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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24. 08:48 흥미만만/영상의 기억

 내가 최근에 본 일본 드라마는....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최근에 본 드라마가 별로 없다. 성격상 드라마는 한 번 보면 끝장을 봐야한다. 드라마를 한 번에 다 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니까 쉽게 볼 수 있도록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아니면 중간에 그만둔다. 재밌게 봐도 보는 내내 허리 아프고 삭신이 쑤신다. 힘든 일이다.
 그리고 요즘 드라마는 대체로 볼 맘이 안난다. 꾸준히 드라마를 보는 친구 말을 들어보면 분기 당 재밌는 드라마가 반드시 한 두개는 있던데 한살 두살 나이를 먹을 때 마다 옛날 노래가 좋고 옛날 드라마가 좋고 그런걸까. 근데 어제 2NE1 CD를 살까말까 고민하고 오늘 출근하는 전철에서 박재범이 있을 때의 2PM 무대를 보면서 감상에 젖는 걸 보면 난 아직 철이 덜들었거나 뼛속까지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대중임에 틀림없다. 

그저께, 가장 우려했던 방식으로 추석을 보냈다. 일어나서 밥먹고 프렌즈를 복습하다가 12시부터 일드를 보기 시작했다. MOTHER이라는 드라마. 이건 프리토킹 쌤이 추천해준 드라마로, 보는 내내 울었다. 중간부터는 우겨넣은 전들이 일으킨 소화불량에 눈물을 너무 흘려댄 까닭인지 두통까지 몰려와서 다 본 뒤 두통약과 소화제(환)을 씹어먹었다. 엄마가 손을 따줬다.

이야기는 약 한달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프리토킹 시간에 일본 고령자들이 생존여부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의 최고령자로 알려진 여성의 행방불명을 계기로 조사가 시작됐는데 다른 고령자들 또한 사망했거나 혹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게 문제가 되었다. 가족들이 연금을 타기 위해 신고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포함해 관공서의 태만한 업무가 입방아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걸 다룬 일본 뉴스를 보고 놀란 건 최고령자 여성 가족의 인터뷰를 봤을 때였다. 

인터뷰를 받은 건 최고령자의 딸이었는데, 딸이라고 해도 이미 나이가 70이다. 어머니 어디가셨냐고 묻는 리포터의 질문에 몰라요- 하고 문을 닫았다. 어머니가 100살이 넘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모르면 행방이 아니라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죽었으면 어떡하지? 누가 장례를 치뤄줬을까? 아무리 그래도 부모의 생존 여부는 알아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꺼내자 쌤(일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그런가요?
오랜 세월 동안 연락을 안했다면 이제와서 가끔이라도 연락을 취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애시당초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아무리 자기를 낳아준 사람이라도 소원해지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뭐 요약하자면 그런 말이었다.

아무리 부모 자식의 관계라지만 안맞는 경우도 있고 개인의 사정이란게 있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부모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어도 장례를 치루거나 장례에 참여하는게 도리라고 본다 뭐 내가 말한 건 대충 이런 내용이다.
그 다음 시간에 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물어봤나보다. 근데 다들 나와 비슷한 얘기를 했겠지. 그랬더니 얼마 뒤 수업 시간에 다뤄진게 바로 이 드라마였다.

Mother은 일본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아동학대를 다룬 드라마이다.
삼십 대 중반의 여자 주인공이 홋카이도 무로란에서 재직하던 학교에 조금 특이한 여자아이가 한 명 있다. 알고보니 친모와 친모의 동거남에게 학대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검은 비닐 봉지에 쌓여 버려진 걸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리고 오자 아이는 '아기 포스트(그냥 버려지는 아이가 죽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병원 등에 설치되었다. 아이를 놓고 가면 자동적으로 벨이 울리고 사람들이 아기를 데리고 간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여자 주인공은 아이가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은 것 처럼 일을 꾸미고 몰래 도쿄로 데리고 온다. 여자는 자기 집에 연락을 하거나 '페를 끼치는 걸' 극도로 꺼리는데 사실은 입양된 아이기 때문이다. 친모에게 다섯 살 때 버림받은 기억을 갖고 있다. 그 후 2년 동안 고아원에 있다가 여자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어느 어머니의 집에 입양되었다. 이 여자가 아이와 함께 지내는 동안 우연히 친모와 재회를 하는데, 여자는 한동안 자기의 친모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자기가 버려진 사실을 털어놓기도 한다.

쌤이 회화시간에 이야기한 건 그 여자아이를 학대한 친모의 이야기였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직 아이의 아버지가 살아있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몇 년 간 열심히 일하고 아이를 키웠던 친모가 학대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과정이 짤막하게 그려져 있다.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고, 떼쓰는 아이를 혼낼 기력도 없어진 상태에서 한 번 버리려다가 실패한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같이 살게 되고, 그 남자를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남자의 학대를 눈감게 되고 자기도 학대를 하게끔 발전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친모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그린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쌤이 그 여자 주인공의 친모 이야기는 쏙 뺐지 뭐야! 그 드라마는 결국 여자 주인공이 학대받은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자기를 버린 친모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중점을 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친모가 여자를 버린 이유 또한 엄마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딸에 준, 자기인생을 희생한 결과의 다른 이름이었다(딸이 다섯 살 때 폭력적인 남편을 살해해서 엄마가 불을 지르고 자기가 했다고 밝혀 형무소에서 복역함).

결국 이 드라마는 아이의 친모처럼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외로워도 그보다 더한 상황(여자 주인공의 어머니)에서 자기 자식을 지켜낸 사람도 있는데, 하는 대비구도를 통해서 어머니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지키는, 지켜야하는 존재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자식을 버렸다'고 해도 그 속사정은 다르다는 것. 자식과 부모란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야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쌤이 왜 mother을 나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는지 궁금하다. 딱히 쌤이 몰인정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내가 유별나게 도리를 중시하는 인간인 것도 아니다(엄마가 고등학교 때 넌 애가 냉정하다고 뭐라 한 적이 있다;;).
쌤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모른채 그저 부모를 모른채하는 자식은 나쁘고 자식을 버린 부모는 나쁘다고 말하는 건 가벼운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다르다. 그 가벼운 생각들의 이루어진 아주 얇은 보호막은 이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부모 자식간의 관계만큼은 설사 그게 가벼운 생각이라고 해도 당연히 서로를 사랑해야만 하는 관계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건 좀 더 조심스러운 일이다. 다만 부모 자식간의 도리를 지키려는 풍조가 암묵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지금 이 사회가 나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닌 사람들도 많이 있는거 안다. 쌤은 내가 집안이 어려웠어도 부모님한테 사랑받고 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된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성인이 된 이상은, 자기를 낳아준 사람을 부정하기 보다는 되도록 인정하는게 맞다고 본다. 내가 어렸을 때 돈 없었다고 언제까지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가 날 버렸다고 원망만 하기에는 자기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엄마를 보며 든 생각이다. 아버지를 용서한.
드라마는 내내 울었지만 결국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드라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역이 연기 넘 잘한다. 오히려 저렇게 어린 애들이 연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안좋지 않나....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