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길어요.
다 읽는다면 당신은 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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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부터 '생각'하고 있다. 생각만 하고 있다. 생각이 너무 지나쳐서 잠들고, 꿈에서도 또 생각하고, 깨서도 찝찝함에 몸서리를 친다.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하찮아서 견딜수가 없었다. 인류의 존속이라던가 아프리카의 내전과 기아 문제라던가 혹은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고민을 멋지게 한다면 내 생각도 꽤 쓸만할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안해도 별반 다를바 없는, 안하는게 스트레스 덜 받고 좋을 문제를 그렇게 죽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거다.
나는 고집이 센 편이지만, 내 의견이 맞다고 극구 우길만한 배짱이 별로 없다. 주변 사람이 뭐라 그러면 '아, 그런가? 그 말이 맞나?'하고 되묻지만, 결국에는 생각의 길을 돌고 돌아서 생각을 시작한 지점으로 골인하는 모순을 저지른다. 왜 이렇게 인생을 사서 어렵게 사는걸까. 나도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 본능과 순간에 충실한 삶을 쿨하게 살고 싶다. 정말.
내가 생각하는 건 주로 왜 아빠는 돈을 벌지 않았던 것일까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물론 아빠가 돈을 벌지 않았던 게 아니라 못번거라는, 뿌리를 뒤집는 가정도 있지만 지금 나는 대한민국의 경제 불황과 기회의 불평등을 얘기하고자 하는게 아니므로 패스하련다. 어쨌든 그 주제를 뿌리 삼아 생각의 가지가 쭉쭉 뻗어나간다. 대학교 때는 내가 등록금을 상환해야한다는 사실에 지레 겁먹어서 내가 왜 도대체 분수에 안맞게 대학에 들어왔는지 후회하기도 했고(애시당초 중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는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를 했다ㅋ), 방을 구할 때는 공용 세탁기가 뭐 어때, 하면서도 친구들처럼 드럼 세탁기가 딸린 오피스텔에 살지 못하는게 속상하기도 했다ㅋ. 뭐가 그렇게 부러웠지. 별거 아니구만(하고 지금은 말 할 수 있다). 물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했던 여러 일들을 통해 배운 것도 많고 나 자신도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므로 지금은 그 때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해본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지만 대학교에 들어와서 하나 극복하면 또 나타나고, 하나 극복하면 또 나타나는 자잘한 열등감들의 퍼레이드에 휘말릴 때 마다 나 자신을 어르고 달래는 게 참 비참하고 싫었다.
물론 엄마 말마따나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사람들도 많고, 부모님 돈으로 여유있게 학교를 다닌건 아니지만 나를 대졸자로 만든 공의 팔할은 자식 교육에 주저하고 망설이지 않았던 부모님의 과감한 고생이다. 결코 내가 잘나고 똑똑했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대학이네 뭐네 상관없이 이제와서 이러쿵저러쿵 하는게 치사하고 유치하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차피 모두들 집안 사정은 다 있는건데 에이, 이제 애도 아니고, 아직도 집타령이야~' 하는 말을 듣고 겸허히 반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유치함의 끝을 그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난 그런 말이나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분노했고 지금도 한다. 특히 그 사람이 제 등록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되고, 방세와 생활비를 벌 필요가 없으며, 일을 하지 않아도 집에서 생활비와 용돈을 다달이 보내줬던 사람이라면 분노 게이지 급상승이다. 부모님 돈으로 차라도 몰고 있는 날에는 어이가 없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상승하는 서글픔 게이지여, 너는 분노 옆에 딸린 원플러스 원이느뇨??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아빠가 날 얼마나 아껴줬는지, 소위 (경제적으로) 잘 나가는 아버님들처럼 턱턱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어서 속상한 아빠의 마음을. 그리고 돈 이외의 것들로 가족을 힘들게 한 적이 없다는 것도. 과하게 엄한 적도 없었고(내가 더 기가 쎄다ㅋ;), 무언가를 윽박지르고 강요하는 타입도 아니며 여자, 술, 노름, 폭력 그 어느 범주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바깥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일요일에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집에)'돈'이 없어서 겪는 문제만 있(었)다는 사실이 어찌보면 기적이란 걸 깨닫게 해주는 경우를 보면서 내가 실은 엄청난 행운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그러게... 여지껏 아빠는 뭘 낙으로 살았을까... 내가 낙인가? ㅎㅎ 조금 짠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문득 문득 이삼백씩 벌어오는 걸 바랐던게 아니건만 왜! 아빠는 그토록 오래 일을 안했던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다. 불가항력이다. 그리고 정녕 궁금하다. 물론 일자리가 없기도 했고 어렵게 구한 직장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져서 그만둔 적도 있다. 하지만 그 후에 누군가의 소개로 일을 구해도 보수가 적다던가, 뭐 여러가지 이유로 잘 되지 않았다. 일이란게 가릴 때가 있고 안가릴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엄마(그리고 나도)가 아주 드물게 내게 섭섭함을 토로하면 당장 갚아야 할 돈이 산더미 같은데 집에 있는 아빠가 너무 너무 답답하고 이해가 안된다고, 그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한게 결국 지금 와서 뻥- 터진거다. 역시 철딱서니 없게 굴어서 부모님 속 썩이는 것도 진즉에 해치우고 볼 일이다. 20대 후반에 이게 뭐람.
나한테 경제적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고 안해주고는 사실 두번째 문제다. 그야 나도 등록금 내주고 여차하면 대학원 등록금까지 내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자 아빠가 있다면 아주 당연히 대학원에 진학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그걸 감사하다고 생각안하고 당연히 여길 수 있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인격체가 됐을거다. 뭐랄까 좀 더 온실속의 화초 같은 청초한 여자? 받는 걸 하나하나 의심하지 않고 꼬장꼬장 따지지 않는 순한 사람?
여튼 지금처럼 대학원 2년 진학으로 들어갈 경제적 비용을 계산기 두들기면서 학비 이천에, 내가 그 이년 동안 못모으는 돈 합쳐서 오천만원 이상의 견적을 마주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선택을 포기할 이유가 없어진다면... 그렇다고 해서 삶이 더 행복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내겐 없는 선택이라 그런지 너무너무 부럽다. 하지만 등록금 다 갚아가는 마당에 그리고 대학원에 대한 강한 열망과 집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로 남들 부러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걸 빌미로 인생을 원망으로 채운다거나 부모님을 탓하진 않는다. 가고 싶으면 혼자 알아서 갈 수 있다.
단지 그냥 그렇게 엄마가 그 긴 세월을 돈 문제로 좌절하고 울고불고 했을 때(사실 엄마가 돈을 못버는 건 아니다. 빚진게 많아서 갚을 돈이 더 많을뿐) 내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볼께! 하고 떡하니 백만원이라도 아빠가 벌어왔다면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안하지 않았을까. (물론 삐딱하게 왜 더 못벌어왔느냐고 따졌을수도 있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얼마전에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했을 때, 부모님 돈으로 생활하고 학비 해결하는 애들보다 우리가 더 대단해, 하고 친구가 말했다. 고등학교 때 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의 여러 공통 분모 중 하나가 학자금 상환이다.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 내가 간 학교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냥 속편하게 학교 다녔던 애들 짜증난다고 생각하고 근데 너무 부럽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날들이 토나오게 힘들었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학교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하고... 그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고등학교 때 부터 지금까지도 같이 하고 있는 친구들 중 한 명인 그 친구에게 나는 어줍잖게 폼잡으며 말했다. 저마다 사정이 다르니까 내줄 수 있는 집도 있고 못내주는 집도 있고, 그런거지 뭐.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거다. 우리는 우리가 더 대단하다는 자부심과 자기 위안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이지 않으면 실은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
우리가, 적어도 내가 너무 욕심이 과한걸까? 나는 옛날부터 이것저것 참 잘하고 싶었다ㅋㅋ. 초등학교 때 서예네 플룻이네 사교육 뺑뺑이에 눈 돌아갔던 친구가 왜그렇게 부러웠던지. 나도 그런 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눈에 보이는 바로 그 넉넉한 남들만큼의 출발선이 내게도 보장되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그런 생각을 쭉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괜찮은 학교에 진학한 친구가 '나도 남들처럼 과외 받았으면 서울대 갔어!' 하는 말에 철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집 마다 사정이 다른데 그렇게 따지면 다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 나는 그게 팩트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가 100%라면, 원래의 출발선 보장으로 200%할 수 있었을꺼야. 뭐 그런 수치에 근거한 이치?
어차피 집안에 문제 있는 가정은 전 세계 인구수만큼일꺼다. 그걸 모르는게 아니다. 내가 집착하는 건 집안마다 나름의 문제가 있다는 당연한 가정이 아니라 그 문제에 가난이 얹어졌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박탈감, 그리고 실질적인 고생이다. 정신적 고생이 각양각색이라면 뒤집어서 물리적 고생이라도 안하는게 좋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두 분 다 건강히 살아계시고, 같이 살고 계시고(즉, 혼인상태고), 아버님이 몇년 간이라도 일정 수준 소득이 있어왔다면 솔까말 내 눈엔 그 사람이 삶을 탄식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생각의 철없음을 꼬집는 사람들이 그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그걸 꼬집을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고, 그들의 철없음을 꼬집고 싶다. 이제 사회에 발을 좀 내딛었다고 옛날의 설움일랑 전부 털어버리고 부모님이 충분히 지원사격을 했던 사람들과 부지런히 경쟁하라고 종용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태도에 마음이 시리다. 정작 내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바해서 친구들 몫까지 시리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내가 자주 했었다는 것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인데 간혹 열심히 살려고 버둥거릴 때 다시금 그 생각이 고개를 살짝 쳐든다. 버둥거릴수록 드는 생각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버둥거리는 내 꼴이 언론 등 주위에서 보고 듣는 성공 스토리 만큼 멋있고 열정적이지 않을 때, 독하고 처량하게 보일까봐 두려울 때, 내게 조금만 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건 내가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인가. 좀 더, 열심히 살면 해결될 문제인걸까?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억울해하고 자기 위안만 열심히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쿨해지기로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내 상태이다. (물론 성격이 적당히 게으르고 낙천적인 덕도 봤다. 열심히 생각해도 배는 고프고 잠은 오는 법)
쿨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쿨하지 않다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쏘-쿨한 (미래의) 내 모습'을 동경하며 정진한다. 친구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대학을 기부금 입학으로 가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으로 가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임? 하는 태도(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경우는 제외하고), 집에 재산이 넘쳐나건(오히려 없는 친구들하고 어울리는게 쭉 편했으니까) 아버지가 이건희건 스티븐 잡스건 장동건이건 배아파하는 것 없이 함께 키득키득 웃으면서 놀 수 있는 대인배, 키우느라 고생하셨어요! 나 같은 딸 있어서 든든하죠? 하면서 부모님한테 집도 턱턱! 사드리고 한도가 넉넉!한 신용카드도 만들어 드리고 누나만 믿어! 하면서 동생 등록금도 팍팍! 내주는, 그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쿨한 인간이 되고 싶다. 일주일 중 삼일은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3일은 세상 만사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 하는 상반된 생각ㅋ 하루는 쉬고!ㅋㅋㅋ).
세월이 흐르자, 돈은 일정 액수를 넘기고 나면 행복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타입이라는 걸) 깨닫는다. 돈이 전부가 아니야~ 돈 많은 사람도 다~ 절망이 있어~ 하는 엄마의 말이 예전만큼 거슬리지 않는걸 보니 내가 돈을 생각했던 것 보다 덜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게 된달까. 아니면 결국 그런 인간으로 키워진걸까 ㅡ_ㅡ; 새삼 부모의 가치관이 자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절실하게 느낀다.
그토록 지난 날이 억울했다면 뼈가 가루가 되도록 돈을 벌면 되는데, 삶의 질이 어떻네 꿈이 어떻네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거나 부자되기 글렀거나... 뭐 그렇다. 하지만 난 그런 자신에게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고, 그렇게 자랄 수 있었던 건 역시 부모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런 소리 그만할란다(생각은 계속 날지도 몰라...).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했을 때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떠들고 나면 별 거 아닌, 그냥 나 참 철없다- 하고 웃으면 그만인 열등감 응어리를 가슴 속에 고이 품고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던 걸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람에게 옛날 얘기가 입 밖으로 술술 새어나는게 훨씬 건강해보인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있다는-그것도 어느새 출구가 가까워져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게 쪽팔리고 분했다. 힘든 내색 전혀 안하고 꿋꿋하게 사는 훌륭한 친구들이 돈 많은 친구들보다 사실은 훨씬 더 부러웠다.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나약한지 매분 매초 확인하는 건 공용세탁기 쓰고 통장 잔고가 몇 천원일 때 보다 더 잔인하지 않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위인이 못된다.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귀찮으면 귀찮다고 포효해야한다. 힘들 때 마다 힘든 내색을 열심히 해서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다. 지금 집 생각이 버거울 때 죽어라 생각하고 잊어버릴꺼다.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잊혀지지 않는 찌끄러기는 부모님에 대한-소위 말하는 효도로- 지원으로 환원할 것이다. 먹고 마시고 선물하고 정신 차리고 똑바로 잘 살아서 행복해질 것이다. 그것보다 나은 효도는 없다(당근 돈도 드려야쥐ㅋㅋ).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를 보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포효하는 친구가 나온다. 지붕이 날아가서 잡고 잤다며 자기의 불행을 과시(?)하는 친구와, 자동차에 넣을 기름이 없다고 풀이 죽어 있는 친구를 동시에 지켜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알듯 모를듯 전해졌다. 그의 만화는 재밌었다. 게다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웃음으로 환원하는 그는 멋지다.
나도 웃을 것이다. (원래도 안울지만ㅋ) 눈물은 필요없다. 내가 어렸을 적 얘기를 하며 짠해지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다. 등록금 상환도 올해가 마지막이니까ㅋㅋ 그리고 우리 집 빚 청산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았으니까ㅋㅋ 나를 쿨하지 못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나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쿨한 나-를 방해하고 있는 건 필사적으로 내 비상을 가로 막고 있는 흉한 '나'였다.
나는 아주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고 그걸 목표로 노력하고 싶다. 그럼 문득 멍-하니 있을 때 손에 안잡히는 눈에 안보이는 '행복'이란 말이 머리를 잠시 스치는 순간도 늘어나겠지.
새해의 다짐- 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