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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0. 00:18 흥미만만/영상의 기억

'웃음의 대학' 리뷰를 읽다가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가
미타니 코기의 작품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중학교 때 봤으니 본지 10년이 넘어 자세한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녹음실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생중계'하는 느낌이야말로
'미타니 코키 월드' 아닌가. 과연 흠흠.

미타니 코기라 하면 나의 일드 베스트 뽜이브 중 단연 상위를 차지하는 드라마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모든 극본을 담당한 극작가로,
잘 모르시겠다면 옛날 드라마 임금님의 레스토랑,
그리고 2004년의 신선조(신센구미) 를 집필했다는 설명을 친절히 덧붙이겠음.
그 외에도 당연히 많은 드라마와 연극 극본을 썼고, 가끔 책도 내고
내키면 연기도 하는(극단에서 연기를 하기도 했음) 멀티(?)작가이다.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후루하타 닌자부로'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천재적인 형사가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리해서 검거한다는 평범한 추리물이다.
물론 CSI와 같은 과학수사를 생각하면서 이 드라마를 보면
추천한 내게 돌팔매질을 해도 마땅하고 생각하겠지만,
이 드라마의 묘미는 과학적 수사가 아닌,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데 있다.

범인은 드라마 초반부에 어떤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후루하타 닌자부로(형사이름임)가 짜잔 등장해서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수상한 범인과 말로 실랑이를 벌인다.
당연히 시청자는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에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범인을 '궁지로 몰아가는 과정을 즐겨야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불안하니까 괴팍한 성격의 형사와 덜떨어진 부하를 덧붙여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는 보험도 들어놓았다.
(물론 범인이 완고하게 부정하면 물리적 증거를 내밀기도 함)
어쨌든 깐깐하고 고집세고 괴팍한 후루하타가
범인과 쉴새없이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 드라마의 매력이 있고,
형사물이라는 장르를 택하고도 상황극이라는 형식을 잘 살린
'미타니 코키 월드'를 무려 3분기+SP까지 듬뿍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즉, OO라는 장르를 택해 상황극을 벌이는 형식이 미타니 코키의 특징인데,
이를 '웃음의 대학'에서 여지없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 시나리오를 각색해서 연극으로 올린 적이 있는데,
황정민씨가 주연을 맡아 굉장히 좋은 평가와 반응을 얻은 걸로 알고 있다.

사실 '웃음의 대학'은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면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순 없는데,
대체 츠바키(이나가키 고로)는 왜 갑자기 군대에 가는 것임?
웃으면 안되는 시대적 배경으로 웃기고 싶은 작가와
민중이 웃는 걸 두고 볼 수 없는 검열관의 실랑이를 그린다는 건 참 기발하지만,
딱히 복선도 없이 갑자기 휙 군대가서 연극을 못하겠다는 마무리는
참 책임감 없다고 생각했다.
야쿠쇼 코지도 웃다가 울다가 화내는 장면에서 소름 쫙 돋았는데
군대간다고 경례하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의 심술벌레가 꿈뜰거렸다.
미타니 코키는 십중 육칠 결말따윈 아무래도 좋은가보다 싶다.

하지만 중간의 상황들이 주는 잔재미가 너무 풍성하다.
정확히 말해서 실랑이를 벌이는 한줄 두줄의 대사들이 쉴새없이 고쳐지는 과정인데,
진지하고 엉뚱한 캐릭터와 절묘한 말장난의 결합은
때때로 완성도의 결함도 눈감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같은 경우.

봉태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다시 공연을 한다는데
시간이 되면 보러가고 싶군여.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