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0. 10:38 카테고리 없음

어제 집에서 뒹굴대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케이블 채널에서 '다시 보고 싶은 원조 아이돌' 순위 프로그램이 하길래 넋을 잃고 봤다. 근데 아이돌이라니... 아이돌이라기엔 다들 나이가 제법 든 상태에서 시작했건만...;; 그저 '그룹'이라는 말을 써줬으면 좋겠다. 에쵸티부터 아이돌로 분류합시다. 듀스나 서태지와 아이들마저도 아이돌로 분류되는 건 좀 웃기지 않나요ㅋ
 
지난 달까지 수업을 들었던 학원 영어 선생님은 (추측컨대, 확실히) 나보다 열 살 이상이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 연도를 들었을 때 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지 실감은 안났는데 세대차이가 화~~~~~~~~~~~~~악 느껴졌을 때는 이문세씨 음악이 너무너무 좋다는 얘기를 했을 때였다. 

이문세씨 음악이 올드하다는게 아니다. 나도 MP3플레이어에 담아놓고 가끔 듣는데 목소리도 멋지고 가사도 다정하고(?)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흘러 넘치는 기계음과 널 원해 베이베~하는 가사와 남자아이들의 찐한 아이라인과 여자아이들의 하의실종 패션에 (내가 그런 걸 좋아하는데도) 신물이 나는 참에 그런 음악을 들으면 마치 일주일 쯤 물 못먹다가 마신 것 처럼 꿀꺽 꿀꺽 노래가 온 몸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생님이 이문세씨의 음악을 좋다고 얘기할 때 목소리에 묻어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는, 이문세씨 음악이 단지 '좋더라'라는 감상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문세씨는 동경했던 가수이자 같은 시대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친구, 살아있는 '추억'인 것이다. 단지 그들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운좋게도(?) 이문세씨가 멋진 뮤지션이었고 지금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에쵸티로 추억에 젖는다면 다들 빠순이라고 힉, 하고 웃겠지ㅋㅋ

이문세씨 이야기를 하면서 영어 선생님은 요즘 아이돌을 야멸차게 까기 시작했다. 그런 쓰레기 같은 음악들이라며ㅋㅋㅋ 물론 이건 만드는데 한 10분 걸렸겠다 싶은 노래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듣다보면 신나고 좋은 노래도 있는데ㅎㅎ 무엇보다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서 십년 이십년 후에 그 '쓰레기' 노래들을 듣고, 그 노래가 별로라 해도 그 그룹에 관심이 없었다 해도, 문득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 '유행가' 정도의 지위는 갖게 될 것이다. 그냥 그 정도의 일이다. 모두가 소위 음악성이 뛰어난 음악에 흥미를 가질 수는 없는 일. 음악에 관심이 생긴 친구들은 옆 나라 일본이나 저 멀리 영국 미국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원정을 떠나게 된다.

내 나이대 친구들에게 그런 살아있는 '추억'은 대부분 당시 인기를 끌었던 댄스 그룹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비록 신승훈 2집으로 이른 나이에 가요계에 (청취자로)입문했으나 뭔가 좀 알아들을 나이가 될 무렵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고, 듀스도 없어지고 에쵸티가 전사의 후예를 들고 뿅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캔디를 들고 빵, 터진것이다. 내 내 십대를 에쵸티와 함께 보낸 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고 뭐랄까... 시대의 운명? 뭐 그런거? ㅋㅋㅋㅋ ㅡ_ㅡ;;

                          집에 찾아보면 이 사진 있을 것이다ㅋㅋ

일본음악으로 완전히 갈아타기까지(물론 갈아탄 후에도 지오디와 클릭비를 아낌없이 사랑했었음ㅋㅋ) 내 중고딩 생활은 에쵸티와 함께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한참 집중력 기억력 좋을 때ㅋ)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음악 프로그램을 봤으니 그 당시에 유행했던 노래들과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 마치 예전에 잃어버린 피붙이마냥 몸에 쩍쩍 달라붙는 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중간에 찢어지고 롹한다고 욕먹고 예전만 못한 인기라 해도 이재원 전역하는 날 다같이 모여서 마이크 붙잡고 있는 '에쵸티'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 만으로 그냥 자동적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거다. 이 현상이 이문세씨 노래 들으면서 옛 생각에 잠기는 그런 순간들과 크게 다르다고, 누가 말할 수 있지?

노래방가서 트위스트 킹을 열창할 때 이 노래를 불렀던 터보가 런닝맨에서 활약하는 김종국과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이 요만큼도 들지 않을 때, 알이에프의 찬란한 사랑의 나레이션이 그냥 기억나는 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굿바이에 가슴이 아려오는 것도, 엔알지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노유민을 보며 슬픔에 젖는 것도, 클릭비의 드리밍이 사랑스러운 것도,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에 몸이 들썩이는 것도, 에쵸티의 (지금은 경악스러운) 오색찬란 띄운 머리ㅋㅋ가 그리운 것도(우리 할머니가 그 때 텔레비전에서 에쵸티 보고 마귀라고 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법칙처럼ㅋㅋㅋ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의 일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어제 다시 보고 싶은 원조 아이돌 1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는데(설마 서태지를 아이돌에 끼워넣을 줄은 생각못했다. 에쵸티가 1위라고 생각했는데 2위였음ㅋ) 순간 참 우울해졌다. 태지옵뽜가 교실 이데아에서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고 열창한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더 가열되고 있다는 거 ㅠ.ㅜ



                          하긴 발해도 아직 꿈만 꾸고 있구나....

posted by steadyoung