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중1이 되서 같이 등하교했던 친구에게 고백했더니
뭔소리야, 하고 면박을 받았다.
그 때의 깨달음, 그 깨달음에 대한 전율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지금도 모르는데,
하물며 그 때의 나란 푸대자루를 걸친 앙상한 빗자루 같은 엉성한 존재였으니.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어, 1학년도 슬슬 끝나가던 그 때,
심심했는지, 뭔 바람이 불었는지 책을 마구 읽기 시작했다.
그 때 집어들었던 책들 중 하나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는데
내가 5학년 때 깨달았던 '엄청난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한 단 한 문장을
그 속에서 발견했다.
제제가 옆집 아저씨에게
"아저씨, 난 속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라고 말하자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제제야, 그건 니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란다."
대충, 이런 대화였음.
아아. 그 깨달음이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마음먹은대로 뭐든 상상할 수 있어'
'머릿속에선 뭐든 일어날 수 있어'
지금 적당한 말들을 찾아보면 이런 느낌들인데, 그 어느 것도 핵심을 짚은 것 같진 않지.
나는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다.
그걸 깨닫게 해준 '책'이란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인생의 친구인지.
책에 대한 애정이 퐁퐁 솟는 요즘이다.
*이건 아마도 내가 책에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책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지금의 일.
한낱 알바에, 남이 멋지다고 치켜세울 위치도 아니고, 회사취업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계속해서 모르겠다고 시치미 잡아떼는 자신의 속내를 향해
확실한 한 걸음을 뻗었다는 확신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