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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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어회화 수업을 끝내고 나니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첫째, 강의실을 나선 순간 오늘 내가 말한 문장들이 오버랩되면서 무력감에 휩싸인다. 문법 실수가 많았을 때는 밀려오는 화를 잠재우기 위해 소리라도 버럭버럭 지르고 싶다. ㅋㅋㅋ
남들 문법 틀리든 말든 신경 안쓰지만, 즉 다들 내가 문법을 틀리던 말던 별 신경 안쓰겠지만 그냥 너무 쪽팔린다. 문법적 실수는 절대 하고 싶지 않거든!!
뭐 어제 틀린 건 다신 안 잊겠지만 그래도 실수 하고 싶지 않다...
둘, 이번 수업은 열혈 학생이 좀 많다. 나도 좀 열혈에 속하지만 날 웃도는 열기! 게다가 어제 주제는 pro and cons, 찬성반대.
쌤이 칠판에 적은 주제는 혼전동거와 게이의 결혼. 쌤이 준 쪽지 사인에 맞춰 찬성을 해야하고, 반대를 해야한다. 난 둘다 찬성하는 쪽에 걸렸고, 둘다 찬성하므로ㅋ(찬성이란 말도 웃기다고 생각함ㅋ 모두가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되도 않는 영어로 열심히 말했다.
문제는 쉬는 시간, 이미 결혼하신, 나 같은 딸이 있을 것 같은 여자 A하고, 어린 아들이 있는 B 사이의 의견충돌. 요약하자면 이런 얘기.
비씨는 상대방에 대해서 적당히 포기하는 부분이 없다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참는데도 마지노선이 있다는 것. 내가 보기에 그건 아주 사소한 습관이나 버릇에 대한 얘기 같았다. 안고쳐지는 걸 어쩌라고. 같이 살려면 포기할 수 밖에. 라고 나도 일정부분 동의하는 부분.
마지노선을 넘는 건, 내가 생각컨대 알콜중독, 도박중독, 바람, 가정폭력과 같은, 텔레비전에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곳곳에 산재된 그런 남편들.
그런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내가 보기엔, 무리다.
일단 그런 사람들에게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내가 옆에서 해대는 소리는 모두 뻘소리.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너무 힘든 일.
자기도 변하고자 하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성심껏 도울 순 있겠지만... 반복되면 결국 떠날 것 같다.
예전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잠깐 만났는데 너무너무 끔찍했다. 지금까지도 끔찍한 기억이다. 근데 그런 사람과 살라고? 허걱.......
근데 열혈에이씨 왈, 남을 변화시키기 전에 자기가 변해야해요. 포기하며 사는 여자의 인생은 너무 비참한 인생이예요.
이건 마치 교회 집사님 포스. ㅡ_ㅡ~띠용~띠용~
내가 보기에 에이씨의 반응은 쫌, 오바다. (하도 변하라고 설교를 하는 통해 살짝 열이 받은 것 같은)비씨가 예로 든 건 변기 물 안내리는 습관. 그런건 정말 포기할 수 밖에 없지 않나ㅋㅋ 내가 몸을 파르르 떨며 내 동생한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잘 못고치던데...ㅋㅋㅋ 그랬더니 에이씨가 그런 건 기본이지, 하고 일축하고 또 열심히 자기가 변하면 남편도 변한다고 설파...
둘의 이야기의 핀트가 안맞아!!! ㅡ_ㅡ;; 중간에 껴서 난처한 우리들...ㅋㅋ
중간에 들어와서 어리둥절하고 민망해하는 원어민쌤 ㅋㅋㅋ
글쎄, 에이씨가 나보다 적어도 20년은 더 사셨을테니 산전수전을 겪어도 더 겪었을 테지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에 과연 고난이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들의 불행과 고생을 저울로 재서 수치화 할 순 없지만, 남편과 같이 2주동안 해외여행을 할 정도의 인생이면, 그 시간에 영어학원에 와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인생이면, 그럭저럭 살만한 삶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이것도 나의 독단과 편견임) 자기가 설정한 기준치에 못미치는 사람을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경향이 있다. 마치 자기 딸이 신랑감을 데리고 왔는데 대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를 한다거나... 뭐 유치하게 예를 들자면 그런 것.
걸러내는 필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격 인격 환경 배경 무난한 사람들만 남아있기 마련. 필터가 별로 없는 사람일수록 괜찮은 점 하나만 보고 압도적인 단점들을 못본척 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극명한 단점들과 성격차이에 괴로워하며 인내심 테스트를 수십번 거쳐 파경에 이르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결국 '포기'를 통해 비참한 삶을 살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필터가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희생했고, 훨씬 더 노력했다. 그저 단지 약지 못했을 뿐. 나는 사람에겐 다소 미련하게 구는 사람들이 더 좋다.
결국 좀 더 어린 비씨가 자기 의견을 굽히는 걸로 이 싸움은 끝났는데, 에이씨의 그 열혈 변화 설파에 보고 있던 내가 열을 받아서...ㅋㅋ 어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얄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