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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12. 03:30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가 아닌 작가의 책을 읽었음.ㅡㅡ^

공중그네, 인더풀, 한밤중의 행진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작가, 오쿠다 히데오.
짧고 간결한 문체와 독특한 인물들이 인상적인 소설을 쓴다.
그러고보니 세 권을 연달아 읽어서 잠시 쉬어야겠다고 놓은 작가인데
오랜만에 다시 읽었네~



일단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위의 세권도 빨리 읽었지만 남쪽으로 튀어는
두 권을 한자리에서 다 봤다;;
뒤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어야겠다고 자신을 설득한 후
두세줄 씩 마구 건너뛰고 읽었음.
도무지 책을 놓을 타이밍이란게 없다!!!!
개인적으로 오키나와에 흥미가 있어서 더욱 끌렸던 듯.

꽤 오래전이지만 일본도 학생운동이 한창일 때가 있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신 분들은 책에 묘사된 학교 분위기를 떠올리면 좋을 듯.
사회와 무관하게 보이는 젊은이들의 청춘애로물에 불과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실의 시대는 학생운동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지닌 소설이라 본인은 생각함.
여튼, 그 시대를 지나 때는 바야흐로 21세기.
학생운동에 몸을 담궜던 걸로 보이는 아빠와 엄마 밑에서 평화롭게(?) 자란 지로는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알 수 없는 상황전개와 가쓰의 괴롭힘에 방황한다.
주인공을 초등학교 6학년 학생으로 설정하고 거기에 책의 흐름을 맡겼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용.
사실 그런 게 뭐든 독자들은 상관없는데 괜히 어려운 이야기를 잔뜩 써서
머리 아프게 할 필요 없다는 철저한 계산이 돋보였던 장치라 생각된다.
아빠가 뭐라뭐라 말하면 "난 초등학생이이니까 그런거 몰라! 몰라도 돼!!"로
배째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지로. 독자들도 실은 "난 그런거 몰라!!"를 외치고 있을테다.

그리고 결국 도쿄를 떠나는 지로 가족들은 오키나와의 어느 섬에 정착하는데(2권)
이게 또 너무 재밌단 말이지ㅠ.ㅜ

오키나와는 일본의 하와이로 불리며 '꿈의 섬'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 빛의 바다, 무공해 자연
어쩌구저쩌구하는 문구들로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한반도 저리가라 싶은 서글픈 역사를 자랑(?)하는 섬이다.
류큐왕국은 결국 메이지유신 이후 본토에 오키나와를 넘겨주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본토에는 요만큼의 피해도 입지 않았던 일본을 대신해
(히로시마랑 나가사키 원폭은 예외적 성격이라 일단 패스)
미국의 공격과 본토의 나몰라라 정책 및 차별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 살상당하는
'한'이 어린 땅이란 말이다~
지금도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철수 및
미군들이 저지르는 범죄(우리나라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를 놓고 끊임없는 운동을
벌이고 있음.

오키나와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있는데
지로 가족은 그 중 하나를 택해 들어가게 되고
자연과 친절한 주민들을 벗삼아 조용히 살아가려던 지로네 아버지를
또다시 건드리고 마는 리조트 건설업자+이들과 결탁한 의원, 등장!
다시금 전투(?)가 펼쳐진다.

내가 참 가슴이 아려왔던 건,
류큐왕국도 결국 누군가의 지배를 받게 되는 입장이었지만
그런 류큐왕국도 그 주변 섬들을 지배하려 했다는 사실.
오키나와 사람들이 흔히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라 류큐인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물론 요즘 젊은이들은 오키나와는 일본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주변 섬들 사람도 독립적인 입장에 있고 싶어 했다는 것에-
지배와 피지배의 순환과 맞물림을 보며 아~ 귀찮아~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섬 주민들의 인간미와 살아 숨쉬는 자연도 커다란 매력이었지만
역시 이런 지배-피지배의 맞물림속의 인간의 분투가 주는 허망함-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는 세력다툼,
자연과 리조트의 싸움(이건 실제로 많이 있는 일이고, 오키나와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
등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시선으로 편성된다는 것 자체가 주제의식과 직결됨.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이 생각났다.
미국과 헌법9조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소설- 다 읽긴 했지만 별로 재미없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소설로 풀려는 시도는 유혹적인 만큼 위험해서-
재미가 사라질 각오를 해야하는데- 거기에 가장 부합했던 책이지 않았나 ㅠ.ㅜ
(이사카 코타로는 무척 좋아하는 작가임!!)
그러나 오쿠다히데오의 이번 책은, 역시 구멍이 송송 뚫린 부분도(무리한 부분)도 꽤
있었지만 소설의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했다는 점에
저 개인적으로는 커다란 갈채를 주고 싶어용~



일본판 제목은 <사우스바운드> 파란 하늘 아래 시사가 인상적인 표지이군요.



오키나와 갔을 때 길가에 전시된 시사- 공예품들.
강렬한 색채와 귀여운 표정이 인상적이죠~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