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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25. 18:30 흥미만만/생각 해봐요
18 : '격차의 상징, 손목시계'

Sent : Sunday, October 17, 2004 11:38 PM

 
 신작 소설의 집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새로운 취재가 필요한 부분에 도달한 듯 하여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9월 말에 하코네에서 돌아왔다. 이번 신작 소설을 포함해 집필할 때 취재가 필요한 부분은 바로 알 수 있다. 모르는 것은 쓸 수 없다는 기본 묘사할 때 본 적이 없는 것은 기술 할 수 없다. 물론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을 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5분 후의 세계'라는 패럴렐 월드를 그린 소설의 무대가 되는 언더그라운드=지하세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에는 터널 채굴현장의 사진과 비디오 등을 참고해서 썼다.
 본 적이 없어서 쓸 수 없는 것으로는 기계·기기 종류가 대표적이다. 또한 그 기계·기기를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의 디테일을 필요로 하는지가 정해진다. 주인공과 가까운 화자가 그 기계·기기를 사용하는 경우와 화자가 만나는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묘사의 디테일이 달라진다.
 신작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아직 끝나지도 않은 소설의 기법을 써서 좋을 것은 없다. 하지만 하코네가 아닌 곳에서도 소설만 생각하고 소설의 취재만 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에세이의 이야깃거리를 찾기가 어렵다. 현재 일본의 유력미디어들이 전하는 뉴스는 대부분 아무래도 좋은 것 뿐이다. 다이에가 재생기구에 맡겨지는데 이제와서 그게 뭐 어쨌냐는 것이다.  다이에와 관련회사의 사원들 말고 이 일에 누가 흥미를 가질까?
 다이에 재생처리의 대체적인 틀이 정해짐에 따라 불량채권문제가 일단은 끝났다고 말하는 유력 미디어들도 많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본디 시장에서 퇴출되야하는 많은 기업의 채무가 은행 장부상에서는 지웠졌을지 모르지만, 해당 기업도 은행도 눈부신 이익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도 아니며 이익을 생산해내는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막연하고 애매한 '경기회복'이라는 주문이 일본 경제를 감싸고 있다. 선행 지표를 보면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전체국민은 좀처럼 실감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경기회복 국면은 이미 30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이익을 고용과 급여에 반영하지 못해 소비에 불이 붙은 것도 아니고 거리의 경기 판단도 저조한 상태 그대로이다. 그리고 이번 '경기회복' 국면에서도 경기란 말의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다. 이 에세이에서 몇 번이나 말하고 있지만 경기라는 것이 대체 어떤 지표를 말하고 있는 건지 확실치 않다. 경기란 일경 평균주가인지, 실업률인지, GDP인지, 일은단관의 기준인지 확실치 못할 뿐 아니라 기존의 유력 미디어들은 그 말에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사업의 삭감, 고속도로 건설 동결, 우체국 민영화은 분명히 제도 상의 개혁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실업과 실직이라는 문제를 수반한다. 합리화란 말이나 해고란 말도 전부 똑같다. 그것은 시스템의 변경보다는 어느 한 가정의 일손이 임금삭감을 당하거나 실직·실업하는 것으로, 그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고 주택 대출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결코 공공사업 추진파가 아니지만 공공사업이 줄어들면 적지 않은 가정이 돈 문제를 겪을 것이 틀림없다는 실정을 기존의 유력 미디어들은 결코 전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금기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여태까지 몇 번이고 써왔던 것 처럼 그 사실을 전달할 문맥을 유력 미디어들이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연봉 300만(엔)의 사람·가정과 800만, 1200만의 사람·가정이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생일 적에는 한 반에 한 두 명의 생활보호 대상자가 있고 은행의 총수와 회사사장의 아이들도 그와 비슷한 한 두명이었으며, 나머지 다른 아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생활수준을 보여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연봉 300만과 800만으로는 세금공제 후의 가처분 소득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격차 금액을 정확히 노린 상품과 서비스가 상당히 많아져서 생활수준의 차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들어 친구들과 똑같은 명품가방과 옷을 사기 위해 호스티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대생들이 있다고 한다. '한 등급 상승'과 같은 광고 카피가 상투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가 세분화되고 있는 만큼 그 기능은 강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외식 부문에서도 프렌치의 아성이 무너지고 이탈리안과 에스닉의 붐이 일어난 것도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한 달에 한 두번 연인끼리 혹은 가족끼리 3만엔에서 5만엔 정도의 식사가 가능한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세뇌가 모든 미디어에서 무자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가령 롯본기힐스와 같은 고급스러운 쇼핑&레스토랑 몰에서 쇼핑과 식사가 가능한지에 대해 미디어들은 연일 묻고 있다. 그러한 고급스러운 소비생활을 지향하는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충실감을 얻을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처분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차이야말로 '멋진 인생'과 동일시된다.


 남성 패션지에서는 고급시계 붐이 계속되고 있다. 스위스, 바젤 등의 시계 도시에는 200개를 넘는 일본의 미디어가 쇄도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시계란 자신의 가처분 소득 및 연봉을 과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아이템이다. 메르세데스와 포르쉐, 페라리의 열쇠를 항상 짤랑짤랑 자랑할 수도 없는 일이고 아르마니나 발렌티노와 같은 명품 또한 택이 겉에 붙어있지도 않다. 루이뷔통과 구찌 지갑쯤이야 누구든지 갖고 있다. 여기서 시계가 격차사회에서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아이템이 된다.
 내가 흥미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버블경제 무렵에도 프랑크 뮬러나 불가리 시계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때는 아직 롤렉스나 오메가가 주류였다. 샴페인은 돈페리였고 꼬냑은 마텔과 까뮤가 주류였으며, 지금처럼 그랑샴페뉴의 인디펜던트를 보는 일도 없었다. 근대화가 끝나고 사회전체에 충만했던 활력이 가라앉고 격차를 동반한 다양성이 명확하게 눈에 보이도록 출현하고 소비문화가 세련되게 변해감에 따라 차이를 보다 노골적으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끌게 된다. 명품 지향 또한 보다 세련되어져 20만(엔)정도부터 2000만(엔)정도의 시계까지 계속 소개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나라의 사회적 격차는 원한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고급 지향의 남성지에 프랑크 뮬러의 시계를 차고 페라리와 포르쉐를 몰며 레스토랑에서 라타슈와 페토류스를 마시는 과시욕의 남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격차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면 그런 남자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사회적 원한은 그런 성공한 인간들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범죄를 낳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보다 비밀스럽게 고급 명품 생활을 즐기게 되고 그들을 노린 상품과 서비스가 한층 더 많이 생겨난다.

 사회에 원한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도 그것이 범죄로 수렴될 동안은 아직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원한에 사회성이 더해질 때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아직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새로운 공포정치와 경찰국가의 막을 올리는 게 될지 아니면 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회의 국제적인 견본이 될지는 이제부터 일본경제가 몰락해가는 정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