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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21. 11:15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고 있다.
펭귄뉴스를 읽었을 때가 작년 이 무렵이었는데,
일년 후에 내가 김중혁씨 책을 또 읽을 거라고는 생각안했다.

++++++++++++++++++2008.3.22

난 유치해서 눈에 그려지고 손에 잡힐듯한 스토리가 없으면
지루하게 느껴질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는 건 잘 못하겠더라.
재밌게 느낀 순서도 어떻게 보면 '집중력'과 비례할지도 모르겠다.
무용지물 박물관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문장을 꼼꼼히 읽었는데
펭귄뉴스는 잠에서 부시시 깨 휘릭휘릭 페이지 넘기기에 바빴으니까.

내가 한국소설 재미없다고 투덜투덜댔던 건 2003,4년쯤인데
결국 게으른 탓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완전히 잘못된 얘긴 아니지만. (→똑같은 얘기 일년전에도 했네...어제도 했는데ㅡㅡ^)

무용지물 박물관에서는 메이비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메이비라는 가수 있지 않나? 어감도 그렇고 그래서
길게 뻗은 생머리를 찰랑이며 높은 콧대를 뿡뿡대는 어여쁜 아가씨를 생각했는데 묘사중에
덥수룩한 수염에 낮은 목소리,,,라고 해서 헉! 하고 놀랐다.
단어에도 고정된 이미지가 따라붙어있으니 이거 참.
참으로 '상상력'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방주에서 개념을 발명하고 살아가는, 하지만 필요는 없어서 정작 제작은 하지 않는 이눅씨도 재밌었고
(진짜일까? 물론 진짜겠지?) 나무로 만든 지도. 눈을 감고
울퉁불퉁한 면을 만져 해안선을 따라가는 말도 안되는 지도.
때로는 공간을 바꾸는 것 만으로 모든게 바뀐다는 삼촌이 보낸 그 지도.

한줄한줄 문장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고, 나는 이 소설이 꽤 좋았다.

+++++++++++++++++++++++++++++++++++++++++++++++++++++++++++++++++

꽤 좋았다고 해놓고 실은 그렇지도 않았음.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악기들의 도서관'은 정말 꽤 좋다.
펭귄뉴스가 그랬듯 단편소설 모음집인데, 난해했던 요소들이 적절한 농담으로 대치되어서
때로는 쿡쿡, 때로는 낄낄, 지하철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오늘 아침에 읽은 '악기들의 도서관'이 굉장히 좋았는데,
예전에 보았던 영화 '원스'의 정경과 음악이 떠올라 둘이 부드럽게 융화되었다.

원스에서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둘이 악기점으로 들어가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인데,
악기들의 도서관 또한 공간적 배경이 악기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나보다.

하지만 단순히 '악기점'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같다는 사실외에도
'원스'의 억지스럽지 않았던 과정들-주인공들의 '사랑'이 아닌 '공명', 만남과 헤어짐, 그런 것들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겪는 여러 굴곡과 악기, 소리들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느낌.
영화와 소설의 물 흐르듯 흘러가는 '과정들'이 참 편안하고 보기 좋았다.

사고가 나고, 갑자기 일상이 정지되고,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예전처럼 똑같이 되돌릴 수는 없고,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며 그저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반복되고,
어느날 갑자기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어 열중하며
새로운 '일상'이 다시 펼쳐지는 그 무수한 과정들.

나는 그래서 결국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악기점에서 소리에 열중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참 행복하지 않을까 상상해봤다.
드라마같이 알기쉬운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이 외에 또 어떤 진실같은 해피엔딩이 있을 수 있겠어?
 
내 삶의 끝도 악기들의 도서관 같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조만간 원스를 다시 보고, 오늘 집에가면 노래를 MP3 플레이어에 넣어놔야겠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