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4. 10:44 카테고리 없음

아래에 이어서.

셋째. 지난 달 수업을 같이 들었던 남자 대학생, 편의상 길동군이라 부르자.
이번 달도 같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길동군이  좀, 싫다........
이런 타입의 사람들이 가끔 있다.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막막한데...

지난 달에 처음 회화 수업을 들었을 땐 쫌 서먹서먹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얘기도 하고, 친해졌다고 하긴 그렇지만 화목하게 지냈다. 한 명하고는 페이스북에 등록해서, 내년에 호주에서 만나기로@
근데 길동군은 쉬는 시간이라고 함과 동시에 이어폰을 들고 밖으로 쌩 나가버린다. 그럼 나는 그걸 보고 생각한다. 아, 길동군은 자기한테 말을 걸지 말라는거구나.

원어민 쌤이 주말에 뭐했냐, 어제 뭐했냐, 이런거 물어본다. 나도 회화수업할 때 꼭 물어본다. 선생님이 학생이 뭐했는지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는거 아님. 말 좀 하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다들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있겠어. 똑같은 일상.
근데 길동군은 딱히 없다. 아무것도 안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그거에 대해 잘 모른다, 이렇게 대답한다.

한 번은 원어민 쌤이 성의없는 대답에 살짝 열받은 것 같아서 ㅋㅋㅋ 이건 회화수업이니까 진짜 그렇게 생각안해도 대답을 하라고 했다. 신기해. 잘 못알아들어도 화가 난 사람의 머리에서 스팀 오르는게 눈에 보이는 것 같다ㅋㅋ
여튼 쌤의 맘 완전 이해함 대답하기 싫음 수업 듣지 말라고! 이건 회화수업이니까 말을 하란 말이다!!!하는 생각을 할테다. 나도 그러니까ㅋㅋ

나는 재패니즈 티처라고 소개를 했었고, 길동군은 영어수업과 일본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가 말을 하다가 나한테 일본어를 배우면 되겠네~ 하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예스라고 했다. 거기서 정색하고 시간 없어요~ 이럴 건 또 머임... 근데 아니나 다를까 길동군은 정색하고 노땡큐란다.

야, 나도 싫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길동군이 하는 영어를 잘 못알아듣겠다.
발음이 좀 특이하다. 일단 미국식은 아니고, 영국식 발음을 많이 들은게 아니라서 영국식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정말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ㅠ.ㅜ
보면 영어는 곧 잘 하는 것 같은데. 문장도 잘 구사하고 어려운 단어도 곧잘 사용하고 근데 왜 나랑 같은 레벨??  
여튼 원어민 쌤은 무리없이 들으니 이건 내 내공이 부족하다고 하는 수 밖에.

나는 (내가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에 대해) 남들보다 못하는 거에 좀 민감해서, 굉장히 자존심 상해하고 창피해하고 그걸 계기로 노력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열등감에 시달리고 비참해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거기다 대고 박칼린 처럼 소리소리를 질러대면  나에게는 가능성이 없구나 다른 걸 해야지 하고 아예 포기해버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나도 춤추게 한다 ㅋㅋㅋㅋㅋ

즉, 길동군의 존재는 나를 두시간 내내 번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불편해.

그래도 나랑 직접 파트너 되는 일 없이 잘 지냈는데(?) 어제 길동군이 내 옆에 앉았다. 앉는 순간 안좋은 느낌... 첫시간 수업은 파트너랑 하는게 아니라서 괜찮았는데 두번째 시간은 파트너 시간. 난 길동군이 하는 영어를 못알아들으니까 대화가 성립될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뭐라는 지 잘 모르겠어...ㅠ.ㅜ

게다가 두번째 시츄에이션에서 지시사항을 읽고, 내가 엄마하고, 니가 아들해, 하고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길동군이 저 건너편에 앉은, 자기 파트너와 한참 이야기 중인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거다!?? 예상 밖의 상황에 다들 잠깐 놀랐음. 길동군을 향해 말하고 있던 나는 뻘쭘했음.
길동군은 자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끝나자 날 보고 뭐라고 했니? 하고 묻는다.
사실 말도 하기 싫었는데 그냥그냥 하는데... 역시나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대화가 성립이 될리는 없고... 책에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고 싫다는 얘기를 하라는데 댓번에 싫다고 하니깐 대화는 단절되고... 아아아 

나는 길동군이 정말 불편하다. 눈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점과 수업 분위기를 얼게 만드는 점이 너무 싫다.
사실 어딜 가도 사람들 좋아할 것 같은 타입은 아님... 괜시리 사람들이 피할 것 같은 타입.
그걸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더  길동군을 불편해하는 내 작은 그릇이 날 우울하게 만든다.이 사람이 좀 이상해, 하는 걸 알면서도 따뜻하게 대해 줄 만한 그릇이 못되는 점, 아니면 그냥 이상해~ 하고 고민없이 피해버리는 그 두 지점이 부러운데 그 가운데서 서성이면서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모두가 싫어하는 비범한 아이를 상냥하게 대해주는 멋진 급우가 나오는데, 난 늘 그런 급우가 되고 싶었다. 근데 그 아이를 괴롭힐 깡은 없고, 그냥 싫어서 피하기만 하는 만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지도 않는 배경 인물로 전락하는 셈이다ㅋ

근데 어쩌지.
나는 길동군이 쭉 불편할 것 같다.
금욜에 어떻게 하면 옆에 앉지 않아도 될지 고민중이다.

posted by stead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