슈대학 명예교수의 인삿말이다. 1995년의 제정에서 19년의 기간에 걸친 포복전진이었다.
 '1999년, 2004년 두 번에 걸쳐 노동자 파견법이 대폭적으로 개정됨에 따라 대부분의 업무에 파견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스텝을 필요한 기간 동안 고용하는 기업의 요청에 응해 파견을 하여 그 파견장소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인재파견 시스템입니다' 라고도 말하고 있다(편저 '인재파견의 활용').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만 라인 사이드에 정확히 도착시키는 이상적인 시스템' 은 바로 도요타 자동차가 전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도요타 생산방식(간판방식)이다. 파견노동자란 부품화된 '인간간판방식'인 셈이다.

-인간을 상품화해서 이득을 챙기는 장사는 비도덕적이다

 노동자 파견업은 에도시대의 반즈이인쵸베에 이래의 '직업 알선업'으로 근대적인 컴퓨터에 의해 노동력을 대여하는 방식이지만 노동자수 350만 명 이상의 매상 5000억원의 기업도 출현하는 등, 업계 전체로 따지면 5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 중 하나인 '크리스탈'에는 한 때 13만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속해 있었지만 위장청부 등을 이유로 업무정지처분을 받았다. 크리스탈을 매수하여 떠맡은 '굿윌'도 또한 이중파견이 금지되있던 항만노동 위법파견이 드러나 역시 업무정지처분을 받아 폐업했다. 이와 같은 위법행위가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것은 인간을 상품화해서 이득을 챙기는 상업 자체가 비도덕적인 '악덕한 영예'이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2007년 노동재해에 의한 사상자가 13만1478명, 이 중 파견노동자는 5885명(그 중 사망자 36명)을 점유하고 그 중 제조업 파견자는 2703명으로 약 절반 가량이다.
 앞으로는 하루만 사용하고 버리는 자유로운 '일용직' 등록파견(스포트 파견)이 중지된다. 일단은 전문 업무에 한정(99년 자유화 이전으로 하는)하는 상용형 파견으로 한정하고 이후에 임금 인상과 이익 갈취 금지, 나아가 노동자 보호를 위해 공명하고 공정하며 소개료를 무료로 하는 방식으로 되돌려야 한다.
 다양한 고용 혹은 파견업이 없어지면 암시장이 만연화 된다는 파견제도 유지파의 변명은 애시당초 저비용을 목표로 한 노동의 빅뱅이었다. 자사의 고용을 억제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원할 때 원하는 만큼만 시장에서 조달하고자 하는 수법은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이미 노동력의 재생산이 불가능해졌을 정도로 소비가 하락하고 있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기업은 일종의 공해기업이라 할 수 있다.



① はじめちょろちょろ なかぱっぱ 赤子泣いてもふた取るな
  
   아궁이에 밥을 할 때 불을 조절하는 방법을 나타낸 노래라 할 수 있다.

 はじめちょろちょろ →약한 불로 서서히 익히는 것을 말하며 쌀에 물을 잔뜩 흡수시킨다.
 なかぱっぱ    →강한 불로 쌀이 고루 열을 받아 잘 익도록 한다.
 赤子泣いてもふた取るな → 한 번 더 약한 불로 쌀의 필요없는 수분을 날린다.
 
   →본문에서는 はじめちょろちょろ를 '처음에는 일단 살짝만 건드리는 방식'으로 번역했고
                      なかぱっぱ 를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라고 번역했다.

     좀 더 매끄럽고 뜻을 명료하게 전달해주는 그런 단어는 없을까요?@@

② 幡随院長兵衛 ばんずいいん・ちょうべえ 
   元和8年(1622年)~明暦3年7月18日(1657年8月27日)

   에도 시대 전기의 협객, 자세한 이력은 명확하지 않다.
   다이묘 및 하타모토(에도시대 쇼군 직속으로 만 석 이하의 녹봉을 받던 무사)에게 하인을 알선하는 일을 했다고 추정된
   다. 실화로는 1657년 7월 18일에 반즈이인쵸베라고 하는 죄수가 하타모토 미즈노 나리유키와 말다툼이 일어나 무례함을 이
   유로 참살당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이것이 하타모토와 협객의 항쟁 사건으로서 연극과 강연에서 다뤄져 유명해졌다.
   (에도시대 후기에 그려진 반즈이인쵸베의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다음 시간에는 파견직에 찬성하는 사람의 의견을 알아보겠습니다~!!

posted by stead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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