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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24. 10:13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23 : '희생과 지배'

Sent : Sunday, March 13, 2005 0:19 AM

 다음 주에는 신간의 견본이 완성될 예정이다. 이 원고가 활자가 될 무렵에는 신작소설 '반도에서 나가라'가 분명히 서점에 놓여있을 것이다. 후쿠오카 시의 위성사진 위에 원색 독개구리가 붙어있는 충격적인 디자인을 지닌 책으로, 이번 처럼 안절부절 못한 상태로 견본을 기다리는 것은 처음이다.
 다양한 방면의 일에 대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만 책이 완성될 때 까지 침착하게 있지 못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반도에서 나가라'는 여러 사실들이 겹쳐진 근미래소설이기 때문에 집필 할 때에 새로운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가 몇 개나 떠올랐다. 새로운 소설의 아이디어를 에세이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소설 뿐만 아니라 '13세의 할로워크'와 같은 그림책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그 중 하나가 취직에 관한 기획이다. 최근 10년 간 학생들의 취직상황은 보면 볼수록 이상하기 때문이다.

  의학부와 약학부 등의 일부 학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은 입시와 부모의 감시에서 겨우 벗어나  1,2학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노는데 보내고 3학년이 되면 취직활동에만 열중하여 통합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취직의 단어 그대로의 의미는 직업을 갖는다는 말이지만, 지금은 입사와 동의어가 되버렸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가를 알게 된 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해 암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1년 반에 달하는 학생들의 취직활동이 능력의 향상과 사회적 체험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측에서도 확고한 채용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대학의 브랜드력도 발휘되지 않는다. 일본의 대학은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만 나오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는 근대화 도상형의 구조가 뿌리깊게 남아있기 때문에, 가령 와세다의 정경학부를 나왔다고 해도 성적표를 보고 어느 정도의 지식과 스킬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기업측에서는 불가능하다.
 
 착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나는 지금의 대학교육과 취직상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히 굉장히 비합리적인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질려 아무도 그 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위기감을 갖고 있을 뿐이다. 수 십만명의 일본 학생들이 18개월 가량을 쓸모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거기서 배우는 것이라고는 눈 앞에 있는 현실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다. 아르바이트와 파견, 비정규직과 같은 새로운 고용형태가 이미 정착되고 중도채용도 늘어났지만 대졸신입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 회사의 절대수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경향이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거품경제 이후의 경제정책에서 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연쇄도산 등의 구조적 위기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은행에 거액의 공적자금이 주입되자 심상치 않은 저금리가 계속되며 시장에서 사라져야 할 쇠퇴기업들이 연명하게 되었다. 중년 남성들의 해고가 주목을 끌었으나 15세에서 24세까지의 약년층의 실업률은 지금도 유별나게 높다. 즉 해고는 주목을 끌지만 신규채용의 감소와 중지는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무력한 젊은이들을 희생시켜도 그것은 그리 주목을 끌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저항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정치적으로 굉장히 약한 입장에 놓여있으므로 희생양으로 삼기 수월한 것이다. 착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나는 젊은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저 불공정한 것이 싫을 뿐이다.
 사람들은 1980년대 미국에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자동차 산업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우수한 젊은이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IT혁명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미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자동차 산업을 연명시켰다면 지금쯤 빌게이츠는 공장에서 트럭을 조립하고 있을 것이라는 알기 쉬운 농담도 던진다.
 
 일본은 기존의 대형은행과 대기업을 구제하여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방향에서 거품경제 이후의 상화을 극복하려 했다. 물론 은행을 비롯해 금융계에서 합병 및 흡수가 연달아 발생하고 은행 수도 줄어들었으며 해고정책도 감행되는 변모를 보였어나 구조와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때 창업 열풍이 불어 벤쳐기업도 다수 생겨났지만 이들 대부분이 희생양이 되자 입장이 약해진 젊은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강한 안정을 원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과 젊은이를 둘러싼 환경은 이전보다 더욱 그들을 숨막히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더욱 폐쇄적으로 변한 이 사회에서 라이브도어의 일본방송에 대한 적대적 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나는 라이브도어, 라쿠텐(낙천) 그리고 야후 등의 소위 IT기업의 생존자들이 쇠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야구를 이용해 자기선전을 하려 했던 점에 크게 실망했다. 나쁘게 말하자면 애당초 그들은 획기적이고 독자적인 기술과 비지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높은 이익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방법을 기본으로 해서 IT버블을 잘 견뎌낸 생존자들이다. 거기서 얻은 풍부한 자금으로 금융게임을 해서 자신의 잇속을 불렸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니다. 그저 그런 방법론으로 가능한 일은 한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성 가치와 기득권 계층에는 끼어들기 쉽지만 폐색적인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지금 현재 그들에게 가능한 것이라고는 자금을 모으는 것 뿐, 새로운 가치와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야후는 후쿠오카 돔의 명칭을 야후돔으로 바꿨다. 야후는 후쿠오카 쯤이야 어찌되든 상관할 바 없는 것이다. 그 옛날 다나카 히데토시가 재적했던 세리에A의 페루자에 위치한 스터디움에는 레나토 크리라는 애칭이 붙어있다. 레나토 크리는 페루자에 몇 번이고 승리를 안겨다 주고 시합 중에 사고로 죽은 축구선수의 이름이다. 만약 페루자의 스폰서 기업이 스터디움의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면 서포터들은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신흥IT기업이 AM라디오의 경영권을 쥔다고 해서 과연 무엇이 바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만약에 라이브도어가 슈에이샤를 매수하여 '소년점프' 만을 남기고 다른 부분을 전부 팔아서 주가를 올려 이익을 얻는 방식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일본방송의 경영권을 쥐는 것으로 기성의 유력 미디어의 구태의연한 문맥과 방향성에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착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나는 라이브도어의 적대적 매수를 비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야심찬 젊은 실업가로서는 할 법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황한 일본방송과 후지텔레비전의 간부들 쪽이 훨씬 보기 흉하고 꼴 사납다. 
 라이브도어 사장이 '지배'란 말을 사용하자 유력 미디어들은 그 말에 과잉반응했다. 하지만 경영권을 쥔 것 만으로 방송 콘텐츠를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스폰서들이 잠자코 있을리 없으며 프로듀서를 비롯해 현장의 우수한 제작 스텝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소속기업에 종속해 상사에게 지배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라이브도어에게 지배받는 일이 일어나면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유력 미디어들은 일방적으로 단정했다. 하지만 경영자가 이전의 나치스와 구소련 처럼 미디어를 지배하에 두고 원하는대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경영자는 회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manage'해서 이익을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연일 미디어가 소동을 부리는 것에 비해 라이브도어 사장이 쓴 서적들의 판매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방관자처럼 사태를 바라보고 있을 뿐 사실은 그다지 흥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