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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18. 10:36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게끼단히토리의 소설을 다 읽었다.
게닝이 쓴 소설을 읽는 건 처음이다. 이 소설의 존재를 알게된 순간 부터 너무너무 읽고 싶었는데 양장본이 너무 비싸서ㅠ.ㅜ 엄두를 못내다가 문고본이 나와서!! 교보문고에서 그리 비싸지 않게 팔길래!!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샀다.

분량이 적은 책은 읽다가 감질맛만 나고, 또 너무 무거우면 들고 다니기 힘들지만 그래도 딱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 만큼은=p.648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p.214에 줄도 잔뜩 띄어써서 분량이 너무 적다;;

'카게히나타니사쿠'는 5개의 소설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집인데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뒤로갈수록 훨씬 재밌다. 내가 좋았던 건 도박에 빠진 역무원 청년의 보이스피싱 사기 실패담 'Overturn'과 인기없는 게닝과 그 게닝에게 운명을 느낀 소녀 그리고 스트립퍼의 이야기를 그린 '鳴き砂を歩く犬'였다.

오버턴은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마지막 소설은 팔리지 않는 게닝의 비애와 나루코, 스트립퍼의 삼각관계가 흥미로웠다. 특히 나루코가 게닝을 찾아 아사쿠사로 상경해서 같이 게닝이 되어 고분분투한다는 설정은 너무도 맘에 들었다. 하하하. 그러고보니 마지막 소설은 그냥 내가 워낙 '게닝'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는지라 그랬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그래도 누가 읽어도 마지막 부분은 재밌지 않을까??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까서 방귀로 웃기려는 '개그'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줄까? 그냥 미친 또라이 변태로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우려- 소위 일본의 '팔리지 않는 게닝의 비애'와'재미없고 인기도 없는 개그맨의 비애'는 같으면서도 사회적인 풍토와 개그코드 덕에 또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나머지 앞에서 부터 쭈루룩 1,2,3번째 소설은 사실 별로 재밌지 않았다. 그야 다소 기발하기도 하고, 평소의 궤변론자다운 게끼단히토리를 떠올리면서 다소 쿡쿡 웃기도 했으며, 짧은 소설안에서 나름대로 반전을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린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렛코게닝(=인기있는 개그맨)이 쓴 소설, 이라는 메리트를 제외하고 단순히 소설만 가지고 평가를 한다면 이게 과연 80만부나 팔릴 가치가 있는지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연예인들이 요즘따라 열심히 책을 내고 또 널리 읽히고 있는데 그게 과연 모두가 열광할만한 책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전략적 반전 배치, 사람들의 심리와 상황에 대한 깊이가 얕은 묘사, 철저하지 못한 줄거리 전개...등등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ㅠ.ㅜ
처녀작이라는 걸 감안해도, 근저에 굴러다니는 비슷한 소재와 주제의 오쿠다 히데오 소설 - 사회의 다양한 루저들의 비극과 동병상련의 아픔 그리고 위로 등의 예를 들자면 라라피포- 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그래도 사실 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고;;; 오히려 어느 정도의 가능성에 공감했기 때문에 불만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진짜로 형편없었으면 이미 집어던졌지;;;
그래도 '게끼단히토리'라는 이름 덕에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 것 같다.
두번째 책을 냈던데, 이번에는 좀 더 큰 발전을 이루었기를.

p.s 사실 게끼단히토리 소설 보다 게끼단히토리 아버지가 쓴 '아또가키'가 훨씬 재밌었다+_+ 게끼단 히토리의 생애(?)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된다. 푸하핫.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 한 번 올려볼텐데, 이거 누가 열심히 번역하고 계신건 아닐지...??
 
posted by steadyoung
2009. 4. 18. 00:53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주변에서 다들 온다 리쿠 온다 리쿠 하는데, 정작 일본 소설을 거의 매일 읽고 있는 나는 온다 리쿠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방금 샤워하면서 곰곰이 옛 기억을 뒤져보니, '금지된 낙원'을 조금 읽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 역시 온다 리쿠와 나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금지된 낙원을 중도 포기도 아니고 앞에 몇 장 팔락팔락 넘기다 끝낸 이유는 간단하다. 초반부에 흡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휘리릭 몰입한 미야베 미유키 등 여타 다른 작가들의 책과는 달리 초반부가 내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온다 리쿠 냄새는 맡지도 못하고 도서관에 금지된 낙원을 반납했다. 

그러다 이번에 방한하는 일곱명의 작가들 중 그래도 좋아하는 축에 껴줄 수 있는 사람이 요시다 슈이치 밖에 없어서, 이건 좀 아니지 싶었다. 그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어떻게 알아! 에쿠니 가오리야 몇 권 읽었으니 내 취향이 아니라고 분명히 판명되어 아쉬울 것이 없지만, 후에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고 너무도 재밌어서 나중에 '그 때 사인이라도 받아두는 건데!' 하는 마음으로 뒤늦게 땅을 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나의 친구가 하도 온다 리쿠 노래를 부르길래, 금지된 낙원의 아픔을 잊고 다시 다른 책을 시도할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보니 친구가 무라카미 류를 좋아할 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고,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추천할 때 시무룩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찬양한 작가는 절대지존 미야베 미유키 뿐이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사실은 미세한 간격의 평행선을 달리는 우리의 취향은 온다 리쿠 지점에 다다르자 드디어 그 간격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온다 리쿠에 대한 시무룩한 대답을 보낼 차례이다.

친구의 추천과 인터넷 정보를 참고해서 유지니아를 골랐다. 일가족 몰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어린 소녀를 범인으로 설정하다니 이렇게 흥미진진할수가!! 추리소설협회 대상이래!!! 하며 들뜬 나의 마음은 책의 중반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했다. 한 줄 두 줄 눈을 좇는 것 만으로 소름이 끼쳤던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미야베 미유키에게 받은 적 없는 선물이었다. 그건 아마도 수학적인 추리소설을 쓰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인내심과 따스함을 갖고 풀어나가는 미야베 미유키의 표현방식과는 전혀 다른 '온다 리쿠'의 문체와 구성력 덕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작하는 작가의 소설이 맘에 든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당분간 무얼 읽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 권 한 권, 저작목록이 줄어들수록 느껴지는 뿌듯함도 지속될 것이고, 소설이 주는 즐거움과 작가에 대한 신뢰가 차곡차곡 쌓여 아름다운 양식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나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말을 향해 갈수록 그녀의 '돌려말하기'방식에 초조함을 느꼈고, 그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조함이 아니라 소설과 작가에 대한 짜증으로 직결되는 기분 나쁜 감정이었다. 내가 월요일 하루 컨디션을 버리고 일요일 밤 잠들지 못한 채 끝까지 읽는 것을 택했지만,
.........................................나는 구원받지 못했다 ㅠ.ㅜ


솔직히 말해서 모두가 인상깊었다는'사실이란 주관적 감상에 불과하며 모두의 기억이란 자신이 원하는대로 짜맞춘 허상에 가깝다. 픽션도 논픽션도 없다'는 (이 책의 주제로 추정되는 ) 구절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인상도 주지 못했다.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 팩트로 이루어진 신문도 실은 일종의 칼럼에 가까운데, 하물며 내 기억속의 옛 일이란 내 구미에 맞게 재구성된 판타지와 다를 것이 없다.
굳이 꼽아보자면 인터뷰에 응하는 인물들의 인생사와 그들이 갖고 있는 인생관, 가치관이 조금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아낌없이 시간을 할애하는 인간을 꿰뚫어본다, 자신들의 시간은 조금도 주려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반발하려는 건 당연하다, 내가 되새기고 곱씹은 부분은 대체로 이런 구절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추리소설','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사와 가치관, '사회(집단)의 굴곡(어두운 면)'이라는 소재로 분류될 때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뛰어넘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건 관계자들과의 증언을 인터뷰하는 대화체 형식으로 적은 것은, 금지된 낙원이 그랬듯 초반 몰입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중간에 기껏 모은 몰입도를 막판에 분산시켜 나같은 독자들을 화나게 하는 마이너스 효과를 만들어낸다. 어찌나 신경질이 나던지...이제 그만 인터뷰 따위 집어치우고 얼른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전하란 말이다!!!!!!!!!!!!!!!!! 하고 나는 몇 차례나 절규했다OTL.

결과적으로 그녀가 범인인지, 책을 쓴 이는 왜 그렇게 죽었는지, 왜 가족을 포함해 그 가족을 전부 죽였는지, 책쓴 이의 둘째 오빠의 그 고백은 왜 갑자기 중간에 튀어나와 소설의 흐름을 흐리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하나도 하지 않고 색채대비를 이용한 시각적 효과와 동기를 결부시켜서 모든 것을 애매모호하게 만든 그 무책임함!

몽롱한 분위기,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동경, 서정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이야기 전개의 허점을 덮어줄 수는 없다.

친구와 내가 '힘이 딸렸다'라고 표현하는 그 상태, 일 다 저질러 놓고 수습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엉뚱하고 설득력 없는 결말. 
이제 두번 다시 온다 리쿠의 책을 펴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온다 리쿠가 아니니까 확실한 결말을 내겠다.


우리는 궁합이 맞지 않아요...
 

  
posted by steadyoung
2009. 4. 14. 15:32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책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감상과 저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그득하니까
      책의 철저한 리뷰를 원하시는 분은 적당히 스킵해서 읽어주세용


 
 일본의 논점 2009에는 강상중씨의 글이 실려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아마도 북한관련이지 않았나 싶다);; 일본인치고는 특이한 한자를 사용하는구나 싶었는데 역시 재일 한국인이었다.
(기고가 중 오선화씨가 있었는데 오선화씨가 쓴 글에 대한 논평이 한겨레 신문에 실렸다.) →보러가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고민하는 힘' 의 출간소식을 보고 그 이름을 한 번 더 접하게 되었다.  '재일 한국인 최초 도쿄대 교수'가 쓴 책을 '일본 100만 독자' 가 읽었다는 책소개와 저자의 약력도 물론 내 흥미를 끌었지만, 저자가 책 속에서 막스 베버나츠메 소세키의 작품과 생각을 살피면서 '고민하는 힘'을 강조했다는 점이 책을 구매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
 
  예전에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를 읽고 나서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 겪는 혼란과 고독, 불안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라잃은 설움', '이유없는 차별'과 무관한 시대에 태어난 나는 아마 평생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 강상중씨 또한 GO의 스기하라와 마찬가지로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항상 고민하며 살아왔다. 넘치는 부모님의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며서도 늘 존재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1972년 '고국'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 도쿄대 교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우익 비판 등 역사와 정치분야에서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연을 펼치고 있다.
 
 성장과정과 독일에서의 화려한(?) 수학경력 때문에 나는 책을 잠시 오해했더랬다. 얼마전에 프레시안과 했던 북 미사일에 관한 인터뷰를 읽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열정적이고 강경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사람일 거라고, 치밀하고 꼼꼼하게 사람을 압박하는 논조로 "고민하라!"고 외치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감을 강상중씨는 단 번에 무너뜨렸다.
 ~하지요. ~하지 않을까요? 의 어미로 끝을 맺는 다정(?)한 말투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끈질기게 되묻는 '고민하는 힘'은 전체적으로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서 다 읽은 지금(분량이 많지 않아요) 살짝 어이가 없다. 이런게 아니지 않아...?? 
 물론 열정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치밀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뭐라고 하면 좋을까... 비뚤어진 한일 양국 역사의 음지-틈새에서 아프게 자라난 '재일 한국인' 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울분과 한, 그런 감정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독자들을 자극시키는 책이길 은연중에 기대했던 내 기대가 너무도 깨끗하게 껶여서, 어안이 벙벙한, 그런 느낌이다.
 삶이란 하루에 부드러운 황혼이 드리워질 무렵,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로 얼룩진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화만 내기보다는 그 일이 내게 주는 의미를 '고민'하는 지혜로운 사람. 내공이 착실히 쌓인 '인품'에서 퍼져나오는 강인하면서 부드러운 사람의 냄새. '재일 한국인'이기에 터뜨릴 수 있는 분노를 '고민하는 힘'으로 승화시켜 아름답고 실한 열매를 맺은 자의 애정어린 충고가 이 책에 있었다.
 
 친구와 가끔 왜 우린 이런 일까지 고민하는 걸까, 왜 우린 이런 일에서까지 의미를 찾는 걸까, 자조섞인 쓸쓸한 물음을 던진다. 10대 때는 대학입시에 치이고 20대 때는 경제위기와 청년 실업에 치여서 고민할 시간마저 빼앗긴 채 앞으로 앞으로 나가야 하는 지금 내 나이 또래들(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지만). 고민할 필요성을 부정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럴 필요도 못느낀채 부지런히, 살벌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도 그들처럼 '왜'라는 의문을 잠시 덮어두고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왜냐는 물음을 사방팔방에 던져 돌아오는 것은 '나는 남들보다 뒤떨어져있다' 는 바닥을 모르는 늪같은 절망감 뿐이다. 왜 좀 더 토익점수를 올리지 못했을까-남들 다 하는 900을 채 못넘긴 나는 멍청한가, 왜 그 때 그 회사를 선택하지 않았을까-내가 뭐 잘났다고 더 높은 연봉을 바라는걸까, 왜 지금 나는 회사입사를 준비하지 않는걸까-언제까지 이렇게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하는 자책과 자괴감이 '고민'하는 힘으로 던진 물음에 대한 날카로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칼을 맞는 내 마음은 슬프고 아프다.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 눈에 쫓겨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보다는, '꿈'이라는 단어가 다소 입 밖으로 내기 부끄러워도, 포기하지 않고 그 꿈을 발견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화를 이루고 싶었을 뿐이다. 돈은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타인의 시선보다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 을 믿고 실감하고 싶었다. 
 
 나는 멋지게 말하면 '나 자신을 믿을 힘'을, 
 어찌보면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 책에서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시도는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끝났다.
 아! 이 책을 읽고 나의 인생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와 같은 멋진 말을 하기에는 책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지금의 나는 '내 길에 대해 방향을 잡고는 달리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는 시기'에 있다는 것, 그리고 고민하는 성격은 평생 벗을 수 없는 옷 처럼 나라는 인간에게 딱 붙어있으니 잘 부둥켜안고 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세기의 전환점에서 고민하는 힘을 포기하지 않고 현실과 씨름했던 막스베버와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과 일화를 통해, 고민하는 힘(걱정이 아니라)을 부둥켜안고 사는 일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확신하게 되어 굉장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연륜과 인품에서 완숙미가 물씬 느껴지는 강상중씨의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젊은' 꿈도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도 쉰이 넘어 내 인생의 노을을 맞이했을 때, 치열했던 낮을 웃으며 돌이킬 수 있는, 저물어갈 밤을 조용히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꿈을 이루어가는 힘은 '고민하는 힘'의 일부이며 '고민하는 힘'은 삶을 아름답게 쌓아가는 힘과 연결되어 있다. 삶을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아름답게 죽는다는 말과 동의어이며 그 모든 힘의 총집합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의미',
즉 '나'이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4. 8. 16:21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무라카미 칠드런(하루키 칠드런)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 칠드런이란 평론가들이 특정한 작가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 아래 있다고 평가해 부르는 명칭이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자칭하는 경우도 있다.

 요시다 노부코에 의하면 '하루키 칠드런'이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와 센스,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그것을 계승하는 작가들을 칭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사카 코타로, 혼다 다카요시, 카네시로 카즈키와 같은 '톱 반열에 드는 젊은 작가들'이 '무라카미 칠드런'에 속한다. 또한 여성 작가로는 해당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후지이 쇼조는 중국의 저명한 여성작가들, 衛慧、安妮宝貝、王家衛들이 '무라카미 칠드런'이라고 평했다.

일신문사의 홈페이지에는 "'무라카미 칠드런'이라 불리는 작가들이 한국, 중국, 영국,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고 평하는 기사 '<두개의 M-망가와 무라카미 하루키4> 세계적으로 뿌리깊은 자기표현'이 게재되었다. 

 토요자키 유미는 혼다 타카요시의 작품이 무라카미의 페이크라고 논평하면서 '무라카미 칠드런의 우등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 외로 뮤지션 스가시카오가 무라카미 칠드런을 자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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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는 자기 책에서 스가시카오 노래 듣는다고 자랑하고
스가시카오는 무라카미 칠드런을 자칭하는구나!! 사이좋네?!!

이사카 코타로는 매우 좋아하는 작가인데 설마 이렇게 불리고 있을 줄이야...
카네시로 카즈키도 그래...
무라카미 하루키 책도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난 책을 헛읽었나...흑흑.

그래서 어쨌든 혼다 다카요시 책을 읽기로 했다!!!!
...다음에. 

posted by steadyoung
2009. 3. 26. 16:12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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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의 데뷔 후 두 번 째 작품인 '최악'에는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주변 상황에 떠밀려 악화의 일로를 걷는, 나아가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버블경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작은 철공소를 경영해왔던 카와타니 신지로는 버블이 끝남과 동시에 계속되는 경기침체 때문에 밤낮없이 일해도 현상유지가 그만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장이 자리잡은 곳이 전부 같은 직종의 동료들로 가득찼던 시절도 옛말, 바로 옆에 커다란 맨션이 세워지면서 밤낮없이 가동되는 기계소음에 불평을 늘어놓는 '이웃'들과의 마찰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뿐이다.

 알콜 중독에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는 병원에 입원돼있고, 다른 남자를 만나 새 살림을 차린 어머니는 몇 달 집을 비운 사이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고향도 아닌 곳에서 파칭코와 소위 '삥 뜯기'로 그 어느 누구와 말을 주고 받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무라 카즈야는 거물 야쿠자를 꿈꾸는 나카다와 함께 공장에서 토루엔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은행에 취직한 미도리는 철도 건너 편의 철공소를 바라보며 자신이 저런 노동자들과 달리 도내 커다란 은행에 취업해 일을 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매일 똑같이 남의 돈을 세는 획일적인 업무에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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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만들어진 '최악'의 한 장면)


 이 세명의 등장 인물이 저 마다의 사건을 발전시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얼핏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 세명은 노무라 카즈야가 메구미와 은행을 털기 위해, 카와타니가 맡긴 돈을 돌려받기 위해, 미도리의 직장인 은행에서 마주치고, 셋은 도주 중의 대립과 갈등 끝에 기묘한 유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이 우려했던 '최악'의 결말이야말로 소설 전반을 지켜본 독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가장 효율적인, 그리고 유일한 방법임을 알리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책은 오쿠다 히데오가 여태껏 그려왔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모순에 불안해하고 갈등을 느끼는 구조는 공중그네나 인더풀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야쿠자가 등장해 범죄와 얽히는 소설로는 한밤중의 행진을 들 수 있다. 나리미야 히로키를 주연으로 내세워 최근 영화화된 라라피포 역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막다른 상황에 내몰렸을 때의 대처방식을 다양한 인물의 얽히는 과정속에 그려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를 속도감이 느껴지는 빠른 전개와 짧고 시원시원한 문체로 써내려간 소설 '최악'이 여태까지의 소설과 다른 점을 꼽자면 '현대사회의 모순'을 좀 더 뚜렷하게 부곽시켰다는 것이다.

 철공소의 카와타니 신지로를 통해 도요타 자동차가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드높인 도요타 생산 방식, 이름하여 간판방식의 효율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수많은 이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지 , 그들의 막막한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주는 그 무엇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마주치는 절망의 벽이 어떠한 모양새를 갖는지를 꼼꼼하게 그려낸다.
 갈수록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의 배경으로 불우한 가정환경과 사회의 냉담함을 꼽은 오쿠다 히데오는 노무라 카즈야를 통해 젊음 이외에 달리 내세울 것이 없는 고독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충을 나타냈다.
 
 이 모든 인물들과 사건의 주요 배경이 되는 장소가 일본의 '은행'이다. 사원들에게 일체감과 안정된 직장을 제공하는 은행이란 커다란 집단의 남성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일면을 미도리의 성폭행 미수 사건을 빌어 고발한다.
 큰 은행이 중소기업에게 행하는 이기적인 횡포와 성숙하지 못한 남성들의 집단 내 파벌 문제 등을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 신랄하게 써내려간 이번 소설은, 독자들의 계속적인 흥미를 유발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오락적 기능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사회적 고발성이 강한 작품이라고 하긴 어렵고,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사회로 돌리기 보다는 결단력이 약하고 옳지 못한 행동과 잘못을 시정하려는 태도에 무감각한 주인공들의 일면에 부과하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하지만 박력있는 범죄소설, 판타지, 사회소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코믹한 닥터 이라부 시리즈 등 폭넓은 소설세계로 널리 알려진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문예춘추 작가 소개에서 발췌) 인 그가 대중성과 사회적 의의를 동시에 거머쥐는 가장 훌륭한 타협점을 찾아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소설을 사랑해 마지 않는 독자들과 재밌는 소설을 찾는 대중들에게 오히려 무척 고마운 선물이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전혀 다른 '최악'이란 책인데 표지가 너무 잘 어울려서 붙여봤다)


++++++++++++++++++++++++++++++++++++++++++++++++++++++++++++++++++++++++++++++++++++++++++++++++

잘난 척 하면서 써봤다.
다시 읽어보면 고쳐야할 점이 수두룩하겠지...

어쨌든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을 찾아 들어오신 분들, 참고해주세요~
저는 정말 재밌게 읽었답니다.
아무리 문고본이래도 너무 두꺼워서 지하철에서 읽는데는 손목이 꽤 아팠지만...훌렁 읽어버렸어요.

술술 읽히지만 한 번 쓰윽 읽고 끝날 뿐, 다시 되새기면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미 면에서는 뭘 사든 실패하지 않기 때문에 신뢰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3. 15. 00:32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중1이 되서 같이 등하교했던 친구에게 고백했더니
뭔소리야, 하고 면박을 받았다.
그 때의 깨달음, 그 깨달음에 대한 전율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지금도 모르는데,
하물며 그 때의 나란 푸대자루를 걸친 앙상한 빗자루 같은 엉성한 존재였으니.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어, 1학년도 슬슬 끝나가던 그 때,
심심했는지, 뭔 바람이 불었는지 책을 마구 읽기 시작했다.
그 때 집어들었던 책들 중 하나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는데
내가 5학년 때 깨달았던 '엄청난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한 단 한 문장을
그 속에서 발견했다.


제제가 옆집 아저씨에게

"아저씨, 난 속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라고 말하자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제제야, 그건 니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란다."


대충, 이런 대화였음.


아아. 그 깨달음이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마음먹은대로 뭐든 상상할 수 있어'
'머릿속에선 뭐든 일어날 수 있어'
지금 적당한 말들을 찾아보면 이런 느낌들인데, 그 어느 것도 핵심을 짚은 것 같진 않지.


나는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다.
그걸 깨닫게 해준 '책'이란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인생의 친구인지.

책에 대한 애정이 퐁퐁 솟는 요즘이다.


*이건 아마도 내가 책에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책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지금의 일.
한낱 알바에, 남이 멋지다고 치켜세울 위치도 아니고, 회사취업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계속해서 모르겠다고 시치미 잡아떼는 자신의 속내를 향해
확실한 한 걸음을 뻗었다는 확신이 생긴다.

posted by steadyoung
2009. 3. 14. 23:47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금요일, 교보문고에 들렀다.
요즘 교보문고 마일리지를 모으는 재미에 인터넷 책 주문에 소소한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그런 까닭에 책을 사기보다는 앞으로 살 책을 좀 훑어보고,
원서구경을 할까 하는 마음에 가볍게 들러주려 했는데,

일은 늦게 끝나, 지하도 들어서자 핸드폰 두고 나온 걸 알아차려,
바람이 열나 불어서 전경들 앞에서 치마가 뒤집히질 않나...
경복궁에서 교보문고까지 참으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엔화가 너무 올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원서를 살 수는 없었지만 ㅠ.ㅜ
보고 싶은 책들을 찾아보고 스케쥴수첩에 붙일 스티커도 사는 등,
맘껏 금요일의 소비생활을 즐기던 중!!!

원서 부스에 있는 특가 코너를 발견+_+
눈에 불을 켜고 책들을 뒤적거려, 두개를 득템!!!!!!!!!!!!!

1. SWITCH-2008.5
비록 요즘 아라시 지름신이 강림하는 루트를 차단했지만,
마츠준이 표지라는데 넘어가지 않을 내가 아니다+_+
그리고 일본 고전영화에 대한 특집과 이노우에 다케히코 특집이 실려있었기 때문에!!!!!!!!!!!!!!
이건 정말 환상적임. 2000원이었다. 험난한 여정을 보상받았어 ㅠ.ㅜ

2. 바나나 모드
오랜만에 읽는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
에세이에서 무라카미 류가 '주장'하는 내용은 진이 빠질 정도로 매번 똑같지만,
그걸 매번 읽고 있는 나도 뭐;;;

무라카미 류는 항상 새로운 일들을 기획해 실행하고,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끊임없는 애정을 쏟으며,
본업이라 할 수 있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잔뜩 해댄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정열적인 태도로 삶에 임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멋져서,
또 똑같은 말이야- 라고 불평해도 그 에너지를 조금은 나눠받는 기분이 들어
읽는 시간을 손해봤다는 생각이 요만큼도 들지 않는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나도 항상 이렇게 누군가에게 넘치는 에너지를 전달하고픈 욕망이 있어서
기꺼이 5000원을 내고 에세이를 샀다.
아니다 다를까, 책의 첫장부터 에너지가 넘친다;;;

근데,

표지는 새책임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지저분해서 직원분에게 한 번 확인해볼까, 할 정도였지만
그래서 싼거겠지- 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지저분한 표지보다 더 쇼킹했던 건, 책의 원래 표지;;;
이건 아마도 무라카미 류의 클로즈업이겠지,
내가 상상하는 무라카미 류의 모습은 이런게 아닌데...
(원래의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근데 그게 꽤 오래전이란 걸 잊고 있었다;;)
완전히 아저씨라, 책이 급 부끄러워졌다.

못생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뭐랄까...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아니라서.
눈빛이 날카롭지 않아서.

나는 '사람의 얼굴'이 드러내는 인생의 깊이를 꽤 신뢰하는데(멋대로 추측-)
이건, 조금, 책 내용을 영양분으로 쓸 계획에 설득력이 빠지게 생겼다.

무슨 자신이 이리도 넘쳐서 자기를 표지로 쓸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이건, 뭐 종이로 싸서 읽어야겠어ㅠ.ㅜ
지하철에서 이 책을 들고 읽는데 모두가 책을 빤히 쳐다본다 흑흑.


아. 책 열심히 읽어야겠다.
아직 '최악-오쿠다 히데오'도 반이나 남았다.



posted by steadyoung
2008. 12. 12. 03:30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가 아닌 작가의 책을 읽었음.ㅡㅡ^

공중그네, 인더풀, 한밤중의 행진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작가, 오쿠다 히데오.
짧고 간결한 문체와 독특한 인물들이 인상적인 소설을 쓴다.
그러고보니 세 권을 연달아 읽어서 잠시 쉬어야겠다고 놓은 작가인데
오랜만에 다시 읽었네~



일단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위의 세권도 빨리 읽었지만 남쪽으로 튀어는
두 권을 한자리에서 다 봤다;;
뒤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어야겠다고 자신을 설득한 후
두세줄 씩 마구 건너뛰고 읽었음.
도무지 책을 놓을 타이밍이란게 없다!!!!
개인적으로 오키나와에 흥미가 있어서 더욱 끌렸던 듯.

꽤 오래전이지만 일본도 학생운동이 한창일 때가 있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신 분들은 책에 묘사된 학교 분위기를 떠올리면 좋을 듯.
사회와 무관하게 보이는 젊은이들의 청춘애로물에 불과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실의 시대는 학생운동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지닌 소설이라 본인은 생각함.
여튼, 그 시대를 지나 때는 바야흐로 21세기.
학생운동에 몸을 담궜던 걸로 보이는 아빠와 엄마 밑에서 평화롭게(?) 자란 지로는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알 수 없는 상황전개와 가쓰의 괴롭힘에 방황한다.
주인공을 초등학교 6학년 학생으로 설정하고 거기에 책의 흐름을 맡겼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용.
사실 그런 게 뭐든 독자들은 상관없는데 괜히 어려운 이야기를 잔뜩 써서
머리 아프게 할 필요 없다는 철저한 계산이 돋보였던 장치라 생각된다.
아빠가 뭐라뭐라 말하면 "난 초등학생이이니까 그런거 몰라! 몰라도 돼!!"로
배째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지로. 독자들도 실은 "난 그런거 몰라!!"를 외치고 있을테다.

그리고 결국 도쿄를 떠나는 지로 가족들은 오키나와의 어느 섬에 정착하는데(2권)
이게 또 너무 재밌단 말이지ㅠ.ㅜ

오키나와는 일본의 하와이로 불리며 '꿈의 섬'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 빛의 바다, 무공해 자연
어쩌구저쩌구하는 문구들로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한반도 저리가라 싶은 서글픈 역사를 자랑(?)하는 섬이다.
류큐왕국은 결국 메이지유신 이후 본토에 오키나와를 넘겨주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본토에는 요만큼의 피해도 입지 않았던 일본을 대신해
(히로시마랑 나가사키 원폭은 예외적 성격이라 일단 패스)
미국의 공격과 본토의 나몰라라 정책 및 차별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 살상당하는
'한'이 어린 땅이란 말이다~
지금도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철수 및
미군들이 저지르는 범죄(우리나라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를 놓고 끊임없는 운동을
벌이고 있음.

오키나와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있는데
지로 가족은 그 중 하나를 택해 들어가게 되고
자연과 친절한 주민들을 벗삼아 조용히 살아가려던 지로네 아버지를
또다시 건드리고 마는 리조트 건설업자+이들과 결탁한 의원, 등장!
다시금 전투(?)가 펼쳐진다.

내가 참 가슴이 아려왔던 건,
류큐왕국도 결국 누군가의 지배를 받게 되는 입장이었지만
그런 류큐왕국도 그 주변 섬들을 지배하려 했다는 사실.
오키나와 사람들이 흔히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라 류큐인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물론 요즘 젊은이들은 오키나와는 일본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주변 섬들 사람도 독립적인 입장에 있고 싶어 했다는 것에-
지배와 피지배의 순환과 맞물림을 보며 아~ 귀찮아~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섬 주민들의 인간미와 살아 숨쉬는 자연도 커다란 매력이었지만
역시 이런 지배-피지배의 맞물림속의 인간의 분투가 주는 허망함-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는 세력다툼,
자연과 리조트의 싸움(이건 실제로 많이 있는 일이고, 오키나와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
등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시선으로 편성된다는 것 자체가 주제의식과 직결됨.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이 생각났다.
미국과 헌법9조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소설- 다 읽긴 했지만 별로 재미없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소설로 풀려는 시도는 유혹적인 만큼 위험해서-
재미가 사라질 각오를 해야하는데- 거기에 가장 부합했던 책이지 않았나 ㅠ.ㅜ
(이사카 코타로는 무척 좋아하는 작가임!!)
그러나 오쿠다히데오의 이번 책은, 역시 구멍이 송송 뚫린 부분도(무리한 부분)도 꽤
있었지만 소설의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했다는 점에
저 개인적으로는 커다란 갈채를 주고 싶어용~



일본판 제목은 <사우스바운드> 파란 하늘 아래 시사가 인상적인 표지이군요.



오키나와 갔을 때 길가에 전시된 시사- 공예품들.
강렬한 색채와 귀여운 표정이 인상적이죠~
posted by steadyoung
2008. 12. 4. 02:19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나는 지갑이다>를 읽었다.
한 사건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지갑이 '증언'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소설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유치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지갑의 의인화 보다는 사건이 얽힌 방식.
특히 해결을 향해 가면서는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데...싶은 마음에 적잖게 당황.

<모방범>이잖아!!!!


물론 당연히 같은 작가가 쓴거니까 표절이라는 의심은 집어던질 수 있지만;
사건의 동기가 또라이들의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과 사람을 조종하고 싶은 광기어린 욕망이란 점, 
자기주장을 할 때 미디어를 이용하려 든다는 점- 등이 굉장히 간결하게 쓰여져 있었다.
보니까 으음- 92년에 쓰여진 소설이었다. 모방범이 2001년이었나? 
그렇게 시간 순서를 되짚어보니 미야베 미유키는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이유> 발표를 준비할 때, <이름없는 독>을 읽었을 때, 그리고 최근에 <낙원>을 읽었을 때 느낀건데 

미야베 미유키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게 정해져있다. 
사건의 양상, 전개방식은 다양하지만 이야기의 핵심기둥이 작품세계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어느 방향(작품)에서 접근하든 핵심에 다다르게 된다.

나는 <이유>와 <모방범>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소설들은 미야베 미유키가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다루는 방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표하는 작품들.
<모방범>은 아까도 말했듯이 또라이들이 타인에 대한 지배욕구와 타인에게 주목받고픈 욕망에 
제3자들을 해치는 방식이고(낙원)
-이는 엽기적 사건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 나름의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유>는 과거와 현대사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개인들이
인간로서의 당연한 욕망이 좌절되어 엇나간 결과로 사건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화차, 이름없는 독 등)

그리고 그 곁에는 늘 미디어가 있다.

그 때마다 소재는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굳이 나누자면 이렇다. 물론 완전히 대조적이라 할 순 없지만.
결국 사람과의 관계, 사회와의 연결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따로 또 같이, 의 공생관계.

예전에 무라카미 류가 90년 초에 쓴 에세이에서 한 말을 2001년인가의 에세이에서 똑같이 하고 있는 걸 보고 놀랐는데
미야베 미유키 역시 방향은 조금 달라도 맥락은 같지 않나?

바꿔 말하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이 명확할 때 글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읽은 <누군가>는 <이름없는 독>의 전편이다. 이름없는 독에서 슬쩍 언급하고 넘어간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렇게 뛰어나게 재밌지는 않았다-물론 금새 읽었지만.

나의 미야베 미유키 러쉬는 내년에도 계속 될 전망.
낙원 이야기도 해야하는데...흐응.

posted by steadyoung
2008. 9. 22. 15:17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읽힐 때는 왕창 읽다가도 한번 글자가 눈밖으로 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든게 내 독서습관인데,
최근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을 읽으면서 슬슬 다시 본 궤도에 진입중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올해 가장 버닝한 작가로 [화차], [용은 잠들다]를 시작으로
[이유]와 [모방범]에서 불타올라
현재 [괴이]와 [기이한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금 빠져들고 있다.

작가가 워낙 다작을 하는터라 제법 읽는다고 읽어도 좀처럼 두루 섭렵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어찌나 길게 쓰시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긴 하지만
역시나 모방범은 다 읽고나니 진이 빠지더라;;
백야행의 3배정도 되는 분량- 헉헉.

뭐 두고두고 읽을거리가 많다는 점은 어찌보면 버닝을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고
무엇보다 다작에도 불구하고 날림으로 썼다는 인상은 커녕
섬세하게 묘사한 다양한 인간군상이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독자가 헤매지 않고 끝까지 가게 만드는 충만한 긴장감, 책을 덮을 수 없는 흥미진진함이
새롭게 거듭될 뿐이니
어찌 미야베 미유키를 배신할 수 있겠소-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야 습관처럼 소설을 집어드는 편이라 어려운 말 잔뜩 써있는 난해한 소설보다는
재밌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주는 소설이 좋은데
그런 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유익한 휴식을 보내는 최적의 도구이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억지없이 은은히 살아숨쉬는 점이야말로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매력.

브레이브 스토리, 이코와 같은 책들부터
모방범, 이유, 낙원으로 대표되는 추리소설,
이 요소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있는 에도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소설까지  
실로 수많은 소재들을 잡스러운 느낌 없이 깔끔하게 다루는 능력은
아마도 작가의 집필력과 집중력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필요없는 부분이란게 없다.

괴이와 기이한 이야기는 북스피어에서 출판된 책으로
에도시대에 일어나는 말그대로 괴이하고 기이한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가벼운 전래동화 같은 느낌으로- 이동중이나 시간 때우고 싶을 때 읽으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휘익- 빨려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다ㅎㅎ
 
하지만 아직도 미야베 미유키를 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저는 나오키 상을 수상한 [이유]를 추천합니다~
모방범은 너무 길고~ 또라이 범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다소 오락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이유는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면밀한 인물묘사로 균형을 잃지 않고 풀어내는터라
오락적 요소는 물론 현대사회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생각도 덤태기로 얹어주는 책이랍니다ㅎㅎ

이번에 발표를 하게 되서 다시 읽어야 하는데
또 읽어야 하는 압박이 결코 귀찮지 않은,

그만큼 참 재미난 책이랍니다 (>.<)b

posted by steadyoung
2008. 6. 27. 14:45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만화책 다들 보셨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고풍(?)스러운 그림체!
가난한 천재소녀와 대조적인 환경의 라이벌과의 숙명적인 대결!
뒤를 봐주는 왕년에 잘나갔던 선생님과 다정한 친구들,
냉정한데 실은 따스하신;; 재벌2세;;의 키다리아저씨;;적 원조;;와 두큰두큰 사랑!
연예계와 무대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것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대서사시!

뭐, 지금 보자면 다소 촌스럽고 억지스러운 부분도 많지만
전부 다 눈 감아줄 수 있을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남.
마야가 연기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며 승승장구 할 때 마다
닭살 돋아주고 눈물 흘려주는 센스를 동반하시면 배로 재미납니다.

1976년 1회 연재를 시작으로 꽤나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2004년 6년만의 42권 발간 이후로도 완결소식 깜깜...ㅡㅡ^
당시에는 오유경(마야)과 신유미(아유미)라는 이름으로 통했다지요. 하핫

1997년 테레비아사히에서 드라마화! (98년에 시즌2도 방영)
유리가면이 드라마로 만들어진 건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보지 않아도 분명 초초초초 유치하겠지, 하고 내심 깔아뭉갰는데...호홋.
나름대로 재밌게 봤다. 아다치 유미 완전 버닝. 너무너무 깜찍하고 귀엽소.

그 외에 아유미로 나온 여자분(마츠모토 메구미-지금은 리오)을 제외하면
일본 드라마 좋아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한 눈에 알아볼 사람들이 주요역으로 출연.
특히 트릭 심하게 좋아했던(나 같은 ㅋㅋ) 분들은 조연분 관찰하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연기에 눈을 뜨면서 여러 배역을 클리어 해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는데
뒤로 가면서 마야를 시기해 괴롭히는 매니저가 출연과 함께
유치함에 굵게 한 획을 긋는다.
늘 신경쓰였는데...
꼭 저렇게 눈에 띄게 선인에서 악인으로 표정 급변해야해?? ㅠ.ㅜ

어머니 죽는 신파야 만화에서 등장하는 설정이니까 그렇다쳐도;;
그래도 죽은 엄마를 앞에 두고 울면서 연기하는 아다치 유미는 굳뜨.

보면서 내내 생각한 건데
재능있는 인간의 입장에 서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 인간을 시샘해서 내 일보다 그 사람 발목잡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짓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
시기질투에 환장해서 수단 안가리는 모습만큼 꼴불견은 없는 듯 하다.

글고 완전 상관없지만
아다치 유미의 남편은 스피드와곤이라는 오와라이 콤비로 활동중.
전격(데키챳따)결혼! 이었음. 우왕.

posted by stead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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