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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4.14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 그리고 나1
2009. 4. 14. 15:32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책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감상과 저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그득하니까
      책의 철저한 리뷰를 원하시는 분은 적당히 스킵해서 읽어주세용


 
 일본의 논점 2009에는 강상중씨의 글이 실려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아마도 북한관련이지 않았나 싶다);; 일본인치고는 특이한 한자를 사용하는구나 싶었는데 역시 재일 한국인이었다.
(기고가 중 오선화씨가 있었는데 오선화씨가 쓴 글에 대한 논평이 한겨레 신문에 실렸다.) →보러가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고민하는 힘' 의 출간소식을 보고 그 이름을 한 번 더 접하게 되었다.  '재일 한국인 최초 도쿄대 교수'가 쓴 책을 '일본 100만 독자' 가 읽었다는 책소개와 저자의 약력도 물론 내 흥미를 끌었지만, 저자가 책 속에서 막스 베버나츠메 소세키의 작품과 생각을 살피면서 '고민하는 힘'을 강조했다는 점이 책을 구매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
 
  예전에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를 읽고 나서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 겪는 혼란과 고독, 불안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라잃은 설움', '이유없는 차별'과 무관한 시대에 태어난 나는 아마 평생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 강상중씨 또한 GO의 스기하라와 마찬가지로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항상 고민하며 살아왔다. 넘치는 부모님의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며서도 늘 존재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1972년 '고국'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 도쿄대 교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우익 비판 등 역사와 정치분야에서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연을 펼치고 있다.
 
 성장과정과 독일에서의 화려한(?) 수학경력 때문에 나는 책을 잠시 오해했더랬다. 얼마전에 프레시안과 했던 북 미사일에 관한 인터뷰를 읽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열정적이고 강경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사람일 거라고, 치밀하고 꼼꼼하게 사람을 압박하는 논조로 "고민하라!"고 외치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감을 강상중씨는 단 번에 무너뜨렸다.
 ~하지요. ~하지 않을까요? 의 어미로 끝을 맺는 다정(?)한 말투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끈질기게 되묻는 '고민하는 힘'은 전체적으로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서 다 읽은 지금(분량이 많지 않아요) 살짝 어이가 없다. 이런게 아니지 않아...?? 
 물론 열정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치밀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뭐라고 하면 좋을까... 비뚤어진 한일 양국 역사의 음지-틈새에서 아프게 자라난 '재일 한국인' 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울분과 한, 그런 감정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독자들을 자극시키는 책이길 은연중에 기대했던 내 기대가 너무도 깨끗하게 껶여서, 어안이 벙벙한, 그런 느낌이다.
 삶이란 하루에 부드러운 황혼이 드리워질 무렵,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로 얼룩진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화만 내기보다는 그 일이 내게 주는 의미를 '고민'하는 지혜로운 사람. 내공이 착실히 쌓인 '인품'에서 퍼져나오는 강인하면서 부드러운 사람의 냄새. '재일 한국인'이기에 터뜨릴 수 있는 분노를 '고민하는 힘'으로 승화시켜 아름답고 실한 열매를 맺은 자의 애정어린 충고가 이 책에 있었다.
 
 친구와 가끔 왜 우린 이런 일까지 고민하는 걸까, 왜 우린 이런 일에서까지 의미를 찾는 걸까, 자조섞인 쓸쓸한 물음을 던진다. 10대 때는 대학입시에 치이고 20대 때는 경제위기와 청년 실업에 치여서 고민할 시간마저 빼앗긴 채 앞으로 앞으로 나가야 하는 지금 내 나이 또래들(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지만). 고민할 필요성을 부정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럴 필요도 못느낀채 부지런히, 살벌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도 그들처럼 '왜'라는 의문을 잠시 덮어두고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왜냐는 물음을 사방팔방에 던져 돌아오는 것은 '나는 남들보다 뒤떨어져있다' 는 바닥을 모르는 늪같은 절망감 뿐이다. 왜 좀 더 토익점수를 올리지 못했을까-남들 다 하는 900을 채 못넘긴 나는 멍청한가, 왜 그 때 그 회사를 선택하지 않았을까-내가 뭐 잘났다고 더 높은 연봉을 바라는걸까, 왜 지금 나는 회사입사를 준비하지 않는걸까-언제까지 이렇게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하는 자책과 자괴감이 '고민'하는 힘으로 던진 물음에 대한 날카로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칼을 맞는 내 마음은 슬프고 아프다.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 눈에 쫓겨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보다는, '꿈'이라는 단어가 다소 입 밖으로 내기 부끄러워도, 포기하지 않고 그 꿈을 발견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화를 이루고 싶었을 뿐이다. 돈은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타인의 시선보다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 을 믿고 실감하고 싶었다. 
 
 나는 멋지게 말하면 '나 자신을 믿을 힘'을, 
 어찌보면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 책에서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시도는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끝났다.
 아! 이 책을 읽고 나의 인생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와 같은 멋진 말을 하기에는 책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지금의 나는 '내 길에 대해 방향을 잡고는 달리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는 시기'에 있다는 것, 그리고 고민하는 성격은 평생 벗을 수 없는 옷 처럼 나라는 인간에게 딱 붙어있으니 잘 부둥켜안고 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세기의 전환점에서 고민하는 힘을 포기하지 않고 현실과 씨름했던 막스베버와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과 일화를 통해, 고민하는 힘(걱정이 아니라)을 부둥켜안고 사는 일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확신하게 되어 굉장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연륜과 인품에서 완숙미가 물씬 느껴지는 강상중씨의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젊은' 꿈도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도 쉰이 넘어 내 인생의 노을을 맞이했을 때, 치열했던 낮을 웃으며 돌이킬 수 있는, 저물어갈 밤을 조용히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꿈을 이루어가는 힘은 '고민하는 힘'의 일부이며 '고민하는 힘'은 삶을 아름답게 쌓아가는 힘과 연결되어 있다. 삶을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아름답게 죽는다는 말과 동의어이며 그 모든 힘의 총집합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의미',
즉 '나'이다.   
  

posted by stead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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