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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4. 00:38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정약용의 보리타작을 살펴봅시다.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응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티끌뿐이로다.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그리고 이상의 권태.

(중략)
그들의 일생이 또한 이 벌판처럼 단조한 권태 일색으로 도포된 것이리라.
일할 때는 초록 벌판처럼 더워서 숨이 칵칵 막히게 싱거울 것이요,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겨울 황원처럼 거칠고 구주레하고 싱거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흥분이 없다. (중략)
그들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정약용과 이상의 공통점을 굳이! 굳이! 뽑아보자면 
'시대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온 엘리트' 정도가 되겠다.
건축과 관계된 일을 해봤다는 점도 추가하자면 굳이 추가할 수 있겠다.

자기가 살던 시대에서 쉬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곱게 늙어갈 수 있었는데
카톨릭을 믿어서 탄핵을 당하고, 유배와 사직을 밥먹듯이 당해도 정조의 아낌없는
사랑속에 다양한(?) 직책을 경험했으며, 
기나긴 유배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참 많은 일을 하다 죽은 정약용과,

건축이라는 실용적인 일을 하다가 결핵이라는 당시의 불치병에 걸려 요양을 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의 세계에 뛰어들어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요절하고만 이상은

굳이 꼽아보자면 비슷한 점 몇 개 찾을 수 있으나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만큼 다른 인생을 걸어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근데 어느 날 언어영역을 다시 보며 재밌다고 느낀게, 바로 저 두 지문.

맛있게 밥 먹고 흥겹게 노래부르며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을 보며
저들이 참 즐겁게 생을 살고 있구나, 낙원이 멀리 있는게 아니구나,
내가 왜 그깟 벼슬자리에 맘을 흔들려했을까 반성하는 정약용의 모습은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
그가 주장한 많은 실학사상과 농민을 위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참으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아름다운 글이었다.

반면 이름도 작품도 포스 작렬하는 이상.
'날개'를 보면 이 사람 제 정신 아니구나, 
'오감도'를 보면 이 사람 역시 제 정신 아니구나.
거기에 나오는 아해들 얼굴이 마치 몽달귀신 같이 생겼을 것 같아서
야밤에 곱씹어보니 쫘악 닭살이 돋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거울' 이런거 보면 측은한 생각도 들고, 공감도 하는데
'권태'를 자세히 읽어보니 흔한 말로 '깼다' '대략 난감'했다.

그야 이상이 농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바랬다면 당근 거짓말일만큼
이상에 대해 깊게 생각해온 적도 없고-_-;
예전에 권태를 느끼는 행위야말로 풍파없는 노말한 삶이란 증거니
어떤 의미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터라 마지막 줄에 공감도 한다.
근데 글의 전체 분위기가 농민들의 고된 하루를 매우 깔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나의 과장된 해석이자 커다란 오해일까나.

남의 처지에 비추어 자신의 행복을 곱씹는 행위도 비겁하고,
당시에는 보다 일반적이었을 농민들의 삶과
보다 일반적이지 않았을 자신의 삶을 전면적으로 배치해서 느끼는게 고작 그거라니.
농민의 딸도 아닌데 기분이 씁쓸-허네.

물론 서민들, 농민들의 애환과 비극을 그린 많은 소설들과는 달리,
'개인'이라는 주제와 파괴적인 이야기,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던 실험정신은
장르의 다양성을 실천했다는 점과 함께 독보적이며 매우 훌륭하게 평가할 수 있지만,
아직도 다양성을 생활화하지 못하는 편협한 나는
그래도 좀 더 농민들을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줬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바람이 있나보다.

농민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전혀 다른 걸 생각했던 두 사람.
나는 그게 너무 흥미로웠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