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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제'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9.21 종교문제
2009. 9. 21. 01:50 흥청망청/진지한 얘기

1. 최근에 친구가 나를 '전도'하려고 했다. 한마디로 끔찍했다.
금요일 저녁, 맛있는 중국 요리에 맥주 500cc를 즐겁게 들이키고,
조용하고 저렴한 까페에서 치즈 케익과 칵테일 한잔을 마시고 집에 가려는데
내게 요즘 교회 나가냐고 묻는 것이다. 정녕 오마이갓이로구나.

교회를 제2의 집으로 삼아 매일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는 걸
낙으로 살아가는 이 친구는, 행색은 제3의 패션이요 사고방식도 널널하니
같이 있으면 재밌는 친군데 꼭 이렇게 하나 에러가 난다.
나도 태어났을 때 부터 교회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살아왔으니
종교에 올인하는 그 친구가 대견(?)하기도 하고 너 좋은 대로 하면 되지 않냐는
관용으로 내버려두었으나
내게 전도 운운 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시한번 오마이갓이다.

어느 대형교회에 성도로 등록하기 위해 거쳐야하는 7주간의 과정 중에 배포되는
소책자에 인쇄된 말과 토씨하나 안틀린 말을 읊어대는 친구를 보니
마음속에 착잡함과 회의와 짜증이 뭉게뭉게 솟구쳤다.
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고민하고 있단 말이다!!!!

태어나서 약 25년만에 나는 처음으로 종교의 자유를 집안에서 외쳤고
애초에 소심한 나는 그 따위 안믿어, 하고 단호하게 외치기보다
내게 시간을 달라, 하고 애걸하는 형태로 부모님과의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주어들은 건 많으니 그 친구가 이말저말 해도
다 한 번씩 들어온 말인데,
구원받은 자가 지옥으로 떨어질 자(=바로 나입니다만)를 바라보는
안타깝고 오만방자한 시선을 눈앞에서 보자니
다시 한 번 짜증과 화가 솟구쳤다. 잘났어 정말.

진정으로 기도를 해본적 있냐고 묻는 친구의 말은 가히 폭력적이다.
내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정으로 기도를 한 적도 없을만큼
불성실하게 임해온 것으로 보이나?
내가 그 친구와 소원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 안그랬으면
두번 다시 안 봐도 후회없도록 욕을 바가지로 했을 것이다.

나는 신,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데,
가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매달려서 기도도 해보는데,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없이 내 마음이 안정되는 것도 없이
시간이 흘러서 상황과 마음이 안정되는 경우를 하나 둘 거치면서
대체 무엇을 바라면 좋을지 모르게 되었다.
한비야씨 책처럼, 나보다는 저기 아프리카에서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고
분쟁에 휘말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기는 아이들을 돌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함.

누군가를 전도한다는 말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은
너님부터 잘하세요,이다.
개신교의 비겁하고 비합리적인 점은 뭐든 핑계를 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교회가 싫어, 공동체에서 인간들의 금전적 성적 타락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돼
그런 사람들의 말에 대해 인간은 원래 죄인이니까 그렇고 성경에도 나온다는 말이
대체 누구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진정한 전도는, 자신의 삶이 남에게 깊은 감동을 줄 때 가능하지 않나.
교회에서 이틀 삼일 살 시간이 있다면 독거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더 값지지 않나 싶은데, 지금의 내 머리로는.

나는 '만들어진 신'처럼 철저하게 신을 부정할 의도도 깡도 없다.
'구원'의 힘도 나름 믿는다.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종교인들의 모습은 거룩하고 아름답고,
현실이 힘든 이들에게 주는 위안과 평화야말로 '구원'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전도 운운하며 그렇지 않은 이들을 미개인 취급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오만하고 교만방자한 태도지 않나 싶다.
전도해야겠다고 맘 먹어준 건 고맙지만,
날 좀 더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같이 맥주를 마셔주는게 내겐 구원이다.

+++++++++++++++++++++++++++++++++++++++++++++++++++++++++++++++++++++++++

2. 회사를 안되겠다 정말 그만둬야지 하고 맘 먹은 날,
맞은 편에 앉아있던 사람 좋아보였던 남자 선배가 자기 오늘까지 일하고 그만나온다고 씩 웃으며 얘기했다.
놀라서 되묻고, 이유를 되묻자 '교회에 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번째 오마이갓!!!!!!!!!!

밥 먹을 때 마다 기도하는 건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지만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사실 조금 놀라서 그렇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닌 나도 나지만
한 청년이 교회 갈 시간이 없어서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가는 상황을 제 눈으로
보게 되다니 놀랄 노자다.
친구는, 교회도 못갈만큼 일하는데 돈이 얼마 안되는거 아니냐? 하는 냉소적이고도
정곡을 찌르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착한 나는 순수하게 받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참 종교란 허울좋은 변명도 되주는구나 싶었다.  
종교적 신념-개신교어로 믿음이라 부르는-을 가진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신념, 가치 판단 기준을
매우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사람도 청년 실업이 거세다는 요즘 아무 망설임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
백수가 될지 안될지는 몰라도 당분간 빈둥거릴 아주 거룩하고 숭고한 변명을
갖고 있으니, 참 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블로그에 쓰고 있는 느낌 그대로
비겁하고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어 까고 싶어진다.

물론, 종교적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게 어딨냐고 이해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나는 본인들이 상관할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글쎄,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 나도 주말도 휴일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돈도 많이 안줄 것 같은 이 일이
내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 좀 더 확고하게 그렇게 말하고 그만두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근데 나는 교회 안가면 안되는 인간이라 일을 할 수 없다니,
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판게 아닐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가 회사 다니기 싫은 이유를 종교로 돌린
그의 단호한 자세가 부럽기까지 하다. 
쓰는 것만큼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 우스운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덕분에 나도 허울좋은 구실이 생기긴 했지만,
과연 그는 '주일'을 보장받는 일을 구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삶을 살까?
안됐다 싶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시덥잖은 부르심에 응해야만했던
그의 허여멀건한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두고두고 내 결정을 종교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마음 편한지를 되새길 것이다.
posted by stead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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