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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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저께 길을 가다가 넘어졌다. 종로에서... 그것도 정말 거짓말처럼 대자로 뻗었다. 뻗기 전에 적당히 허우적도 댔다. 허공에 내 긴 팔을 휘적휘적 대며... 입고 있던 치마가 훌러덩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즉, 팬티도 보였을 것이다. 옆에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가방안에 내용물이 쏟아졌다. 온 몸을 아스팔트에 부딪혔으니 지금도 아프다. 왼쪽 허벅지, 팔, 머리가 골고루 아프다... 그래도 멍이 안들었으니 다행인가...
넘어진 뒤에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친구(왜 자기가 미안해하지!? 못잡아줘서 미안하다던데!! 귀엽게시리!!) 옆에서 꽤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다.
아흑~ 왜 넘어지고 그랬담~ 흑흑 물론 길 한복판에 그런 동그란 구멍을 뚫어놓은 게 정말 이해가 안되지만!! 뭐 다들 안넘어지는데 나만 넘어졌으니 흑
쨌든 이런 얘기는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고 다녀야한다. 더이상 팔릴 쪽이 없어질때까지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는지, 어찌나 쪽팔렸는지를 과장과 오바를 듬뿍 넣어서 듣는 사람이 마구마구 낄낄대도록 만들어야, 그래야 웃기고 즐거운 추억으로 승화된다ㅋㅋㅋㅋ
2. 넘어지고 나서 전철을 타러 갔는데 유난히 인천행이 안오는거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뎌 왔나보다 하고 열차를 탔다. 이윽고 신도림에 도착해서 먼저 내리는 남자친구 뒤통수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 들려오는 안내 말씀, 천안행 열차... 제길! 하고 나도 얼른 내렸다. 근데 무슨 인천행이 용산에 있어~!! 그럼 차라리 동인천 급행을 타야겠군, 하고 다른 홈으로 갔는데 사람 완전 많다... 왜들 이러지? 원래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나? 뭐 적을 시간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하고 보니 월계역 구간에 산사태가 나서 전철 운행이 지연 어쩌구 저쩌구;; 이미 전철엔 사람이 한가득이었는데 나는 용감하게 미어터지는 전철 안에 내 몸을 밀어넣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내 앞에 등돌리고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의 영화 자막이 읽히더라. 외국 영화였는데 훤칠하고 몸 좋은 남자와 눈코입 크고 예쁜 여자가 나왔다. 정말 이건 같이 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좁은 거리였는데 갑자기 이 앞 분이 내게 영화를 안보여주시는 거다! 지만 쏙 보게끔 화면을 교묘하게 가리며 힐끔힐끔 보는데,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며 대체 뭐가 나오길래 하며 화면을 노려봤다.
침대 위에서 남자와 여자가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안보여준거야? ㅋㅋ
얼굴도 안보이고 목덜미만 보이는 그 남자분이 갑자기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ㅋ
왜!!!! 그런거일수록 보여달라고!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장면이 끝나자 다시 내게 화면을 들이밀듯 여유롭게 감상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별거 아닌데 왤케 웃겼지ㅎㅎ
3. 친구가 생일 선물이라고 사준 책이 어제 집에 도착했다. 그 중에 한 권이 김현진의 '그래도 언니는 간다' 였다. <누구의 여자도 되지 마라> 였나? 그걸 폭풍 감동으로 본 뒤에 본 건데 이건 더 좋다 ㅠ.ㅜ 언니는 정말 가고 있더라. 루이비통 스피디백을 내가 사주고 싶을 정도로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책을 사는 거 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책을 내줬으면 좋겠다.
4. 좀 있으면 회의를 한다. 어디 학원이나 늘 영어가 메인이기에 안그래도 별 할 말이 없는데 나는 특히 불만도 건의사항도 거의~ 없다. 그래서 도무지 회의의 필요성을 못느끼겠다. 근데 도대체 왜 한달에 두번이나 하는거지. 나는 벙어리처럼(내가 학원에서 제일 어리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
작년에 몇 번, 불만은 아니고 건의사항으로 가장 성수기인 방학 시간대에 왜 도대체 사람도 별로 안듣는 수업을 해야하는건지, 그냥 쭉 JLPT로 가지! 하는 얘기를 저녁 쌤과 부장님과 실장님과 한 적이 있는데 뭘 구체적으로 다 정해도 결국 '그거 안되겠더라구요' 하고 끝나버리니 나야 뭐 더 이상 힘을 쓸 도리가 없다. 사실 난 그렇게 안해도 그만이다. 사람 별로 안들으면 난 그 시간에 인터넷도 하고 책도 읽으면 되거든. 여기저기 전전해서 일하면서 든 생각인데 나 같은 말단이 뭘 건의해도 다들 무반응이다. 무반응이면 다행이게~ 니가 뭘 알아~ 한다. 그럼 나는 그러게 내가 뭘 알아~ 싶다. 한국의 어떤 곳에서 회의란, 위에서 결정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거지 내가 발언의 기회를 갖는 곳이 아니라는 걸, 직장생활을 맘잡고 한 건 아니지만 그냥 알겠더라고.
뭘 더 열심히 해야하나. 무반응로 앉아있는 내 옆에서 경력 오~래되신 분들이 열정적으로 건의하고 얘기할 때 마다 나는 내 열정없음을 탓해보기도 한다. 아 나도 막 까폐 개설하고 그래야하나......뭔가 더 안절부절 애걸복걸 전전긍긍 열심히 해야하나....
근데.....귀찮게시리.
공부는 혼자 하는 것임....특히 나 같은 시험 과목은.. 배 째... 뭐 그런거.
나는 내 시급에 부족함 없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밖에 안쑥스럽지만, 수업 듣고 잘 가르쳐주신다고,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많다(실은 수강생 자체가 별로 없으니 많아 봤자다). 당연하지. 내가 근 10년을 공부했고 때때로 가르쳤던 언어다. 작년에 수업 처음한다고 야후재팬을 헤집으면서 설명과 유례와 예문을 찾아 돌아댕겼다. 시급 이상으로 일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고 내 입으로 그렇게 말하기는 아까보다 좀 더 쑥스러우니 그냥 그 정도로 일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내가 수강생에 비례해서 페이를 받는다면 나도 좀 더 적극적이 됐을수도 있다. 그런 미래를 막연히 상상할 때도 있지. 좀 더 이름있는 큰 학원으로 옮겨서 좀 더 일을 크게 벌려보자면 그럴수도 있고, 나는 소위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 싶다. 내가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JLPT 강사가 된 건 아니다. 오전에 일해보고도 싶었고, 많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고도 싶었고, 가르치는게 재미도 있었고, 그래서 가르치게 됐으니 받는 돈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전 일 말고도 영어 공부도 해야하고 나의 귀여운 아이들을 상대해야하고 남자친구도 만나야 되고 중간중간에 책도 읽어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야하는데. 뭘 그 하나에 매달려서 열정적으로.. .막 그래야해?
오늘 회의 가면 또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언제 끝나나 기다리다 올것이다. 그래도 내가 그 시간에 시급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앉아있어야해! 하며 생각하지 않는게 어디야. 빨리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책도 읽고 빨래도 걷다가 남자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