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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0. 20. 00:08 흥청망청/가벼운 수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했던 여자애는, 검사가 꿈이라고 했다. 솔직히 검사가 뭔진 모르겠는데 별로 재밌을 거 같진 않아서 나는 천진난만하게 되물었다. 왜? 그거 재미없을 거 같은데?

그랬더니 그 친구가 매몰차게 되받아쳤다. 넌 일을 재미로 하냐?

이것이 과연 중학생 입에서 나올 말인가...하는 건 접어두고, 그래서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잘 모른다는 거다.
그리고 잘 모른다는 건 그 친구가 적어도 사법고시에 합격한 건 아닐거라는 추측을 하게 하는데, 왜냐면 붙었으면 아주머니가 울 엄마 미용실에 와서 거기 손님들 귀에 못이 박히게 자랑했을테니까- 국내 굴지의 대학교를 재수해서 들어가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꽤나 높은 자리에 계신다는 분의 자!제!님하교 교제를 했을 때는 잘만 들어오던 그 아이의 소식이, 아주머니가 요즘 통 미용실 안오시는 덕분에 잠잠하다.

이런식으로 빙빙 돌려서 비꼬는 나도 참 작고 치사한 건 아는데, 그 아줌마가 우리 미용실에 와서 딸 자랑 늘어놓으며 울 엄마 주눅들게 만들었을 순간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소심하게 비꼬고 마는 나 자신이 참 상냥하고 착하게 느껴진다.

음, 근데 내가 싫었던 건 그런거다. 엄마가 그 친구 손을 잡고 "하나님은 그릇이 큰 자에게 시련을 주셔" 뭐 이런 류의 충고를 하고 그걸 내게 들려주는 바로 그 순간들. 지금은 비록 '모진 고난과 시련'을 겪는 중이지만 걔는 원래 그릇이 크니간 그걸 극복하고 반드시 '크게 쓰일'거라는 뭐 그런 류의 말이다. 으, 지금 쓰면서도 닭살이 돋는다.
그 때 마다 엄마가 나한테 그릇 커지라고 우회적으로 말하는거 같아서 개구멍에 숨어들고 싶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편협한 인간인지 잘 알고 있는데, 그런 식의 기대를 요만큼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릇이 작은 인간은 작은 인간답게 세속적이고 속물적으로 돈을 중시 여기며 사는게 도리에 맞고 이치에 맞고... 뭐 그런거. 하나님도 내가 그릇이 작은 걸 알고 그닥 큰 시련과 고난을 안주시니 나는 크게 쓰이지 않고 누군가 급할 때 물이나 떠먹는 용도로 쓰는 그릇으로 족하다.

그래도 지금 사는게 재미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먹고 싶지도 않은데 꾸역꾸역 밥을 쑤셔넣는 기분으로 참아내는게, 그런 엄마의 세뇌덕분(?)인 걸 알지만, 근데 영 편하지 않다. 
어쩌지. 사는게 재미가 없다. 영, 재미가 없다.

얼마전에 내 심장을 쏴라, 를 읽었는데 다 읽고 신경질이 났다. 이 책은 이렇게 재밌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재미가 없지.
어불성설인건 알겠는데 그렇게 느꼈는걸 어떡해.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쁘게 만들어봤자 그런 순간이 지나가면 또 반복된다. 게다가 나는 내가 적당히 행복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누군 일자리 없어서 죽겠다는데 나는 일본어 수업도 늘고 과외도 안끊기고 끊길만하면 또 알아서 들어오고 밥 못먹고 살 일이 없다. 행복의 기본적인 요소 중 중요한 부분이 채워져 있다.
근데 어쩌지, 사는게 재미없는 건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일,이주 더 버티면 다시 즐거울 수 있을 거다. 계발의 11월이네, 여행을 가겠네 뭐 그런거.
근데 재미도 없고 의욕도 없는 순간들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계속될거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렇게 우울한 건 아니다. 그냥 여드름이 난 거 처럼, 사소하게, 줄기차게 재미없는 거 뿐이다.

이건 특효약이 있는 건지, 아님 그저 내 마음을 평생 컨트롤해서 해결해야 할 문젠지.
내가 아직 젊어서 그런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그걸 어떻게 써먹야할지를 모른다는 건, 확실히,
문제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