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teadyoung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0. 8. 26. 10:20 흥미만만/마음의 양식

런던이라면 물가가 비싸고 음식이 맛없고... 하는 이미지 밖에 없고(아는 것도 없다),
영국이라면 해볼거 다 해보고(역사적으로) 이제와서 신사인 척 하는 재수없는 이미지 뿐이었는데
요즘 두 권의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고 있다. 영국, 특히 런던에 대해 큰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가장 큰 계기가 된 책은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
이거 참 재밌다. '사람책'이란 건 말 그대로 책을 읽듯이 사람을 대출해서 그 사람의 인생과 생각을 대화를 통해 '읽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이벤트로, 처음 했을 때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꾸준히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일기장 같은 얄팍한 여행기라면 딱 질색이고 정보가 필요하면 대형서점에서 눈으로 훑어보고 마는데
이 책은 런던 여행기, 런던 소개서와 같은 책들과는 달리, 영국에서 뿌리박고 있으면서 여타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의
생생한 말을 통해 영국과 영국인들의 특징을 드러낸다.
어느 레즈비언이 꾸준히 이 사람책 이벤트에 참가하다가 어느 날 사춘기 때의 청소년 4명이 자기를 지목한 걸 알고 걱정했단다.
한참 호기심이 많을 때라 분명 무례한(?) 질문을 퍼부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날도 올 줄 알았다며 맘을 굳게 먹고 나갔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만나보니 그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학교 생활 등등을 물어봤다. 얘기를 다 들은 뒤 모두가 한 친구를
격려하며 하는 말이 "거 봐. 게이로서의 삶도 그다지 나쁜 것 같진 않잖아."
이 대목에선 나도 눈물이 핑돌았다. 흑흑 이쁜 아이들.    

이런 감동은 물론이고 책 곳곳에서 영국 사회의 단면들을 들여다보게 됐는데, 그게 참 인상 깊었다. 
딱딱하고 고지식해서 피곤해도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꼬장꼬장함이 귀여운 사람들. 그걸 한 번 더 자세하게 확인한게
그저께 읽은 '런던 홀릭'

사실 제목이 너무 단순해서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이런 책은 집어들어서 계산대에 내밀때(어차피 온라인으로 주문했지만)
조금 부끄럽다. 이도 저도 안보고 그저 런던에 환장한 인간같이 보이잖아! 뿐만 아니라 센스 없다는 생각도 들고.
뭐 어쨌든 영국 건축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대학원에서 예술 어쩌구를 공부하는 전직 기자의
생활담인데, 작가가 들려주는 영국, 런던 이야기에 그만 휘리리릭 빨려들어갔다. 그 사람 많은 급행전철에서 가방을 들고 메고
책 세권이 들어있는 봉투를 짊어지고 책을 계속 읽었으니 말이다.
무난하게 재밌고 잘 읽히는 책이다. 책을 소개한 문구 그대로 런던에서 생활을 하는 이의 '리얼 체험담'이다.
단순히 런던을 잠시 스쳐지난 이들의 일관성 없는 독백을 사진과 함께 쏟아낸 성의없는 책이 아니라는게 좋았다.
나의 런던에 대한 흥미는 더욱 커졌지만, 도대체 집세가 270만원에, 주민세가 14만원에, 등등 드는 돈이 그렇게 많아서
어디 잠시 살아볼수나 있겠나 ㅠ.ㅜ 외국인에게 취업비자도 잘 안내주려고 하면서 흑흑.
(새삼 영국과도 워킹 홀리데이 비자 취득 협정을 맺은 일본이 부럽)

그니까 즉, 나도 런던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이다.
말그대로 '선진국'이다.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제도와 발상이.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의 기준은 굶어죽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며 모두가 서로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뭔 짓을 해도
모른 척 해주는 무관심과 나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한 보장인데, 한국사회는 이 기준으로 봤을 때 셋 다 부족하다!!!
일본은? 우리보단 좀 낫다. 하지만 우린 좀 와일드하다 보니 관심은 많아도 그냥 넘어가는데 그 쪽은 무관심한 척은 잘하지만
꼬장꼬장해서 뭘 하든 자유롭지가 않다. 그니까 도토리 키재기다.

그니까 외국에 가고 싶다고 난리치는 이유를 '사상 체험&전환'으로 들게 된게 정확히 '사람책'을 읽은 뒤다.
아, 나도 이 모든 걸 가서 느껴 보고 싶다. 정말로.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