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teadyoung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09. 12. 1. 03:19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바로 포스팅을 하면 꽤 흥분할 것 같았는데,
어제 올린 엔돌핀 공급용 재범 영상과 친구가 보내준 2PM '프롸이데이나잇'을 보고 또다른 흥분으로 그 흥분을 잠재웠다.

남동생과 나는 다섯살 차이로, 그 옛날 동생이 너무 어려서 내가 힘으로도 우세했을 시절에는
이불에 동생을 돌돌 말아 위에서 울 때 까지 누르거나
새햐얀 동생 손목을 꼭 한 번 있는 힘껏 깨물어보고 싶어서 네번 참고 한 번 깨물어서 울리는 등 동생을 어여쁘게 괴롭혔었다.
남매로서 평소에는 잘 싸우며 지내다가 꼭 한 번 대동단결하는 날이 있는데
바로 동생이 어디 가서 놀림받고 들어올 때.
 
동생이 비교적 순한 편이라 어렸을 때 여자애들에게 꼬집히고 울고 들어오고 그랬다.
동생이 초등학생 때 학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 받고 울고 들어왔길래 쫓아가서 고래고래 악을 쓰고 몇 마디 해서
그 아이들을 되려 울리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언 10년의 시간이 흘러, 
주변에 폐를 끼치고 동생을 부끄럽게 만들 누나 고유의 기질을 발휘할 때가 왔나 싶은 사건이 발생했다.

요새 어디다 살림을 차렸는지 집에 전혀 안들어오는 동생이 매일매일 즐겁게 출근하는 곳이 바로 일한지 일년 넘은 모 음식점.
엄마가 쟨 니 말만 듣는다고 했던 시절도 가고 그렇게 군대 가라고 가라고 노래를 불러도 듣지도 않으면서
즐겁게 서빙일을 하고 음식점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해서 내심 흐뭇하게 지켜봤다.

근데 방금 들어와서 하는 말이, 얼마 전에 주방 사람에게 맞았다는 거다.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홀과 주방이 나눠져있는데(동생은 홀서빙을 하고 있음)
주방 사람이 동생이 자기 욕을 한 걸 들었다고 열 대가 넘게 뺨을 때렸단다. 홧김에 옆에 있던 식칼을 들고 휙휙 휘둘렀다고도.

첫째, 뺨을 열대 넘게 맞으면 아플 것이고, 
둘째, 동생이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점 사람들은 열대 맞을 동안 뭐하고 있던건지 궁금하며.
셋째, 식칼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고
넷째, 매니저는 일련의 사건을 보고 둘이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했단다.
그리고 다섯째, 동생은 욕을 하지 않아서 그 주방 사람이 오해한 걸 듣고 그걸 풀러 주방에 들어가서 맞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년전에 동생이 실수했다고 주방사람에게 걸쭉하게 쌍시옷 욕을 들었다길래
뭐 그런 *&^%$이 있냐고 맹렬하게 화를 냈던 기억이 나서, 혹시 그 때 그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허걱.

그리고 동생은 너무 기분이 나쁘니 사과를 받아야겠는데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사과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된다고 한다.

일단 일방적 피해자인 점, 또 흥분한 그 놈이 자기한테 대들면 흥분해서 정말 칼을 휘둘렀을지도 모르니
같이 주먹다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뭐라 세게 화를 내지도 못하고 누나에게 끙끙대며 털어놓는 동생을 보니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프다.   

사실 머릿 속으로는, 
내가 건장한 덩치의 늠름한 형으로 변신해서 동생이 맞은 것 보다 훨씬 가혹하게 조낸 패주거나
법조계 입문을 눈앞에 둔 친구의 조언을 받아 경찰에 꼬질러서 조서를 쓰게 하거나
본사에 전화해서 매니저와 점장까지 들쑤셔서 그 놈을 결국 일을 그만두게 하는 등,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친 뒤 '아냐 아냐 휴~' 하며 마음을 고쳐먹는 전개가 펼쳐졌지만,

그래도 참았으니 일단 장하다고 해야할지 그걸 참고 있냐 이 멍청아 하고 화를 내야할지 갈팡질팡 어지럽다.
흑흑, 누나가 이렇게 화끈하지 못하니 동생이 그런거야 미안해 흑흑흑, 하는 신파적인 상황도 연출 가능했다.

일년 전 욕을 들었다고 했을 때는 결국 '그런 곳 때려쳐!!', 식으로 화를 내며 무력하게 참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추이를 지켜볼 생각이다.
동생이 나대는 누나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일이 커지기 전에 무사히 사과를 받으면 좋을텐데.
(나도 흥분하면 나중에 쥐구멍을 파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짓을 서슴없이 해서ㅠ.ㅜ
캄다운! 캄다운 ;;; 흥분하지 않도록 계속 마음의 끈을 잘 잡고 있어야겠다)

물론 일이 커지길 바라진 않지만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인내를 강요당하는 것 만큼은
동생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당한 폭력에 정당하게 맞서는 방법을 동생이 터득하도록
조금 귀찮고 힘들다고 해도 같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다.
참는 것은 같이 때리는 것 만큼이나 현명하지 않은 방법이고,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동생이 그런 것에 대해
조용하지만 굳세게 맞서는 인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

동생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음식점에서 군대 가기 전까지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이번 사건이 원만하게, 그리고 제대로 수습되었으면 좋겠다.

다시금 이 일에 대해 포스팅을 할 때는, 잘 수습되었다는 내용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에 동생만으로 잘 안되서 내가 나대기 시작하면, 앞으로 동생이 결혼해서 나만한 자식을 낳고 살게 되도 
부모가 자식 못놓듯 끊임없이 참견하고 간섭하고 걱정하게 될 것 같다 ㅠ.ㅜ)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